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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치인 펀드’ 연수익률 6%의 비밀

불법·투자자피해 소지 다분…수백억 몰리는 대선 전 법규 마련해야

이수영 기자 기자  2012.03.13 07: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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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최근 언론을 통해 유명세를 탄 펀드매니저 A씨가 어느 날 공개적으로 도움을 청했다. “딱 석 달만 여윳돈을 맡겨주면 연 수익률 6%로 돌려주마”는 제안을 한다. 얘기를 듣자니, A씨의 ‘인기도’에 비례해 원금은 국가가 보장하고 3개월 이율이 1.5%에 이른다.

즉, 1000만원을 맡기면 3개월 뒤 원금은 안전하게 회수하는 동시에 앉아서 15만원을 버는 셈. 시중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연4%대인 마당에 솔깃하다. 평소 A씨의 추종자들은 물론이고 이자율에 눈이 초롱초롱한 나 같은 사람들이 삽시간에 몰렸다.

저금리 기조가 상식인 요즘 사기 아니냐고? 물론 사기는 아니다. 적어도 아직은 그렇다.

앞선 사례에서 ‘펀드매니저 A씨’를 ‘특정 정치인’으로 ‘인기도’를 ‘총선 득표율’로 바꿔보자. 이는 지난 5일 모집 시작 5시간 만에 마감된 ‘강용석 펀드’ 얘기와 상당히 흡사하다.

최근 19대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일명 ‘정치인 펀드’ 열풍이 여의도를 휩쓸었다. 무소속 강용석 의원을 비롯해 통합진보당 강기갑 의원, 새누리당 엄태영 예비후보, 통합진보당 홍성규 예비후보 등 이번 총선에서만 4명의 출마예정자가 정치인 펀드 공모에 나섰다.

이 가운데 인지도가 높은 강용석 의원과 강기갑 의원 펀드는 일찌감치 마감됐다. 가입하고 싶어도 이미 늦었다는 얘기다. 두 사람은 각각 2억원, 1억8411만원을 공모 한도로 정해 연6.0%의 이자율을 제시했다.

정치인 펀드의 원리는 간단하다. 특정 정치인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일반 유권자들을 상대로 차용을 한다. 해당 정치인은 이렇게 공모한 ‘펀드’로 선거를 치르고 선거가 끝나면 일정 이자와 함께 원금을 돌려준다.

문제는 이 같은 정치인 펀드가 자본시장법상 불법인 ‘유사수신 행위’에 해당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이다. 또 투자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없다. 정치인 펀드는 득표율 15%를 넘기면 선거비용 전액이 보전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만약 득표율이 낮아 선거비용을 돌려받지 못한다면 오직 후보자 개인의 신용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경우 후보자가 파산하는 등 상환 불능 상황에 빠진다면 공모자금은 그대로 날리는 셈이다.

돈을 맡긴 유권자들도 찜찜하긴 마찬가지다. 세전·후 수익률이 명확하지 않은 펀드에 가입해 이자 수익을 얻었으니 본의 아니게 ‘탈세’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특히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펀드 모집을 위해서는 자격을 갖춘 등록된 사업자에 한해 엄격한 약관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개인’인 선거 출마자가 이 같은 요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펀드애널리스트는 “개인이 상품약관도 없이 자금을 공모한다는 것은 업계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아직 공모 규모가 크지 않아 상환 불능 상태까지 닥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관련 규제가 없기 때문에 피해를 입는 투자자가 생길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반면 해당 후보자들은 ‘정치인 펀드’가 투자상품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일반적인 펀드가 아니라 개인 간 채무관계라는 얘기다. 강용석 의원 측 관계자는 “개인 지지자와 강 전 의원 간 차용증서를 주고받은 채권채무 관계이지 펀드상품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시선”이라고 말했다.

또 연6%의 이자율도 선거관리위원회가 인정한 ‘적정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전국은행연합회에 게시된 3개월 대출, 예금 이자율 검토한 결과 3개월 수익률 기준으로 최하 0%~최대 3.7%까지 수익률 격차가 벌어져 있는 만큼 3개월 기준 1.5% 이자율은 상식적인 수준이라는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박원순 서울시장 등 앞선 공모 사례를 꼼꼼히 분석해 선관위에 ‘연6% 이자율’을 제시했고 ‘적정하다’는 답을 받아 그대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논란은 유관기관의 명확한 선긋기로 시작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와 펀드가 얽혀있으니 유관기관은 선관위와 금융감독원으로 압축되지만 이미 두 기관의 떠넘기기는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박원순 펀드’ 조성 당시에도 벌어진 바 있다.

선관위 측은 “정치자금법은 후원금 등을 모금하는 과정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대여의 일종인 펀드자금 모집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금감원 측은 “선관위가 정치자금법 등을 통해 규율해야 할 사안”이라고 맞서고 있다.

물론 정치인펀드에 쌈짓돈을 넣은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지지후보를 응원하는 순수한 열정으로 정성을 보탠 경우다. 실제 “돌려받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뜻을 밝힌 유권자도 상당수다. 여기에 이번 총선 법정 선거비용 한도액은 선거구별로 2억원 내외(1억원+(인구수*200원)+(읍·면·동수*200만원))이기 때문에 상환 불능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올해 선거가 이번이 끝은 아니다. 더구나 오는 12월 예정된 대통령 선거는 스케일 자체가 다르다. 지명도와 지지율 면에서 훨씬 거물들이 나서는 만큼 ‘정치인 펀드’ 열풍이 재현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렇다면 올해 대선 법정 선거비용 한도액은 과연 얼마일까. 참고로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법정 선거비용 한도는 465억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