EZ EZViwe

[기자수첩] 대한항공 여승무원의 자살…누구 책임인가?

박지영 기자 기자  2012.03.21 17:41:09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2012년 1월9일 새벽, 아리따운 젊은 여승무원이 못다 핀 꿈을 접고 삶을 마감했다. 아침 비행을 몇 시간 앞두고 자신의 방에서 목매 자살한 것이다. 그녀는 이제 갓 데뷔한 1년차 새내기 스튜어디스였다. 하늘이 좋아 승무원 길을 선택했고, 그토록 바라던 꿈을 이룬 그녀가 스스로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이유는 뭘까.

2010년 10월 대한항공에 입사한 A씨는 회사 규정에 따라 2년간 인턴사원으로 근무 중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지난 1월6일, 프랑스 파리에서 인천공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판매하고 남은 면세품 수량이 모자란다며 담당부서에서 변상을 요구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A씨는 그날 면세품 판매 담당자였다.

A씨는 이틀 밤을 꼬박 새워 판매수량과 대금 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엑셀파일로 작성했지만, 수량자체가 모자란 만큼 심적 압박이 컸을 것으로 판단된다.

언론에 보도된 대한항공 측 입장에 따르면, 변상금은 개인이 아닌 회사 측에서 부담한다. 즉, 압박을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면세품 사건이 발생한 지 3일도 채 안 돼 이 같은 일이 벌어진 데는 어느 정도 심적 부담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이와 관련, 직장동료 B씨는 2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부서가 달라 면세품 강매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잘 모르지만 저번 비행 때보니까 스케줄 표에 지난달 면세품 평균 판매율과 우리팀 평균 판매율이 적혀있더라”며 “아무래도 그 판매율이 인사고가에 적잖이 반영되는 듯 했다”고 귀띔했다.
 
실제 면세품 관련, 대한항공의 직원압박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4월 대한항공은 기내 면세품 판매 캠페인을 벌이면서 승무원들에게 개인구매를 권유하다 인천공항 세관으로부터 ‘관세법 위반’ 경고를 받은 바 있다.

참담한 현실은 이번 자살사건이 처음도 끝도 아니라는 점이다. 2007년 7월 김해정비공장 격납고 지붕서 대한항공 기체정비팀 C 과장이 투신자살했고, 2011년엔 무려 5명이나 잇달아 목숨을 끊었다. 그때마다 몇몇 매체들이 대한항공 내부의 경직된 인사‧조직문화가 자살의 원인이 아니냐며 조심스레 개선을 요구했지만 헛수고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대한항공 측 주장대로 회사와 이들의 자살은 전혀 연관성이 없을까. 대한항공 측에서도 분명 ‘100% 아니’라고는 못할 게다.

대한항공은 2005년부터 객실 승무원을 대상으로 ‘C-플레이어(PLAYER)’ 인사제도를 진행해 왔다. ‘C-플레이어’는 성과 및 역량 등에서 회사가 요구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 직원을 가리키는 말로, 회사의 집중 관리대상이 된다. 지난해 자살한 객실승무본부 D 사무장도 ‘C-플레이어’로 지목돼 국제선 팀장으로 일하다 일반 국내선 승무원으로 좌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명 ‘엑스맨 제도’도 있다. 쉽게 풀어 동료들끼리 서로 감시감독하게 해 동료의 잘못을 고발한 직원에겐 플러스 점수를 주는 제도다. 이 제도는 지난해 잇단 자살사건 이후 폐지된 것으로 알려진다.

   
산업부 박지영 기자
누구보다 촉망받고 치열하게 살았던 그들, 이토록 허무한 자살의 길로 몰아세운 건 그들만의 문제일까? 계속되는 직원들의 자살 사건에 대해 대한항공의 심정은 어떤지, 어떤 책임과 대책을 갖고 있는지 심히 궁금하다. 아울러, 지금 이 시간에도 심적 압박으로 자살을 기도하는 이 회사 직원은 또 없는지 참으로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