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30대 중반쯤 되었을 때다. 늘어나는 허리둘레, 처지는 뱃살을 막아볼 요량으로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동네 스포츠센터 수영 강습반에 등록을 하고 출석한 첫날, 강사가 처음 나온 사람은 초급반으로 모이라고 했다. 초급반이라니? 초등학교시절 여름철만 되면 저수지에서 살다시피하며 수영을 했던 경험이 있는 내게 초급반으로 가라는 말에 수긍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손을 번쩍 들고 “저는 과거에 수영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다소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내 말을 듣던 강사는 내게 “그럼 한 번 수영을 해 보시죠”라고 했다. 나는 그러면 그렇지 내가 어떻게 물에 뜰 줄도 모르는 초급반 수강생들과 함께 수영을 배울까? 하는 심정으로 보란 듯이 풀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헤엄을 쳤다.
하지만 20년도 훨씬 전에 저수지에서 헤엄을 치던 실력으로는 25m 코스를 완주하기에도 숨이 찼다. 물에 뛰어들 때와는 달리 약각 기가 꺾인 태도로 풀장 밖으로 걸어나오는 내게 강사는 한 마디 툭 던지고 시선을 돌렸다.
“초급반으로 가세요.”
그때부터 나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물장구치는 법에서부터 시작해서 숨쉬기, 팔 젓기 등 기본자세를 배우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였다. 중급반 상급반에서 수영을 배우는 수강생들에 비하면 나는 그야말로 올챙이와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1년여의 기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지루하기도 하고 힘든 과정을 참고 수영강사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며 수영을 배우다 보니 평형, 자유형, 배형, 접영 하나 하나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대가를 지불하고 개인적으로 코칭을 받아본 경험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수한 개인코치들이 나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고 도 할 수 있다. 다만 그들이 내개 금전적인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 오늘날의 코치들과 다를 뿐이다. 당시는 대개가 그러했지만, 유년시절 대가족 가정에서 자란 나는 나면서부터 고모의 손에 돌봄을 받았고, 할머니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리고 취학 전에 할아버지한테 천자문을 배웠던 기억이 난다. 지금 나의 한자 실력이 그때 할아버지한테 배운 수준이다. 그뿐이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마당 건너에 사는 사촌, 육촌 형제들과 같이 날마다 해가지는 줄 모르고 몰려다니며 놀았다. 지금으로 치면 그분들은 나에게 놀이코치, 학습코치 그리고 라이프코치 등의 역할을 해준 셈이다.
요즘 아이들은 영어와 수학과외 그리고 음악 미술 등 특기 과외 정도는 기본이고 심지어 체육과외까지 받는다고 한다. 그밖에도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도 있다. 고립된 환경 속에서 사는 요즘 아이들은 과거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개인코칭과 집단코칭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돈을 내고 놀아줄 사람이나 이야기해줄 사람을 구하는 셈이다. 그들 곁에는 생활속에서 코치역할을 해주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도 삼촌들도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코칭이 필요한 이유는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 ‘조하리의 창(Johari’s window)’이라는 용어가 있다. 심리학자 조하리가 인간이 상대방과 의사소통을 하는 마음의 창을 네 영역으로 구분한데서 비롯된 용어이다.
인간의 마음을 관찰할 수 있는 네 개의 창이 있다. 자신도 알고 상대도 알고 있는 ‘열린(open) 창’, 자신은 알고 있지만 상대에게는 숨겨지는 ‘숨겨진(hidden) 창’, 정작 자신은 모르지만 상대는 쉽게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blind) 창’, 상대나 나나 모두 알지 못하는 ‘암흑의(unknown) 창’이 그것이다.
아무리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도 자기 자신의 일부만을 알 수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때문에 객관적인 시각에서 나를 관찰하고 잠재력을 일깨워줌과 동시에 장점을 더욱 강화시키도록 도움을 주는 코치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훌륭한 선수 곁에는 훌륭한 코치가 있다.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를 올림픽 우승으로 이끌어준 것이 오소 코치였다면, 박태환 선수에게는 노민상 코치가 있다. 그만큼 선수들에게는 어떤 코치를 만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운동선수나 예술인들만이 코치를 필요로 하는게 아니다. 그들 못지않게 코치가 필요한 사람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에 막 뛰어든 젊은이 들이다. 취업이 어렵다보니 일단 취업을 하였다가 채 몇 년이 되지 않아 이직을 하는 젊은이들이 30%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뚜렷한 가치관과 명확한 현실인식이 없이 이리저리 전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꿈도 비전도 없다. 자기 자리를 지키기 조차 점점 힘들어진다. 그래서 일부는 자기생각만 믿고 철저한 준비 없이 개인사업을 시작하였다가 낭패를 보기도 한다. 평생을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그 누군가가 방향타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있지만, 명예퇴직이나 은퇴를 하고나면 그야말로 망망한 대해에 혼자 남은 신세가 된다.
하긴 요즘은 은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평생현역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설혹 경제적 여유가 있을지라도 가만히 앉아서 어른대접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무데도 없다. 현역이되 철저한 프로페셔널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코치가 필요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 전혀 새로운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과거 우리들의 선조들이 지역공동체 그리고 가족 공동체 안에서 코치 역할을 주고받으며 성장하고 또 노년을 보냈다면, 현대에 와서는 지역과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난 그 어디에선가 항상 프로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코치의 도움이 필요하다.
장중구 한국코치협회인증코치 / 공학박사 / (현)상진기술엔지니어링 전무 / (전)삼성전자 생산기술센터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