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S&P가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선택적 디폴트’로 떨어뜨리는 카드를 꺼내면서 그리스 재정위기 문제에 다시 눈길이 쏠리고 있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지난 21일(이하 모두 현지시간) 부채로 시달리고 있는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안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 구제금융으로 디폴트 위기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자금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 금이 가고 있다. 어려운 그리스 경제를 살릴 가능성에 관해 위기감이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S&P 문제에 대해서는 ‘예고된 악재’, ‘선반영된 문제’라는 분석도 따른다. 민간 채권단에 대한 추가부담을 요구하면서 바로 이런 방향으로 이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돼 왔다는 점에서 향후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 추가 지원을 반대하는 독일인들이 내건 ‘오늘은 그리스지만 내일은 우리라고(Heute Griechenland-morgen wir)!’라는 베를린 연방의사당 앞 시위대의 구호는 유로존이 갖고 있는 피로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번 그리스 등급 조정은 이러한 불만을 다시 증폭시킬 가능성 측면에서 주목되고 있다.
◆당장의 시장 영향은 제한적이어도 유로존 방출론이 문제
유로존 국가들은 몇 달 간 유로존을 흔들었던 불확실성을 해소하러 나섰지만, 그리스는 국가부도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할 수 있게 됐다고 확실히 이야기하려면 민간채권단과의 손실분담(PSI) 문제가 원활히 매듭지어져야 한다. 하지만 민간채권자들의 국채 교환 참여가 저조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던 데다, 이번에 국가 신용 문제까지 부정적으로 나오면서 한층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S&P의 등급 쇼크 이후에 열리는(오는 3월1일부터 2일)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 그리스를 위한 모종의 시그널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자리에서 그리스를 위해 강력한 구제금융 확충안이 나온다면 S&P발 뉴스가 진화될 수 있겠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주제 마누엘 바로슈 EU 집행위원장은 27일 유로존 구제금융 기금 확충 여부가 3월 초 열릴 EU 정상회담에서 결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금 확충 문제는 “3월 중에 다뤄질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는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이 발언한 대로(쇼이블레 장관은 지난 26일 유로존 구제금융기금의 확충 여부에 대해 “다음달 3월 결정될 것. 3월이란 1일부터 31일까지”라고 강조했다고 알려졌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타결되지 않을 것이란 추정을 불러 일으켰다.
◆왜 유로존 탈퇴해야 하나? 추가지원 여의치 않고 이미 부담 커
“지원을 하지 않으면 엄청난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호소하는 메르켈 독일 총리에 비해 그리스에 대해 매파적 시각을 갖고 있는 쇼이블레 장관의 의견이 유로존 내에서 점차 힘을 얻는 모양새다.
여기에 국제통화기금(IMF)가 유로존 부담을 늘리라면서 돈줄을 옥죄고 있는 점도 문제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들은 EU가 먼저 유로존 구제금융 기금을 늘리면 G20이 IMF를 통해 유로존 지원에 나설 것이라며 EU를 압박한 바 있다.
이런 사정에 그리스가 숨통을 확실히 트인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도 아니다.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터라 더 이상 유로존 내에서 버틸 실익이 없다는 쪽으로 기울 여지도 높아지고 있다.
그리스·포르투갈·이탈리아에 아일랜드와 스페인 등 재정에 문제가 있는 국가들이 유로존의 방죽을 무너뜨리는 개미구멍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이미 예전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27일 이탈리아가 지난 달에 비해 현저히 개선된 금리 조건으로 단기 국채를 대량으로 매각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은 이미 다른 PIIGS 국가들과 그리스가 다른 길을 걷고 있어 그리스만 고생하고 있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겹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 텔레그래프도 23일 ‘그리스는 왜 유로존에서 나와야 하나?’라는 기사를 통해 그리스가 이미 다른 PIIGS 국가들에 비해서도 불리한 상황을 견디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 기사는 이탈리아와 포르투갈만이 유로존 내에서 특이하게 GDP의 4%대를 이자 부담으로 지고 있는데, 그리스는 이보다 높은 6.8%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물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매체는 미국 경제·정책 연구 리서치(CEPR)이 근래 그리스 구제안에 ‘고통은 많고 그리스 입장에선 얻는 것은 없는 것(More Pain, No Gain for Greece)’라고 평가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된다.
◆달러 외에 국제 유동성 받아줄 거의 유일한 화폐, 유로 이대로 추락?
26일 텔레그래프에서 나온 ‘주저앉고 있는 그리스’ 기사 역시 자살률 문제 등 그리스 내부에서 이미 위기에 대응해 극복하려는 의지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상황을 전하고 있다. 이렇게 국내외적으로 압박이 높아지고 있는 점은 그리스의 유로존 잔존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하겠다.
늦어질 가능성만 커지고 있는 국제 사회의 경제적 지원이 수혈될 때까지 그리스가 버틸 체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우려, 그리고 독일 국민 중 상당수가 유로존 내부의 다른 국가를 돕는 문제에 인색한 의견을 갖고 있다는 점은 유로존의 허약함을 드러내고 있다.
단지 출발점에서 같이 묶일 수 없는 국가들을 허약하게 묶었다는 비판 뿐만 아니라, 유로존이 유럽 전체의 인민이 원하는 공감대가 아니라 유럽 내 엘리트들의 탁상공론에서 출발했다는 비관론까지 다시 거론되는 상황은 유로존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사실상 미국 달러화 외에 국제 유동성의 기반이 되어줄 거의 유일한 화페 체계로 꼽히는 유로화 시스템이 이렇게 서서히 무너지는 경우,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세계경제에 어느 정도 파장이 미칠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에 대한 대응책을 연구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해외의 경제 동향에 영향을 많이 받는 개방형 경제 국가들에게 공통된 과제다. 이미 우리 한국은 유로존 위기로 인해 경상수지 등에서 상당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