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에 이어 실물경제의 본격 침체 상황으로 접어든 가운데, 아시아의 경제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미 과거 1980년대 ‘신유교주의’ 모델로 하버드대 등의 주목을 받았던 아시아식의 경제 발전 특수성은 이번 국면에서도 새 논쟁거리를 만들고 있다. 이른바 정부의 역할 모델론을 어느 정도 의미로 둘 것이냐는 부분이다.
일본은 과거 플라자합의로 한창 잘 나가던 경제 사정이 둔화되는 변곡점을 맞이한 이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긴 침체를 겪었다. 이 침체 상황의 일본 정부 대응은 더욱이 이번 세계 경제의 침체 국면에서 ‘재정위기’ 논란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다시 끌려나와 공개 비판을 받은 처지에 이르렀다. 불필요하게 재정 지출을 해 오히려 장기 침체의 덫에 빠지게 됐다는 것이다.
성장률 둔화시기 비교표. 중국(T=2007), 한국(T=1998), 일본(T=1969). 자료는 CEIC, 국가통계국. |
그런가 하면 중국은 ‘중진국 함정(Middle-Income Trap)’이라는 우려를 사고 있다. 중국은 화폐 가치의 고의적 유지로 이득을 보고 있다는 비판에 오래 직면해 왔으며 이러한 위안화 추가 절상 요구는 이른바 ‘화폐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던 바 있다.
이 절상 문제에 중국 지도부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서방 세계가 새로운 지적 사항으로 주목하는 이슈가 중진국의 함정이라는 개념이라는 시각도 있다. 중진국의 함정이란 경제 구조에 있어 중진국 문턱에서 주저앉는 국가가 많기 때문에, 성공적인 현상 유지 내지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경제 민주화 등 여러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2월27일(현지시간) 세계은행이 중국 국무원 산하 발전연구중심(DRC)과 공동으로 작성한 ‘중국 2030’ 보고서에서 중진국 함정 위험을 지적하면서 중국 경제와 정치 개혁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지난해 10월 아시아개발은행은 한국 기획재정부와 공동으로 개최한 ‘아시아 2050-아시아 세기의 실현’ 보고서 발간 기념 세미나에서 우리를 중진국 함정을 성공적으로 벗어난 케이스로 소개했다.
ADB는 이 보고서에서 한국이 중산층 육성과 지식경제로의 전환 등을 통해 중진국의 함정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난 모범국가라고 평했다. 더욱이, 우리는 재정으로 인한 여러 문제가 상대적으로 없는 모범 국가로 이번 세계 경제 위기 국면에서 평가받기도 했다.
◆일본과 중국식 모델 비판에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반론
하지만 동아시아 3국 중 우리의 모델이 가장 우수하고, 중국과 일본 스타일의 정책 기조는 비판 대상이라고 단순화시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 여러 부분에서 이의가 제기되고 있어 아시아 주요 경제 대국인 일본과 중국의 모델 유효성과 이 역할 모델의 유지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진국 함정에 빠진 나라와 이 함정을 피한 나라. |
우선 중국의 경우인데, 중진국 함정 논의에 서구적 시각에서는 일단 중국이 경제 민주화를 단행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기본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점에서 중국 경제가 현재 스타일로 그대로 가면 바로 무너질 것으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한국은행 국제경제실이 지난해 내놓은 ‘중국의 중진국 함정 논란과 시사점’ 보고서는 중국 경제 발전 전망에 대해,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볼 때 자본투입 확대로 경제 성장을 끌어가는 모델로 더 성장하기는 이제 어렵다는 점을 기본적으로 전제하면서도, 중국의 경우 경쟁력을 잃어가는 동부 산업을 서부와 중부로 이전하는 방식으로 이를 피해갈 여지가 있다고 주목했다.
아울러, 외교안보연구원 ‘2012 국제정세 전망’에서는 중국이 국영 기업을 운영하는 방식과 부동산 개발을 정부에서 계속 끌어가는 방식으로 경착륙 위기론을 충분히 상쇄해 가면서 문제를 대처할 능력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영국 주요 매체인 텔레그래프의 인기 블로그를 운영하는 인사인 암브로스 에반스-프리차드(경제 분야 에디터로 각광받았던 인물)도 중국의 중진국 함정 문제에 대해 중립적 시각을 일부 드러냈다. “(향후 중국 발전에서는) 민간 섹터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중국 인사의 발언을 인용하면서도 “정해진 것은 없다”고 중국이 현재 경제 구조를 개혁하지 못하면 백발백중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에 이견을 제기했다.
결국 서구에서 바라는 대로 경제를 끌어간다고 하지 않아도(국영기업들의 민간기업화 촉진과 금융 시장 개방도 상승) 중국이 자체적인 능력으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반부패와 관련해 마오신위 장군(다름 아닌 마오쩌둥 전 주석의 손자다이 발표를 할 것이라는 추측도, 서양식 접근이 아닌 중국 공산주의 나름의 논리로 경제 등 모든 문제를 풀 것이라는 것을 시사한다는 풀이도 나온다.
일본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칼럼니스트인 이언 핑클턴의 원고를 게재했다. 핑클턴은 일본의 과거 20년이 실패가 아니었다는 점을 미국과 일본을 대조하면서 설명했다. 이 글은 일본의 과거는 실패가 아닌 성공의 스토리로 읽혀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예를 들어, 일본은 2010년에 1960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20년 전인 1989년에 비해 세 배가량 불어난 것이다. 일본은 외환보유액에서도 꾸준히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작년 말 기준 1조2958억달러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다. 반면 미국은 같은 기간 경상수지 적자가 990억달러에서 4710억달러로 네 배 이상으로 더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결국 중국과 일본식 해법이 틀린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시금 조명해 보아야 할 필요가 높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의 거버넌스는 어떻게 되어 가나?
하지만 이런 반면, 한국의 경제 관련 정책적 역할 모델이 성공적인지에 대해서는 오히려 회의적이다. 한국은 현재 휘발유값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국가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으며, 높은 구매력을 자랑하며 조만간 주요 국가들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 역시 수출 둔화로 인해 달성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결국 경제 정책 면에서 정부가 거버넌스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민간 주체들이 역할을 제대로 하기도, 혹은 하지 못하기도 한다는 점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인데, 그런 점에서 주요한 역할 모델로 나름대로 재평가를 받고 있는 일본, 공산당식 정부 중심 경제관을 유지하고 있는 중국이 재평가를 받는 과정에서, 오히려 우리는 포퓰리즘 복지 논란에 휘말리고 있어 우려가 높다.
‘서구식 경제모델’의 우등생으로 평가받아온 우리로서는 어떤 방식으로 앞으로 위기 해결을 해 나갈지 주목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