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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하청 대법판결, 기업생태계 재편 신호탄으로 해석하니…

협력모델 구성 없이 기업 개선 어려워…양극화 해법 절실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2.24 08: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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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현대차 사내하청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지난 23일 나오면서, 산업계에 파장이 예상된다. 비록 근로자 한 명이 제기한 부당해고에 관한 행정소송에 불과하지만, 대법원 판결은 사내하도급 근로자 32만6000명(전체 근로자의 24.6%)의 지위 문제에 간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법 분야에서 보수적이었던 법조계가 기업의 경영 구조에 더 이상 안 된다고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는 지적이다. 대법원 판결과 아울러 ‘선거의 해’를 맞아 각종 기업 병폐가 도마에 오르면서, 기업의 생태 환경 자체가 변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다.

기업 생태계라는 표현이 최근 화두가 되고 있다. 근래 이 표현은 휴대전화 시장이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가면서 애플과 안드로이드간의 기반 OS 환경 대결에서 주로 언급됐다. 하지만 서로 연계해 가치를 제공하는 ‘가치 복합체’를 생산하는 것에 기업 생태계의 존재 목적이 있다(‘기업생태계와 플랫폼 전략’, 삼성경제연구소 김창욱 수석연구원 등, 2012년2월)는 연구의 기본 방향에서 보듯, 원청과 하청으로 표현되는 기업간 결합과 협력 관계에 대한 이해에도 이 연구는 적용이 가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런 와중에 기업들(특히 대기업군)이 어떤 운영 방식(플랫폼: 공통의 연결축)을 갖고 접근해 왔는가에 대해서도 △기술요소형 △개방참여형 △부품조달형 △채널통제형 등의 유형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는 점 또한 대-중소기업간 상생 측면을 해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풀이다. 더욱이 이런 대기업에 의한 플랫폼의 운영과 장악 문제는 고용 양극화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대기업 성장의 과실이 낙수 효과를 통해 중소기업에 이어지는 상생적 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요구가 정부 고위관료 입에서 나온 점(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글로벌 코리아 2012’ 오찬간담회)은 이 같은 구상이 이미 오피니언 리더층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기업發 ‘낙수 효과’ 없었던 5년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2일 모 진보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정부의 소득 분배의 양극화와 관련해 “노력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곽 위원장은 특히 “지니계수나 소득 5분위 등 지표가 개선되고 있지만 서민과 중산층의 심리적 박탈감은 커졌다”고 밝혔다.

곽 위원장은 아울러 “트리클다운 효과(낙수 효과)가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지난 정부나 현 정부가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성장(의 과실)이 일부 대기업에 집중됐다”고 분석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세계경제 위기를 겪은 점은 이번 정권의 실책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의 전이 현실화로 이어지는 작금의 사정 속에서 기업 경영의 불공정성이나 고용 노동 환경이 불거지는 사정은 정책적 실패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또 곽 위원장의 이 같은 인터뷰 발언들은 위와 같은 문제들을 모두 포괄하는 정책적 반성을 기반에 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곽 위원장의 고백은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이달 1일 현재,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은 55개(계열사는 1642개)다. 2009년 대기업집단이 48개, 계열사가 1137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문어발식으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와중에 무한 확장된 대기업 등 힘있는 집단들은 낙수 효과를 베풀기는 커녕 불공정한 거래를 강요해 왔다는 지적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7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5만7000개 업체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청업체의 53.7%가 최상위 원사업자에게 불공정행위를 당했다고 답했다.

또다른 공정위발 소식 역시 대기업이 공정한 기업 생태 조성에 무관심함을 알 수 있다. 지난 연말 공정위는 360개 업체의 신청접수를 받아 올해 하도급거래 모범업체를 선정해 발표했는데, 모범업체로 선발된 14곳 모두 대기업 계열사는 없고 자본금 30억원 이하의 중소기업 규모의 건설사들로 나타났다.

이런 하청 쥐어짜기 뿐만 아니라, 위에서 소개된 파견 근로를 가장한 사내하청 기법, 계약직은 계약직인데 계약 기간을 무기한으로 둔다는 일명 무기계약직 악용 등을 대기업에서는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기계약직은 고용은 안정적이어서 고용노동부에서는 이들을 정규직으로 분류해 왔고, 대법원 판결이 나기까지 사내하청이 공공연히 악용돼 왔음을 감안할 때 상당히 비윤리적인 기업 생태계가 유지돼 왔음을 알 수 있다.

대기업 ‘슈퍼 甲’ 노릇 가능한 상황이 문제 키워

이런 상황에는 상관습 등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실제로 기업간 협력 체제를 말하는 이른바 기업 생태계가 대기업이 ‘슈퍼 甲’ 노릇을 할 수 있는 부품조달형에 머물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런 경향이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부의 창출과 분배에서 낙수 효과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는 이번 정권 들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지만, 이 문제를 원인부터 해결하지 못하면 경제에 여러 고질병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 생태계는 통제의 방식(강압적, 개방적)과 의사결정의 방식면(상향전달식, 지시하달식)에서 여러 조합을 이뤄 풀이해 볼 수 있다. < 표 참조 >
   
 

과거 산업사회의 굴뚝 산업이 전형적 원청-하청 관계를 갖는 경우가 부품조달형에 해당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산업이 창조적이고 기술적으로 숙련돼 있는 인력 내지 하청 업체에 의해 견인되는 상황, 즉 원청측과 대등협력 모델에 가까운 형태로 구성되지 못하면, 현재의 우리나라와 유사한 기업 생태계는 개선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전통적 기술과의 협업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도 대기업의 입김을 피하기 어렵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예를 들어, 첨단 기술에 해당하는 스마트TV에 있어서도 스마트폰는 달리, 높은 기술력만을 가지고 시장 접근을 하기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 ‘플랫폼 전략의 이론과 실제’ 보고서(2월 SERI 이슈 페이퍼)에 따르면,TV는 소프트웨어 경쟁력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경쟁력이 필수적인데, 애플(i TV)이 삼성과 LG의 고화질 성능을 따라오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있다.

즉, 이 보고서는 “통신칩만 확보하면 통화품질을 보장할 수 있었던 스마트폰에 진출할 때와는 달리 TV의 경우 중국 폭스콘과 같은 제조사에 위탁해서는 화질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예를 들고 있다.

비숙련공 중심 부품조달형 산업 안주? ‘국제경쟁력 도태+고용 양극화’

부품조달형 산업의 구조에 안주하면, 혹은 오히려 이런 쪽의 산업 패턴으로 ‘퇴보’하는 경우 왜 문제가 되는지 살펴봐야 한다.

지난 1월,  미국 오토매틱 데이터 프로세싱(ADP)사가 지난해 12월 민간 고용이 32만5000명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객관적으로 고용 사정이 호전되는 이 상황에서도 ITG투자연구소 스티브 블리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저임금 일자리 발생률만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고용증가가 소비지출 활성화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달 21일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고용 양극화로 본 미국 중산층’ 보고서 역시 숙련 노동층이 필요하던 사회에서 비숙련공만 있어도 되는 산업 패턴으로 미국 산업계가 재편(해외로의 공장 진출 등)되는 일은 미국 중산층 몰락 현상을 가져왔다고 풀이한다. 

결국 저임금 국가에 산업 시설 대부분을 유출하고 산업 공동화 현상을 겪는 문제 더 나아가 국제 경쟁력을 잃고 샌드위치 국가가 되는 것을 예방한다는 측면 뿐만 아니라, 중산층 몰락을 방지해 세계경제 위기 파고를 수월하게 넘는다는 점에서도 관련 논의를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제 경쟁력산업의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는 대기업군의 문제를 해결, 개선하는 측면에서 결론은 둘로 나눠 볼 수 있다. △기술력과 창조성이 강세를 보이는 산업 패턴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문제 △전통적 산업의 경우 횡포를 막을 제도적 뒷받침을 하는 문제가 동시에 필요한 것이 한국의 현재 기업 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

후자, 즉 제조업 등에서 대기업의 횡포를 막는 문제는 대법원 판례 구축과 법률적 정비 추진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2010년 9월29일 개최됐던 ‘노사관계의 안정과 사회갈등 해소’에서 이미 노동이 양극화되는 경향과 해법을 제기한 학자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성균관대 조준모 교수(경제학과)는 과거 노사갈등을 ‘총자본 대 총노동’으로 보고 노동시장의 구분 없이 시행되던 정책들이 이제는 1, 2차 노동시장을 구별해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전체가 아니라 1차 노동시장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기업 고용시장은 단체협약 등을 통해 경직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이미 상당 부분 유연화돼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 구축과 법률적 정비 추진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가 문제가 된다고 할 수 있는데, 근래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보호 차원(불공정한 거래 관행 해결 및 인력 빼가기 등의 원천적 차단)에서 공공 물량의 경우 대기업 SI 계열사 발주 금지 법률 도입이 논의되는 등 고무적인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아울러, 저임금 노동 유입으로 인한 출혈 경쟁을 방어하는 점이 요구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외국인 전문 인력에게 발급하는 E-7 비자를 통해 입국한 중국인과 베트남인은 각각 6325명,369명에 달했다는 것이 법무부 등의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중국인은 31.4%, 베트남인은 51.2% 증가한 수준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IT쪽 개발자 방향으로 유입, 시장을 교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적절한 쿼터 관리를 당국이 모색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비숙련근로자의 숙련근로자 교육 활성화, 사양 산업의 경우 숙련근로자의 타영역 기술획득 지원 등 여러 보호 대책을 통해 산업 구조를 개편해 산업 생태계를 재구성하는 것이 공정사회 구축이라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중산층 보호와 세계경제 위기 해법면에서 요구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