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시사저널의 주필(오늘날의 편집장)을 지낸 안병찬 박사는 원래 한국일보에서 이름을 날리던 현장기자였다. 시체가 칼에 찔린 깊이를 몸소 쟀다고 하는 등 몇 가지 일화로 유명한 그는 이후 홍콩에 유학하는 등 학구적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뭐니 해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월남전 마지막 종군기자’라는 전설적 타이틀과 그를 함께 떠올린다.
월남전 막바지인 사이공 함락 직전까지 현지에 남아 있던 그는 적성국 국민으로 체포 되지도, 탈출에 급급해 취재에 실패하고 현장을 이탈하지도 않은 행운을 누렸다. 베트남인인 전화교환수의 도움으로 마지막 르포 기사를 송고한 다음 미군 헬기와 수송선을 얻어 타고 귀국, 실종이라며 애를 태우던 신문사 임직원들을 상봉했다.
이후 우리 언론사엔 종군기자라는 개념이 없다시피 했는데, 1990년대 제1차 걸프전(당시 명칭은 페르시아만 사태)에 이라크 현지에 들어가 기사를 송고한 문화방송(MBC) 이진숙 기자가 그 명맥을 다시 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후배들이 선배 기자로 인정할 수 없다며 기자회에서 축출해 논란의 중심에 선 바로 그 ‘이진숙 홍보국장’이 그 이 기자라고 바로 겹쳐서 인지하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기자가 ‘김재철 MBC’ 지키기의 선봉에 섰다는 이유로 이 같은 평을 얻는 걸 착잡하게 볼 법 하다.
이번 기자회 제명 건이 100% 온당한 처사인지, 또 적당한 정도의 크기로 사측 논리의 최일선에 선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것인지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일단 제명과 관련해 나오는 멘트들을 보면, 적어도 종군기자라는 화려한 타이틀로도 언론계 선후배, 동료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어려운 정도로 이번 MBC 사태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고, 그 논쟁의 중심에 (원하든 원치 않았든) 선만큼 논란의 짐을 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안 박사의 경우를 다시 되짚어 보면, 당시 적화통일 된 월남의 마지막을 보고 나온 그를 안보 의식화에 이용하기 위해 중앙정보부 등에서 여러 번 노력했다는 후문이다. 아마 시대가 시대인 만큼, 중정 등의 회유를 거절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안 박사는 그의 이력을 속된 말로 ‘판’ 일이 없었다. 이후 안 박사가 국회 보좌관 등이 도박판을 벌인다는 모 신문의 기사가 당시 모 정당이 유력지들에만 광고를 집행하고 자신들을 배제한 데 대한 보복성으로 쓰여졌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종군기자를 누가 “우리 선배 아니다”라며 기자회에서 제명당하게 만들었나. 일차적 책임과 가장 큰 책임은 이 지경이 된 회사와 그 최고 책임자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수적으로는 자기 스스로도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이번 종군기자 기자회 제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