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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온동네 헤집는 롯데의 나팔소리

박지영 기자 기자  2012.03.14 09:5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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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성철스님이 경남 창원 성주사라는 절을 찾았을 때다. 법당 위에 ‘법당 중창 시주 윤아무개’라고 쓴 간판을 보곤, 내심 그 신도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신도가 찾아오자 성철스님이 한마디 했다. 

“소문에 당신의 신심이 퍽 깊다고 칭찬이 자자하더라. 또 법당 위 간판을 보고 당신 신심이 어느 정돈지 알게 됐다. 그런데 간판 위치가 아무래도 잘못된 것 같다. 간판이란 모름지기 남들 많이 보라고 만드는 건데 이 산중에 붙여 놔 봐야 몇 명이나 보겠느냐. 차라리 떼어다 마산역 광장에 붙이자. 그러면 여러 명이 보고 ‘아무개가 법당 고쳤네’라고 선전될 게 아닌가.”

얼굴이 벌게진 신도는 얼른 제 손으로 간판을 떼 절 아궁이에 넣어버렸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본문 中)

   
롯데그룹 동반성장 실적이 빠짐없이 나열돼 있는 책자.
불공의 참뜻을 새기자는 의미에서 펜을 든 건 아니다. 이 일화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구절과도 맥을 같이 한다. 최근 재계에 ‘신도 윤씨’보다 더한 기업이 나타났다. 이 기업은 자신이 한 선행을 ‘왼손도 알고, 이웃도 알고, 심지어 온 나라 국민들 손발’까지 다 알 수 있도록 아예 책까지 편찬했다. 롯데그룹 이야기다. 

지난 8일 오전 롯데그룹 홍보팀에서 한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내용인 즉, 롯데그룹이 ‘국내기업 최초’로 동반성장 보고서를 발간했다는 것이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책에는 지난해 롯데그룹이 추진해온 동반성장 5대 과제와 그에 따른 각 계열사 실적까지 빠짐없이 실려 있다. 

롯데의 ‘자화자찬’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계열사별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이행 현황에 대해서도 장황하게 설명돼 있다. 여기에 아직 실천하지도 않은 3년 뒤 로드맵까지 공개했다. 시주도 하기 전 법당에 간판부터 먼저 걸어놓은 모양새다.
  
롯데그룹의 선행을 폄하하자는 게 아니다. 물론,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 중소기업과 상생의 길을 선택한 롯데의 행동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구구절절 자신이 해온 일에 대해 책까지 내가며 ‘광고’할 필요는 없어 보여 하는 말이다.

   
산업부 박지영 기자
자기들도 인정(?)했듯 ‘동반성장 보고서’를 낸 곳은 롯데그룹이 국내 최초다. ‘상생보증 프로그램’을 실현하고 있는 삼성도, 중소기업 글로벌지원센터 건립을 위해 100억원 투자한 현대차도, 동반성장 기회를 대폭 확대한 LG도 그냥 동반성장을 약속하고 지키고 끝냈다.

예부터 ‘선을 베풀 때는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말라’고 했다. 자화자찬도 정도껏 해야 욕을 먹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