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객관식 시험에서 답을 고르는 경우, 학생은 주어진 문제에 가장 적절한 답을 찾기 위해 저장된 기억을 탐색한다. 만약 저장된 정보가 없거나 잘못 입력되어 있다면 학생은 오답을 적을 수밖에 없다.
논술은 이와는 좀 다른 단계를 거친다. 논술 답안지는 백지다. 빽빽하게 적혀 있는 답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하얀(물론 원고지 형태로 칸은 구분되어 있지만) 종이에 답을 채워야 한다. 머릿속에 좋은 자료가 저장되어 있더라도 그것을 조직화해내지 못하면 좋은 답안을 쓸 수 없다. 객관식 답안에서는 결과의 옳고 그름을 평가한다면, 논술 답안에서는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고과정 자체를 평가하게 된다.
논술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학생들은 첨삭 받을 때 주저하고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사람들은 보통 처음 만난 사람에게 속내를 다 털어놓지 않는다. 믿게 되기까지 서로에 대한 탐색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논술 답안을 쓴 학생은 본의 아니게 자신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도 선생님께 들켜야(?)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특히 소극적이거나 자신감이 없는 학생들은 글을 써서 남에게 보이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학생과 논술 교사 사이에는 다른 어느 과목보다도 절실하게 라포르(rapport) ‘마음이 서로 통한다’ ‘무슨 일이라도 털어놓고 말할 수 있다’ ‘말한 것이 충분히 이해된다’고 느껴지는 관계를 말한다. 카운슬링 ·심리테스트 ·교육분야 등에서 중요시되는데, 특히 심리요법이나 최면요법에서는 단순한 언어에 의한 의사소통을 넘어서 상호간의 개별적 세계에 접촉하는 것이 중요하다.
형성 과정이 필요하다. 서로 지식뿐만 아니라 감정까지도 솔직하게 표현하고 교류함으로써 마음을 열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선행되지 않으면 학생에게는 답안지를 사이에 두고 대면한 선생님과의 첫 경험이 부담스럽고 힘든 기억으로 남게 된다. 이는 그렇잖아도 괴롭고 힘든 글쓰기를 더욱 고달프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논술 교사는 적극적으로 학생을 이해하고, 친해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교사가 학생의 장점을 발견하고 발전 가능성을 믿는다면 한 번 첨삭에서 반드시 하나 이상의 칭찬거리를 찾아낼 수 있다. 첨삭은 나쁜 점을 캐내어 학생의 기를 꺾는 작업이 아니다. 학생의 생각 중 격려할 부분은 격려하고, 갇히고 막힌 부분에 대해서는 살짝 길을 터주고, 잘 모르는 부분은 보완해주어 조금 더 나은 글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이다. 특히 대면첨삭이 중요한 이유는 답안만으로는 학생의 생각을 100% 읽을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납득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학생이 왜 그렇게 썼는지를 물어가며, 글 뒤에 숨은 부분을 찾아가야 한다. 그래야 학생과 교사 사이에 생길 수 있는 오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논술 지도에 있어서 교사와 학생 간의 적극적인 교류는 필수 조건이다. 교사로서의 권위는 잃지 않되 최대한 학생의 생각을 존중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교사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그래야 학생들의 답안이 자기 색깔대로 다양하게 나온다. 요즘 소위 ‘판박이 논술’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는 교사가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만을 강요하는 데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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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약력 : 현) 비타에듀 에플논구술연구소 강사 및
수석연구원
서초에듀플러스학원 논술 대표강사
중앙일보 NIE논술연구소 논술 첨삭위원
경향신문, 세계일보, 한국경제, 프레시안 논술 칼럼니스트
영남사이버대학교, 경원대학교 평생교육원 논술지도강사
교육사랑, 유니텔 교원 직무연수 논술 강사
이화여자대학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