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코치인 당신 앞에 앉은 고객이 지금 막 자신의 회사를 설립한 사장이라고 상정(想定)하자. 그가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앉아 있다면,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내기 위해 코치로서 그에게 던질 적절한 질문은 어떤 것들일까?
“회사를 설립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어떤 회사를 만들고자 합니까?”
“사업의 도메인은 어떻게 정하였습니까?”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 당신의 강점과 전략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기존 또는 미래의 경쟁기업과 차별화 하겠습니까?”
여러 가지 좋은 질문이 있겠지만, 필자에게는 우선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몇 년 가는 기업을 만드시렵니까?” 하는 질문이 그것이다.
조선일보의 토일(土日)섹션 ‘Weekly Biz’ 2011년 2월26, 27일자 지면에는 ‘머크사(社)는 왜 죽지 않는가’라는 제목으로 올해로 344년을 존속, 성장하고 있는 세계 최장수(最長壽) 기업, 독일 머크사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다름슈타트에 본사를 둔 이 기업은 1688년 창업자인 프리디리히 야콥 머크가 세운 ‘천사약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1827년 그의 후손 하인리히 머크가 이를 대규모 생산설비를 갖춘 제약, 화학회사로 탈바꿈 시켰다.
올해로 344년을 존속, 성장하고 있는 세계 최장수 기업, 독일 머크사 |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만 3년 동안 SK아카데미에서 교수로 봉직하면서, 필자는 작고한 최종현 회장이 남긴 그의 사장학 ‘SKMS’, ‘Supex 추구’를 후배 경영진에게 강의하는 한편, 기업교육에서는 소홀하기 쉬운 품성교육을 보강한다는 뜻에서 ‘7 Habits(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중심으로 하는 자기리더십(Self Leadership), 인간관계리더십(Interpersonal Leadership)을 함께 강의하였다.
기간 중 강의한 내용을 모아 모두 10강(講)의 강의록으로 정리하여 웹북(Web Book) 형태로 공개 사이트에 올려놓았었는데, 그 강의록 사본(transcript)의 제목을 ‘천년 가는 기업 만들기’라고 정하였었다.
‘천년’이라고 기업의 존속 수명 목표를 숫자화 하여 제시한 것은, 최종현 회장이 평소에 늘 펼쳐온 ‘기업은 영구히 존속 발전하여야 한다’는 지론(持論)에서, ‘영구(永久)’라는 단어가 막연한 개념이어서 자칫 목표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반론을 오도(誤導)할 수 있는 점을 보완한 것이다. ‘천년’이라는 목표 역시 추상적이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은 분에게는, 머크 사가 실증으로 보여준 344년의 존속과 성장의 역사가 좋은 답변이 될 것이다.
최종현 회장이 타계한 다음 해의 일이다.
필자가 이천에 소재한 SK텔레콤의 연수원에서 그날의 강의를 끝내고 교수실에 앉아 있으려니 일과를 끝낸 연수원 원장과 몇몇 HR 전문가 팀이 발동을 걸어왔다.
“교수님, 동동주 한 잔 어떻습니까?”
“좋지.”
일언지하에 의기투합하였다.
연수원을 나와 이천 쪽으로 진로를 잡다가, 도드람산 자락을 서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채 10분도 못 되는 거리에, 시인 여(呂) 여사가 남편과 함께 직접 동동주 빚고 도토리묵을 쑤는 ‘산 모롱이 돌아 들꽃 피는 집’이라는 긴 이름의 술집이 내 단골집이었다. 목을 넘어가는 맛은 순해도 독하기가 한 방구리 마시면 소주 한 병 반 꼴은 착실한 동동주를 몇 방구리 째 비우고 모두들 좀 맛이 간 상태에서 이야기 꽃이 피었다.
“자, SKMS를 한 마디로 한다면 무얼까?”
누군가가 물었다.
“사장학(社長學)?”
그도 그렇겠네, 회장이 자신이 만든 경영법을 때로 그런 이름으로 불렀었지. 나는 회상에 잠겼다.
“이봐, 다른 그룹의 회장들, 소위 성공했다는 경영자들이 말이야, 각기 자기 나름의 사장학을 갖고 있어요. 그러나 그걸 남에게 가르쳐 주려고 하지를 않아. 그렇지만 나는 달라. You(자네)들한테 내 사장학을 가르쳐 주겠다는 거야. 모두들 이걸 배워서 다 사장 되면 얼마나 좋아. 그룹 내 회사의 사장이 되어도 좋고, 아니면 나가서 독립해 사장 되어도 좋고….”
최 회장은 이렇게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에서는 아래 사람을 부르면서 ‘You’라는 표현을 자주 썼는데, 영어 표현을 선호한 것이 아니라 ‘You’라는 단어가 갖는 평등한 뉴앙스를 존중한 것 같다고 나는 느꼈다.
“SK교(敎)?”
그룹 내에서는 최 회장을 교주(敎主), 손길승 부회장은 부교주, 꼭 비아냥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농 삼아 부르는 일도 있었다. 교주라면 대단히 민주적인 교주였었다. 민주적인 종교라는 것이 만약 있다면 말이지. 그럼 나나 그대들은 뭘까? 전도사? 새끼 전도사?
(‘천년가는 기업②’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