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4월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내놓은 복지공약을 모두 실현시키려면 한 해 최대 67조원, 5년간 무려 340조원이 들어간다는 정부 분석이 나왔다.
대형 공약 중 양당의 주장이 같은 것만 살펴보면, 기초생활수급자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4조원 이상), 사병봉급 인상(1조6000억원), 초중고 학생 무상급식(1조원 가량)과 기초노령연급 인상(1조원 가량) 등이다. 한국조세연구원은 현행복지제도를 유지하더라도 2050년이면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가 137%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복지 공약을 보면서, 연금생활자들을 사이에는 ‘이러다 죽을 때까지 제대로 연금을 받을 수 있겠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의 우려를 기우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심각하다.
2010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자살률과 병치레 기간(기대수명에서 건강수명을 제한 기간)은 OECD 국가 중 제일 높다. 빈곤층과 고령층의 자살이 현저히 많고, 노인층은 생활고가 주된 이유라고 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80대는 20대보다 5배 정도 높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은퇴하는 이들에게 ‘고생한 당신, 이제 쉬어도 좋소’라고 할 수 있겠는가?
최근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은 시기적으로 복지 선진국들의 재정 위기와 맞물리면서 마냥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가 과연 이래도 되는가 하는 것에서부터, 소외된 계층을 보듬을 때도 됐다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경쟁에 뒤쳐친 사람들, 소외된 계층을 위로하고 그들의 거친 삶을 더 이상 모르는 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는 모두 공감한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구석도 있다.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와 그렇게 했을 경우에 적어도 몇 십 년 뒤에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예측과 그 대비책이 보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어떠한가? 2004년 일본정부는 연금 보험료를 인상하면서 국민들에게 ‘100년 안심해도 좋을 연금제도’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불과 5년이 지나자 연금적립금이 30조엔 감소하였다. 이런 추세라면 20년 후에는 적립금이 바닥나는 등 사실상 파산을 면하기 어렵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권이 비현실적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연금재정을 전망한 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치인이 먼 장래보다는 당장의 표심을 잡는 데만 골몰한 탓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다.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자. 그 일은 ‘누군가’가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을 수가 있다. 이처럼 ‘누군가’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버려 두게 되는 상황이 흔히 발생한다. 모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일이 100%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없으면 그 일은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소외된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은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하고, 어떻게든 그 재원을 마련해야 하고, 그 정책이 가져올 결과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안다. 오죽하면 정치인은 표가 된다면 없는 강에 다리를 놓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들 가운데서 ‘누군가’가 나오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스웨덴의 흐름을 보자. 중도우파연합 소속 라인벨트 현 총리는 최근 “연금제도는 마법에 기초해 있지 않다”면서, 늘어나는 복지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정년을 65세에서 75세로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야당과 국민이 크게 반발했다. 국민의 90%가 반대한다는 여론 조사결과가 발표되었다.
노인들은 평생 일만 하고 싶어 하지 않고, 젊은이들은 일자리 부족을 걱정하고 있다. 좌파연합정권을 이끈 페르손 전임 총리는 “실천은 고통스럽고 지지율도 떨어지겠지만 훗날 자신이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를 기준으로 본다면 정치인으로서 해야 할 선택은 명백해진다”고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스웨덴은 대부분의 다른 유럽국가들과는 달리 재정위기로부터 자유롭다.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가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인, 그들의 진정한 용기가 부럽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정치권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면 재정건전성이 심각하게 훼손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소요 예산을 계산하고 공약을 검증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아직 구체적이지 않은 공약에 필요한 돈을 계산하고 공약을 ‘검증’하겠다는 것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벌써부터 ‘무례한 짓’이라거나, ‘지금 국민이 원하는 부분, 또는 시대적인 요구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평가가 당에서 나오고 있다.
‘누군가’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기재부의 결단을 환영한다. 그러나 정치권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 므로 ‘없던 일’이 될 가능성도 충분히 예상된다. 관련 부서가 외압에 밀리지 않고 ‘누군가’의 역할을 끝까 지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지지가 절대 필요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 일(정부 지지)을 ‘누군가’가 할 것이라는 생각에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훗날 ‘모두가’ 그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카르타고가 잿더미로 변하는 걸 보며 로마 병사들이 환희에 들떠 있을 때, 장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헌기 ACC 파트너스 대표코치 / (전) 청와대 비서실 행정관 / (전) 택산상역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