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전세계 3위의 디램(DRAM) 업체인 일본 엘피다(Elpida)가 27일 도쿄지방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서를 제출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강력한 경제사의 몰락으로 국내 반도체 업계가 적잖은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모바일 디램(Mobile DRAM)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던 하이닉스(000660)를 직접적인 수혜주로 꼽았다.
물론 파산보호를 신청했다고 당장 문을 닫는 것은 아니다. 엘피다의 파산보호신청서를 접수한 도쿄 지방법원은 회사의 채권·채무를 즉시 동결하고 법정관리인을 지정했다. 우리 식으로 ‘법정관리’에 돌입한 셈이다. 그러나 향후 국내 업체들과의 경쟁력 격차는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엘피다, 생존하더라도 옛 명성 잃을 것”
우리투자증권(005940) 박영주 연구원은 “정부와 채권 은행단이 오는 4월 만기 채권에 대한 연장을 승인해 엘피다는 온전하지 않지만 실체는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경쟁력의 핵심인 설비투자 집행을 두고 철저한 제약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KTB투자증권(030210) 이택림 연구원도 “엘피다가 당장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은 낮지만 앞으로 구조조정을 거쳐야 하고 투자여력도 제한될 수밖에 없는 만큼 장기적인 경쟁력 약화는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경영 정상화 과정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삼성전자(005930)는 물론 하이닉스와의 기술 및 Capa(최대생산량) 격차는 더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단기적으로 디램 수요를 촉진시켜 가격 상승 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엘피다가 당장은 명맥을 유지하더라도 2009년 독일 키몬다(Qimonda)와 유사하게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예상도 적지 않다.
토러스투자증권 김형식 연구원은 “엘피다가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회생한 JAL과 달리 독일 키몬다의 절차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엘피다가 주력해온 모바일 디램의 가장 큰 수요처는 스마트폰 및 태블릿 PC 업체 즉 애플, 삼성, 노키아, 모토로라 등인데 PC용 디램과 달리 모바일 디램은 스마트폰 업체와 B2B로 생산·제작하기 때문에 신뢰도가 가장 중요하다”며 “만약 엘피다가 회사갱생법으로 생존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점유율을 올리지는 못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HMC투자증권(001500) 노근창 연구원 역시 “엘피다의 영구적인 공급능력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2009년 키몬다가 파산 신청을 했을 때도 애플, 레노바, 에이서 등 주요 거래선이 이탈했던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노 연구원은 “이럴 경우 상대적으로 삼성전자, 하이닉스의 지배력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될 뿐 아니라 당시 디램 가격이 208.6% 급등했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제품 가격이 조기에 크게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PC 수요가 부진해 실수요는 적더라도 하반기를 겨냥한 투기 수요가 몰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하이닉스 주가, 키몬다 때도 26%↑ 이번에는?
증권가에서는 이번 이슈가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 뿐 아니라 중소형 반도체 장비주에도 호재라는 데 이견이 없다.
대우증권에 따르면 2009년 1월 키몬다가 파산 신청을 했을 때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주가 각각 10.5%, 15.0% 상승한 바 있다. 특히 키몬다 파산 신청 한 달 이후 하이닉스 주가 상승률은 무려 26%에 달했다. |
유진투자증권(001200) 이정 연구원은 “국내 반도체 업계 특히 삼성전자, 하이닉스에 단기적으로 매우 긍정적일 것”이라며 “최근 엘피다가 모바일 디램 분야에 집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 업체의 반사이익이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그중에서도 일부 전문가들은 직접적인 수혜주로 하이닉스를 꼽았다. 순수 메모리 업체이고 엘피다에 근소하게 앞선 직접적인 경쟁사이기 때문이다. 또 지난 2009년 1월 키몬다 파산 신청 때 주가 패턴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동양증권(003470) 박현 연구원은 “디램 수급과 가격에 긍정적인 영향과 모바일 디램 시장의 경쟁자인 삼성전자, 하이닉스의 반사이익이 기대된다”며 “특히 근소한 차이로 앞서 있던 하이닉스가 최대 수혜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송종호 연구원은 “2009년 키몬다가 파산 신청을 했을 때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주가 각각 10.5%, 15.0% 상승한 바 있고 특히 순수 메모리 업체인 하이닉스에 미치는 영향 더 클 것으로 판단된다”며 “키몬다 파산 신청 한 달 이후 하이닉스 주가 상승률은 무려 26%에 달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엘피다의 향후 기업 회생 과정과 디램 가격 등 업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도시바 등 다른 업체로의 인수합병 가능성도 국내 업체에 제한적인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정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는 향후 엘피다의 법정관리 진행 상황과 회생 방안에 대한 순차적 확인이 필요하다”며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동안 DRAM 가격 변화와 국내 업체들에 미치는 영향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 연구원은 “향후 도시바의 엘피다 인수 가능성은 제한적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원은 “경영진 교체가 유력해진 시점에서 도시바가 새로운 제휴상대로 부상할 전망이고 도시바의 엘피다 인수는 디램 기술과 낸디(NAND) 기술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한국 업체에 위협적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엘피다는 전 세계 3위 규모의 디램 생산 업체로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세계 시장 생산능력의 17%, 공급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생산 설비는 모바일 디램을 주력 생산하는 일본 히로시마 설미와, PC용 디램을 주제품으로 하는 대만 타이중 시설을 운영해왔다. 향후 감산은 히로시마 설비에 집중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