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여러분 중에는 아마도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이라는 책을 읽은 분이 있을 것이다. 생물학 책인데 마치 SF소설처럼 흥미진진한 과학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박사는 동물행동학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니코 틴버겐의 제자이며 현재 옥스포드 대학에서 활동하고 있는 생물학박사인데, 그가 쓴 서문 중 한 줄을 인용해서 이 책의 내용을 아주 조금만 엿보기로 하자.
‘우리들(인간+생물)은 생존기계(生存機械)이다. 즉, 이 로봇 운반자(運搬子)들은 유전자(Gene)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기적 분자들을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인류를 포함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다 유전자라는 이기적 분자를 보존하기 위해 생겨난 보존체(保存體)라는 것이 이 책의 일관된 주장이다. 유전자가 자신들이 영구히 살아 남기 위한 이기적 목적을 위해서 생물이라는 생존기계를 만들었으며, 지금도 또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최종현 회장이 자신의 사장학으로 편찬한 SKMS에서는 기업을 유전자만큼이나 이기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선언했다는 뜻에서 필자가 이 책 이름을 들먹인 것이다.
‘이기적 기업(Selfish Enterprise)’,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최종현 기업관을 새로이 명명(命名)해 보았다.
‘천년 가는 기업’을 만들려면, 지나간 40억년 동안 성공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보존해 온 유전자에 벤치마킹, 크게 한 수 배워야 하는 것 아닐까?
천년을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문자 그대로 영구히 존속 발전하기 위해, 기업은 누구에게 의존하여야 하는가? 기업의 생존기계로서는 ‘구성원’이라는 불특정 다수가 그 답으로 떠오르지만, 구성원 하나하나 개체는 길어야 30~40년 기여하다 떠나는 이기적이며 유한한 존재임이 또한 확연히 부각되어 떠오르지 않는가?
기업과 구성원, 이 두 이기적 존재 사이에 형성되는 이해관계의 시공간적(時空間的) 괴리(乖離)를 어떻게 승-승의 관계로 설계하여, 천년을 존속 발전 하고자 하는 기업의 대망(大望)을 실현할 것인가? 창업자, 사장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 코칭, 리더십 과정 설계를 위해 한번쯤 생각해 두어야 하는 개념들이다.
‘둘 이상의 이기적 존재가 공존하는 집단에서, 이들을 감독 지휘하는 중앙집권적 권위 없이도, 과연 자발적 협동이 가능할 것인가?’
위와 같은 명제가 주어졌다면 기업 코치로서 여러분은 이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알고 보니, 실제로 이 문제는 기업과 구성원의 관계 설계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 수퍼 파워 간의 상호 견제와 협동 등 광범위한 정치공학(Political Science) 분야의 관심사로서 오랜 동안 연구되어 온 명제였다.
나는 SK아카데미 교수 시절, 최종현 사장학인 SKMS에 이론적 배경을 보강하여 넣으려는 목적으로 이 명제에 관심을 가졌었는데, 학술원 회원인 원로 경제학자와 소주 마시며 한담(閑談) 하는 자리에서 좋은 책을 소개 받게 되었다.
미시간대학 교수 Robert Axelrod 박사(사진)가 1984년 펴낸 ‘협동의 진화(Evolution of Cooperation)’ 라는 책이 그것인데, 이 연구에서 저자는 ‘협동’이라는 일견 인문학적 과제처럼 보이는 명제를 ‘죄수의 딜레마 (Prisoner’s Dilemma)’라는 컴퓨터 토너먼트 게임 방식을 동원하여 ‘수학적’으로 구명(究明) 하였다.
일반 독자에게는 골치 아픈 행렬식 등, 수학을 활용한 논문이지만, 결과만을 요약한다면, 아래와 같은 전제 조건이 충족되면 될수록, 이기적 존재 간에 쉽게 자발적 협동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 이 논문에 의해 ‘수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의미의 분명한 전달을 위해 원문 표기를 함께 인용하여 아래에 적는다.
자발적 협동을 증진시키는 방법(How to Promote Cooperation)
1. 미래의 그늘을 확장하라(Enlarge the shadow of the future)
2. 보상의 규모를 바꾸라(Change the payoffs)
3. 구성원이 서로 배려하도록 훈련하라(Teach people to care about each other)
4. 호혜의 원칙을 가르치라(Teach reciprocity)
5. 상호 인정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라(Improve recognition abilities)
보라. ‘천년 가는 기업’을 만들고자 기업과 구성원의 관계를 정립하려 한 것인데, 이 이론의 첫 번째 항목을 살피면, 거꾸로 ‘천년 가는 기업’을 목표하면 이것이 ‘미래의 그늘을 확장’하게 되므로 이기적 존재인 기업과 구성원, 또 구성원 개개인 간의 자발적 협동이 확보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과거 무슨 비리엔가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던 정 모(鄭 某) 회장인가 하는 사람이 자신의 부하들을 머슴이라고 비하한 ‘머슴론(論)’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같은 시기 최종현 회장은 그룹의 임원을 가리켜 ‘사업동지’라고 부른 것이 신문 보도로 알려져 ‘과연, 최종현답다’ 라는 감동을 일으키는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의 동지론(同志論), 한솥밥 식구론(論)이 그냥 주먹구구식 이론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로써 ‘수학적’으로 입증하게 되어서 나도 기뻤다.
[다음 회엔 ‘슛돌이 팀에게 배운다면?’ 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