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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십일조’에 투영된 홈플러스 기부문화가 불편한 까닭

전지현 기자 기자  2012.02.28 14: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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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기독교에는 ‘십일조’가 있다. 중세 유럽 교회에서 교구민(敎區民)으로부터 수입의 1/10을 징수했던 세인 십일조는 고대 유대교도에게 수입의 1/10을 야훼신께 바칠 것을 명한 구약성서 율법에서 연유한 것이다.

서유럽에서 십일조는 처음 그리스도교도가 하나님에게 자의로 바치는 경건한 신앙행위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6세기 이후 교회는 점차 신자에게 이를 강요했고, 8세기에 이르러 카롤링거왕조 피핀과 카를대제 등이 아예 의무화했다.

특히, 세속 영주들은 10세기에 성행한 사유교회제를 이용, 자신들의 영주민이 바치는 십일조를 사유화해 갔다. 따라서 이후 민중의 불평과 비난의 대상이 되자 프랑스에서는 1789∼1790년 대혁명 과정에서, 영국에서는 1648년과 1688년에, 독일에서는 1807년에 이를 각각 폐지했다.

실제 국내 교회에서도 십일조 문화는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 십일조를 드리는 마음을 받는다는 것을 들어 자발적 납부를 요구하고 있다. 즉 강제적 또는 의무감에서 내는 것은 하나님 역시 기쁘게 받지 않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자발적으로 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인 것이다.

헌데 국내 한 기업이 십일조 문화를 강요하는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

지난 27일 홈플러스는 저소득층 사회문제 해소를 위해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경영 운동’ 프로그램을 전개할 것을 밝혔다. 오는 3월1일부터 ‘생명‧사랑의 쇼핑카트 캠페인’을 시작, 백혈병 소아암 어린이 100명의 수술과 위탁가정 불우 어린이 1000명을 지원할 계획이다.

한국 백혈병소아암협회에 따르면 백혈병은 어린이 질병 사망원인 1위다. 현재 전국 약 2만5000명의 환아가 있고 매년 약 1200명의 어린이가 추가로 백혈병 진단을 받고 있다. 그들은 최소 3년 이상의 투병기간이 필요한데다, 치료비 중 상당액이 보험 혜택을 못 받아 치료를 포기하고 있다.

또, 부모 사망, 질병, 학대, 경제 사유 등으로 조부모나 위탁가정에서 양육되는 어린이 역시 약 1만6000명에 달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조부모 위탁 아이들의 34% 정도가 학습, 신체, 발달, 섭식 장애 등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홈플러스는 이 어린이들을 위해 협력회사와 함께 상품을 선정, 이 제품을 고객이 구매하면, 협력회사는 판매금액의 1%를 홈플러스 e파란재단에 기부하고 홈플러스는 협력회사가 기부한 만큼을 ‘매칭그랜트(matching grant)’로 기부하기로 했다.

따라서 협력회사와 홈플러스가 함께 상품 판매 금액의 2% 한도 내에서 기부, 공동 명의로 어린이들을 돕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방식이다. 홈플러스는 이를 통해 협력사와 홈플러스가 각각 15억씩 매년 총 30억원의 기금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날 홈플러스가 기자들에게 전달한 작은 도움재단 준비위원회의 2009년 12월 136개 중소협력회사 CEO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 참여 기업 중 49% 기업이 예산부족으로 사회공헌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영조직 및 시스템 부족(22%) △적절한 프로그램 부재(20%) △비용대비 기업성과에 긍정적 효과 낮음(7%) 등으로 이어졌지만 예산부족(49%)과 비교하면 2, 3위의 이유는 턱없이 낮다. 

대기업이라면 모를까, 중소기업 등의 협력업체에는 부담될 수 있다는 기자의 지적에 이승한 회장은 “자체 설문조사를 통해보니 방법을 몰라 사회공헌을 못하는 기업이 70%에 이르렀다”며 “멍석 까는 작업을 위해 출발한 이 캠페인은 최소 200만원에서 최대 2000만원 등 업체 당 평균 700~800만원 수준이므로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더욱이 홈플러스그룹은 직급별로는 다르지만 입사계약을 할 시, 급여의 1%를 기부금조로 내도록 서약하고 있다. 설도원 홈플러스 부사장은 “홈플러스 임직원이 2만6000여명이다. 직급에 따라 다르지만 이들은 계약 시 서약하고 급여의 1%를 기부금으로 적립하고 있다”며 “이 같은 기부는 시작이 어렵지, 일단 시작 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문화가 될테니, (기부를 위한)풀뿌리 경영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 역시 “급여를 100만원이라고 치면 이중 1%에 해당하는 금액은 1000원밖에 되지 않는 적은 금액”이라고 웃어 넘겼다.

사실상 이 회장은 3년 전부터 기업의 목적이 장사만이 아닌 사회공헌활동에도 있다는 모멘텀을 제시코자 노력해왔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귀는 토끼, 얼굴은 강아지, 몸은 캥거루 등 3가지 동물을 합쳐 만든 전 세계에서 유일한 사회공헌 캐릭터 ‘이파란’도 탄생시켰다. 하지만 이날 간담회에서 그가 직접 퇴임 후 행보가 재단에 있음을 밝힌 이상 이 재단의 성격이 예전만큼 순수하다 느낄 자가 누가 있단 말인가.

   
 
하물며 교회도 기부에 대해 ‘자발적이 아니면 내지 말라. 하나님은 그 마음을 받으신다’고 말할 만큼 자발성을 강조하고 있다. 협력업체들이 예산부족을 이유로 사회공헌 활동을 못하는 실정에서 슈퍼 ‘갑’의 위치를 유지하는 대형 유통업체가 산하 재단을 들먹이며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에 협조를 요청했을 때 이들은 과연 자발적일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홈플러스그룹은 단돈 100원이라도 뒷골목에서 뺏기면 기분 나쁘다는 것을 상기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