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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검증된’ 물고기들, ‘땜방용’으로 자처하다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3.15 08: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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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대형 유통업체 이마트가 사람 키 만 하다는 먹갈치를 내놔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대형할인마트인 이마트가 1.5m에 이르는 먹갈치를 선보였습니다. 은갈치 가격이 아직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 고등어쪽으로 눈길을 돌린 소비자들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기엔 갈치는 은빛 찬란할 것만 같지만, 갈치의 비늘은 워낙에 쉽게 떨어지기 때문에 어시장에서도 빛나는 갈치를 보기는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아무튼, 이마트의 이번 먹갈치는 은갈치에 비해 ‘반값’ 수준 정도로 보여 반갑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찬란한 은갈치는 제주 인근에서 낚시로 많이 잡히고, 먹갈치는 그물로 잡으며 먼 바다에서도 잡히고 목포 등지가 산지로 유명하다는 정도가 일반적으로 아주 뒤죽박죽 파편처럼 흩어진 토막 정보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튼 먹갈치와 은갈치에 대한 기자들의 설명은 대동소이합니다. 이마트 측에서 흘러나온 전언에 따라 그물로 잡아 상처가 많이 나 검어지면 먹갈치라고 적은 것 같은데, 사실 둘은 친척간, 그러니까 다른 종이라는 소리도 있습니다. ‘정어리쌈’이라는 토속 음식을 즐기는 여수 사람들이 이를 가리켜 정어리 혹은 대멸(멸치)을 섞어서 말하는데 외지 사람들이 보기엔 정어리와 멸치가 원래 다른 종류인데 무슨 소리냐 그런 논란과 흡사해 보입니다.

여기에 1.5m에 달하는 이 이마트 먹갈치의 비밀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오래 전 기록을 찾아 보면, 1987년 가을 수산물 등 물가 동향 기사에(9월11일 매일경제신문) “최근 들어 맛이 좋은 인천의 먹갈치와 제주산 낚시갈치가 점차 시장에 선을 보이면서…”라는 표현이 보입니다. 오래 전 이미 먹갈치가 꼭 목포에서만 잡히는 건 아니었다는(외양산이 인천으로 유입, 어판장으로 유출된 경우 포함) 이야기입니다.

가격 동향을 볼까요? 2004년 8월7일 이상저온으로 갈치 어획량이 줄었다는 기사를 보면, 은갈치의 경우 1㎏에 3만원씩, 그물로 잡아올린 먹갈치는 1㎏에 7000원선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등, 대체로 “원래 반값 맞구만!”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걸 어쩔 수 없습니다.

즉, 대단한 출혈 마케팅으로 먹갈치를 파는 건 아닌가 보다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봅니다. 먹갈치는 그럼 싸기만 한 비인기 종목이었는가? 그건 또 아닌 것 같습니다. “제주은갈치가 최고 명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는 사람들은 목포먹갈치를 최고로 친다(서울신문, 2005년 9월15일)”, “먹갈치는 거무튀튀…은갈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맛을 지녔다는 것이 어시장 사람들의 변(부산일보, 2006년 7월4일)”이라는 게 언론의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싸도 맛있는 먹갈치’가 그럼 왜 새삼 ‘사람 만 하다’, ‘싸다’는 쪽으로만 포지셔닝 된 것일까요? 4P Mix(Marketing Mix 4P) 논의에서는, △Product(제품) △Price(가격, 가치) △Place(유통, 위치) △Promotion(고객과의 소통) 이 네 가지를 중시한다고 합니다.

작년 연말, 롯데마트가 내놓은 갈치, 고등어에 밀려 2등으로 역전 소식이 머리를 스칩니다. 롯데마트는 “(작년) 12월8일까지 생선 매장 판매량이 고등어가 50.3%, 갈치가 49.7%를 매출 구성비를 기록하며 고등어가 갈치를 처음으로 앞질렀다”고 밝혔는데, 유통 문외한인 저도 봤으니 경쟁기업인 이마트에서는 당연히 이를 인지, 분석했을 겁니다.

원인은 당연히 고등어가 할당관세가 적용된 혜택을 봤고, 갈치가 ‘다이아갈치’로 불리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2012년에는 갈치도 할당관세 품목에 넣는 문제를 당국이 검토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지경이었지요.

그러니, 우리 국민들이 지금 지갑 사정으로는 전통의 선호 어종인 갈치를 버리고 노르웨이산 등 크고 기름지고 값까지 싼 고등어를 살 지경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겠습니다.

갈치를 싸게만 내놓으면 재역전도 노릴 수 있는 상황. 사람 크기에 육박한다는 점이 징그럽다에서 정말 싸다로 바뀌어 보일 정도이니, 맛 이야기를 굳이 구구절절할 필요 없이 ‘Price’만 내세우면 되겠지요. 다행히 이미 오래 전부터 맛있다고 곳곳의 지역 별미로 거론되던 먹갈치니까, ‘Product’ 수준 보장은 그냥 덤으로 딸려 올 수 있겠습니다. ‘Promotion’ 기법상 그게 최선이라는 게 이마트 쪽 속내가 아니었을까, 자기 키를 넘는 먹갈치를 바라보는 아이 사진을 프레스 릴리스한 측 의견을 넘겨짚어 봅니다.

여기서 참고할 만한 것은, 맛이 검증되지 않거나 어획량이 부족하거나 유통 경로상 별로 먹히지 않을(백화점에서는 연탄 안 판다는 논리로 흔히 회자되는) 것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하나의 ‘P’라도 안 받쳐주는 물고기를 그저 싸다고 세워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일선 할인마트에 이미 냉정히 적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롯데마트 이야기로 돌아가면, 금년 초 이 회사는 설 음식에 질린 속을 국물로 달래라며 매운탕감으로 물메기를 앞세워 시장을 두드린 바 있습니다. 겸손하게 설 음식 많이 드셨으니 별미로 이런 거라도, 라는 식이지만, 실상 이 물메기는 그리 호락호락한 어종은 아닙니다. 음, 뭐, 좀 못 생기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 물메기는 한때 일부 해안에서 먹던 지역 음식에서 어느 틈엔가 매운탕감으로 좋다는 공감대를 널리 형성하고 있는 게 특징입니다.

여기엔 맛뿐 아니라 어획량이 받쳐준다는 점까지 겹친 것으로 보입니다. 2004년 8월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연구팀이 내놓은 심포지엄 자료에 보면 “지난 1995년 이후 2000년까지 (동해) 대표 어종이던 명태가 급격히 사라지고 기름 가자미, 물메기가 대표적 어종으로 등장했으며 2000년대에는 대게가 최우점종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은어낚시통신’으로 유명한 소설가 윤대녕씨도 ‘통영-홍콩간’이라는 근작에서 물메기탕 맛을 언급하기도 했을 정도로 전국적으로 인정이 된 상황에 어획량까지 보장되니까, 대형마트 단위에서 공략 대상으로 삼을 만 했나 봅니다. 대신, 앞세울 때엔 철저히 속칭 ‘땜방 메뉴용’으로 짐짓 격하된 자세로 말이지요.

이렇게 갖출 걸 다 갖춘 걸 발굴해서 4P Mix 전략을 세우고도 가격을 제일 앞에 세워 교감을 해야 하는 걸 보면 경제 사정이 어렵긴 어려운가 봅니다.

OECD 국가 중에 경제성장에 타격이 우려될 정도로 내수가 줄어드는 걱정스러운 나라는 우리 한국밖에 없다는 삼성경제연구소 관련 기사를 14일 제가 쓰기도 했는데, 정말 그런 지경인가 봅니다. 물메기도, 먹갈치도 크고 싸다는 점 외에 본래의 맛을 당당히 앞세울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마트 관련 사진뉴스를 보며 잠시 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