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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저격수’ 용인 못하는 사회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2.23 08: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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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기자 생활을 처음 시작하면 매체 특성과 규모, 사정이나 부서별 관행 등에 따라 조금 다르나 보통 1차적으로는 직접 움직이는 일, 단신성 정보를 조금이라도 빠르게 얻는 데 초점을 둔다(사회부로 따지면 경찰 사건기자, 일본식 표현으로 ‘사스마와리’라고 하는 것에서 보도자료 정리 연습, 행사 취재까지가 여기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생활을 조금 하면서 문리(文理)가 조금 트이면 자기 출입처의 단점이 눈에 띄기 시작하는데, 출입처를 당황시키는 저격수 노릇을 하는 셈이다. 고급 정보원의 정보자료에 기대 취재를 하거나 분석기사를 쓰는 일, 어려운 자료를 연구하는 일은 보통 연차가 너무 낮은 기자들은 잘 하지 않고 한다 해도 상부에서 탐탁찮아 한다. 이는 기자의 조로 우려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저격수 노릇을 못 하거나 안 하려 드는 기자들은 존재 값어치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고도 풀이할 수 있다.

비판 대상이 된 인물이나 기업, 정부부처로서는 얄미운 캐릭터인데, 당분간 출입처 드나들기가 거북한 건 둘째 치고, 인간적으로는 민망하고 미안해서 곤란한 것도 문제가 된다. 그러나 그런 점에 연연해서 폭로성 기사를 안 쓰게 되면, 영영 메스를 대 고칠 기회가 없어지는 것이니, 공공적으로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안 할 수 없다.

그래서 욕을 먹더라도, 기사를 쓰는 게 맞다. 개인적으로는 장학금을 받아 학교를 나왔는데, 그런 점에서 대학 동문들을 곤란하게 하거나 동문 연줄을 활용해 (기사를 빼달라는) 부탁을 모른 척 할 때가 무척 마음에 걸렸다. 비법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해석 여지에 논란은 있을지언정, 최소한 ‘없는 이야기’는 안 쓴다고 평이 나게 가이드라인을 삼으면 심하다는 ‘비판’의 소리는 듣더라도 ‘비난’ 대상은 안 된다는 결론을 낸 적이 있다(부수적으로는, 착오가 있었어도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는 정도로 검토 수준을 맞추면 된다).

이렇게 저격수 노릇을 하는 직종이 동서고금을 통해 몇 종류가 있었고, 오늘날에는 검찰을 위시한 수사-소추기관, 기자나 국회의원 등 몇 종류만 남은 것 같다. 과거 로마시대에는 이 모든 종류가 사실상 한 묶음이었다. 어떤 비리 정보가 있는 개인은 공개적으로 재판에 회부할 수 있었다. 소추와 변론을 모두 하는 오라토르와 달리 검사역만 치중하는 델라토르가 있었다고 하는데, 오라토르 중에는 원로원 사람들도 많았으니, 국회에서 공론화와 처벌까지 모두 처리했던 셈이다.

공공적으로 비리 처결을 업으로 하는 검찰 제도가 확립돼 있지만, 오늘날에도 많은 나라에서 정치인과 언론의 저격 기능을 용인하고 있다. 이는 검사는 도덕적 영역은 논외로 하고 형사법 한계에 얽매이는 데다, 역사적 연원에 기반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언론의 경우, 로이터 같은 통신사의 창설 개념은 정보 장사 개념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신문 매체들이 발달하면서 아젠다 세팅 개념(오피니언 리더 기능)을 같이 겸하는 쪽으로 발달했기 때문이다.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 칼럼을 게재해 프랑스 주류 사회에 돌을 던진 소규모 매체나, 대한제국 시대 비판적 기사와 논설을 실어 미움을 받다가 결국 사장 서재필이 미국으로 망명한 독립신문 사례를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미국 재벌 스탠더드석유회사의 죄상을 폭로, 미국식 재벌 개혁 논의를 공론화한 것도 아이다 타벨이라는 언론인이었다.

정치인의 공격 기능은 영국 찰스1세 치세에 심하게 비판적이었던 크롬웰의 의원 생활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반값 아파트 등 정책 아이디어로 유명한 홍준표 의원도 거물로 성장하기 전에는 상대 정파의 문제점을 찾아내 의혹을 제기하는 저격수로 악명을 날렸다.

저격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검찰은 떡값 검사, 섹검 소리를 듣는 데다, 정치적으로 휘둘린다는 군사정권 시대의 오명을 이번 정권 들어 다시 꺼내 입고 있다. 정치인들이나 언론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아, 비판 아이템을 제기하면 정치적으로 배경이 깔려 있거나, 출입처 손보기를 하는 것이냐는 시선이 쏟아진다.

대표적 저격수로 급성장하던 강용석 의원이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병역 의혹 관련 비판을 제기했다 결국 의원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우선은, 강 의원 스스로가 사퇴 운운하면서 공언을 해 모양이 우습게 됐고, 남의 집 영식을 공격 대상으로 헤집는 데 대한 마음의 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문제가 안 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의사들도 그 정도 나이와 체격에서는 그렇게 두꺼운 등 쪽 피하지방이 있을 수 없다는 의혹을 제기했을 정도이니, 공인의 아들에게 병역 관련 의혹이 있는 게 아니냐, 그것도 아버지의 뒷줄을 이용한 게 아니냐는 공세를 펴는 일은 거칠지만 필요한 문제 제기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강 의원을 괴롭히고 결국 상황이 ‘대단히 특이한 체질을 가진 젊은이를 둘러싼 해프닝’으로 나오자 금배지를 스스로 떼게 결심하게까지 한 것은 일각에서 제기된 “왜 그러고 사니?” 류의 비난 물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격수를 의식해 조심에 조심을 하지 않은 공인, 기업 그리고 기관들이 장악한 나라는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유능한 저격수 정치인을 떠나보내는 문제에 불감증을 가진 사회 풍조는 재고의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