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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김무성, 트럭 행상의 美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3.12 13:3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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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2008년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직후 18대 총선이 있었다. 당시 옛 한나라당(현재의 새누리당)은 친박계의 공천 학살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친박계 좌장이었던 김무성 의원이 친박 의원들이 줄줄이 낙천하는 상황에 ‘청와대 밀실공천’ 공세를 퍼부으며 탈당을 주도했다.

이후 이들 친박계 인사 중 상당수는 친박 무소속 연대를 결성했고 영남권에서 ‘친박 태풍’을 일으키며 당선돼 다시 당으로 금의환향한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기자는 다른 신문사에서 정치부 기자로 일할 때였는데, 영남 지역에서 펼쳐지는 탈당 친박계와 당에서 공천한 후보간 선거 유세전을 현장취재 하겠다고 해서 부산에 내려갔던 적이 있다.

우리 입장에서야 시간과 비용을 많이 들여 부산행을 한 것이지만, 시간이 그야말로 금쪽 같은 선거 임박 시점이었던 데다, 워낙 신경이 곤두선 상황인 터라 시간을 길게 뺏는 정식 인터뷰는 언감생심이었다. 다행히 ‘김무성 캠프’의 젊은 보좌진 한 명이 기자를 어여삐(?) 여겨 부산에 도착하면 유세 차량에 동승시켜 줄 테니, 짬을 내 요령껏 인터뷰를 따 보라 했다.

취재 유세 동승이라고 하면 무척 근사한 일일 줄 알았는데, 웬걸, 트럭을 개조한 차량이었다. 종일을 덜컹거리면서 지역구의 큰 길들이며 아파트 단지를 누비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당시 김 의원은 이미 ‘중진’ 소리를 들을 때였고, 내무부 차관 등 이력도 화려했던 터였다. 하지만 그런 그도 공천장 한 장에 언제든 ‘천하무적(千下無籍: ‘적’, 즉 소속을 둔 데가 없음을 가리키는 은어)’ 그야말로 ‘트럭 행상’ 신세가 되는구나, ‘권불십년래’를 느끼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런 상황에서도 그렇게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당시에는 ‘전 대표’ 신분)과의 관계를 파는 대신 목이 터져라 정견 발표를 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는 생각을 내심 한 적은 있다(하기는 누가 봐도 당시 친박 좌장이었는데 다른 자칭타칭 친박 정치인처럼 강조를 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던 김 의원이 이번 18대 회기 중에 박 위원장과 선을 긋는 듯한 야릇한 양상을 펼치는 걸 보면서, 이제 정치부 기자는 아니면서도 기자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러면 정치하기 힘들지 않나, 무슨 그런 세속적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더니, 김 의원이 19대 총선에는 공천장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그 뒤엔 또 공천 탈락 우려에도 불복 탈당을 하는 대신 12일 결국 ‘백의종군’을 선언했다고 하는 뉴스가 들어온다.

김 의원은 “공천 탈락 위기에 몰리면서 탈당과 신당 창당도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우파 분열을 막기 위해 백의종군하기로 결심했다”고 소회를 밝혔다고 한다.

많은 정치인들이 공천장 한 장 때문에 당을 비난하고 박 위원장을 비판하며 이탈하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뿐만 아니다. 어느 지역의 경우, 공천 문제 때문에 자유선진당과 민주통합당간 정치인들이 서로 당적을 뒤바꾸게 된 씁쓸한 상황도 연출됐다. 다른 당에서 날아온 인사가 공천장을 받아가자, 당을 박차고 나가
   
 
상대 진영으로 옮겨 새 둥지의 공천장을 받았다는 것이다.

공천 갈등을 둘러싼 상황이 이쯤 되면, 모든 정치인이 그렇지는 않겠으나, 많은 경우엔 철새라든지 정치 행상 같은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듯도 하다. 그런 상황에 트럭 행상으로 지역구를 돌던, 이번에는 당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는 김 의원의 선택은 새롭다. 진정한 트럭 행상 정치인이 무엇인지, 다들 잠시 생각해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