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기업은 영구히 존속, 발전하여야 하고, 기업에서 일하는 구성원은 이를 위해 일정기간 기여하다 떠나는 것이다.”
최종현 회장은 이렇게 자신의 사장학 텍스트의 제일성(第一聲)을 선언(宣言)의 형태로 던졌다. 이것이 그의 유명한 ‘SKMS 기업관(企業觀)’인데, 나더러 평가하라면 기업과 그 구성원을 바라보는 기업인(企業人) 최종현의 가감(加減) 없는 솔직한 진술이며, 그의 경영철학을 압축한 것이기도 하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겠다.
“회장님의 뜻은 이해합니다만, 왜 하필 떠나야 한다는 말을 넣어 구성원들을 위축되게 해야 합니까? 잘 구슬려서 열심히 하도록 해야 할 텐데요.”
“떠나야 한다는 말이 틀린 말인가?”
“그렇지만 임직원들이 생각하기에는, 오너(Owner)는 지속적으로 군림하면서, 종업원들만…”
“이봐, You들은 구성원이 누구를 지칭한다고 생각하나?”
“… …”
“나, 회장도 구성원일 뿐이야. 그러면 됐나?”
“그래도 어쨌든 떠나야 한다는 어감이…”
기업과 그 구성원의 관계를 규정하는 이 선언에 대하여는 이러저러한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그 주요 쟁점은 왜 굳이 ‘떠나는 것이다’라는 명시적 표현을 넣어 구성원을 자극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이어서 어찌 보면 ‘일의 도(道)’를 추구하기 위해 기업가의 철학이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는가를 선언하려고 의도한 최 회장의 철학적 깊이에는 많이 못 미치는, 좀 유치한 수준의 쟁점이었다고 필자는 회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회장은 후일 이 쟁점을 받아들여 SKMS 보급단계에서 ‘떠나는 것이다’라는 표현을 유보하는 것에 동의한다. 그다운 현실감각이었고 스스로 경영원칙이라고 천명한 ‘현실을 인식한 경영’을 실천한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런 기업관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기업을 하자.”
적어도 기업의 리더/사장이 되려는 사람은 이와 같은 ‘Burning Yes’에 동의하여야 한다는 것을 회장은 역설하곤 했었다.
“(회장을 포함하여 모든 구성원은 인간이므로 이기적 존재이지만)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은 자기발전과 함께 기업발전을 이루어야 하고, 자기만을 위한 기업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기업발전에 더 이상 기여할 수 없다고 생각될 때는 스스로 기업을 떠나야 하며, 이 원칙은 상위 직에 올라 갈수록 더 잘 지켜야 한다.”
“반면에 기업은 기업의 존속, 발전을 위해 온 힘을 다하여 기여한 구성원을 그 기여도에 따라 직접, 간접으로 우대하여야 하며, 기여를 마친 구성원이 스스로 떠나는 때에는 그에 대한 퇴직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필자는 다분히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경영의 이상(理想)을 추구하는 최종현 회장의 위와 같이 딱 부러지는 분명한 태도에 매료되었던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최근에 SK그룹에서 사용하는 수정판 ‘SKMS 기업관’도 ‘기업은 영구히 존속 발전 하여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는 것까지는 같다. 그러나 더 이상 기여하지 못하겠다고 스스로 판단한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떠나야 한다는 대승적(大乘的) 정신, 이를 직간접으로 우대하여야 한다는 승-승의 정신 등은 다 삭제되어 그 표현이 없어져 버린 것이 첫 눈에 들어온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으리라 짐작 못할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최 회장이 본래 의도하였던 바, 서슬이 퍼런 기업관 선언의 의의(意義)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 대단히 애석하다.
2005년 1월21일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서 40여 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보살펴 온 외국인 수녀 두 분이 짧은 편지 한 장을 남기고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소록도에서 평생을 환자와 함께 살아온 마리안, 마가레트 당시 나이 70대 초반의 두 분 수녀가 그분들인데, 마리안 수녀는 1962년에, 마가레트 수녀는 1966년에 소록도에 첫발을 디뎠다고 한다. 20대 후반의 꽃다운 나이에 이곳에 와서 평생을 이국(異國)의 한센병 환자 구호에 몸 바친 그들은, 번거로운 환송식이 싫어 이른 새벽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섬을 떠났는데 이들이 남긴 편지에는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할 수 없다.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겠다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다’고 쓰여져 있었다고 한다.
마리안 스퇴거, 마가레트 피사렉 두 분이 떠난 지 7년이 가까워 오는 2011년 12월에는 두 분 수녀의 이름을 딴 배가 각각 한 척씩 만들어졌다. 장금상선(주)이라는 화물선 회사의 갸륵한 대표이사 정태순씨는 “두 분에 대한 존경과 감동의 마음을 나누고자 새로 만든 선박 두 척에 각각 두 분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고 밝혔다.
종교의 헌신과 봉사를 기업에 종사하는 일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할 법 하다. 그러나 천년가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 일의 도(道)를 실현한다는 것을 목표한다면 이런 정도의 이상(理想)은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기업을 위하여 평생을 헌신하고 떠나는 기업인에게도 그 기여도에 따라 명예로운 대우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정신, 이것도 최종현 기업관의 기본이 되는 발상임에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수고로이 쓰는 이유도 최종현 회장과 같은 기업경영의 이상(理想)을 가지는 경영자가 앞으로 더 많이 배출되어, 고인의 뜻을 이어서 그의 경영법을 익혀 실천하고 완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다음 회엔 ‘기업관② 이기적 기업’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