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2.02.15 14:18:59
중국은 현재 국제경제가 고난에 처한 상황에서 거의 유일하게 구원투수역을 할 수 있는 국가로 꼽힌다. ‘아쉬운 소리’를 하러 온 유럽연합(EU) 고위 관계자에게 말로만 성찬을 차려준 것으로 나타나, 실상 중국은 유로존 재정위기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아 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비단 유럽 부채 문제에 대한 지원뿐만이 아니다. 여러 곳에서 패권국가 중국의 행보가 세계절서에 유익하지 않게 가고 있다는 위험 신호가 감지된다. 주변에 위치한 한국으로서는 여간 신경쓰이는 대목이 아니다.
◆유럽 지원 요청에 ‘입으로만’
14일(이하 모두 현지시간)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반 롬퍼이 EU 상임의장과 회동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유럽 위기 해결을 위해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선 여전히 발언을 회피했다.
원 총리는 “중국은 유럽 부채 문제 해결에 참여를 확대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또한 "EU 측과 긴밀한 협의와 협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 총리는 그러나 유럽에 대한 구제금융 제공 또는 국채 매입 약속 등 실질적인 조치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은 책임있는 경제대국으로서의 태도로는 적절치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는 그리스 추가 지원이라는 문제에 대강의 틀이 구축되면서 어려움을 넘길 가능성이 커졌지만, 중국 등이 구원 투수로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이미 나온 바 있다. 이는 그리스에 대한 지원을 하는 문제에 대해 유럽 내부에서도 의견이 조율되기 어려운 사정 때문이다. 일단 유럽 재무장관 회의가 컨퍼런스콜로 대체되었는데, 이는 그리스가 이행 조건에 대해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경고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한편, 유로존 내부에서도 그리스 문제에 대한 지원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함께 나오고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13일(현지 시간) “(긴축) 프로그램 조정은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 목표는 그리스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그리스를 경쟁력 있는 국가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렇게 의견이 엇갈리는 사정이 유지되면, 유로존 내에서 가장 탄탄한 경제 구조를 가진 독일 내에서도 다른 부실 유로존 국가들을 위해 추가 부담을 지는 데 달가워하지 않는 목소리가 높아질 공산이 크다. 3월20일로 바짝 다가온 그리스 채무 이행 시한까지 큰 자금 흐름을 구성해 내기에는 유로존 사정이 녹록하지 않다. 이런 상황은 중국 등 경제력이 강한 ‘비유로존’ 국가의 도움이 없는 한, ‘장기전’인 유럽 재정위기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에 힘을 싣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원 총리의 이번 발언은 이런 상황 속에서 나온 ‘속 빈 강정’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물론 중국이라고 해서 경제에 대한 부담이 없을 수는 없다. 일단 러시아나 미국 등처럼 가까운 시일 내에 ‘시진핑 체제’로 이행할 것이라는 정권 교체가 점쳐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큰 돈을 대외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고, 일명 중국 경착륙론도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유럽에 이런 겉치레 접대 발언을 하는 와중에 대외적으로 자신감을 강조하고 나서는 등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당의 통제를 받으므로 사실상 국정홍보 기능이 큰 관영 신화통신은 14일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중국 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을 전망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대국민용 프로파간다가 깔린 보도이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유럽 지원 요청을 따돌리다시피 한 상황과 모순되는 보도다. 결국 대외적으로도 중국의 무의식에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발언해도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으로 못 볼 바도 아니다.
◆유럽 압박하는 중국, 환경 문제 개도국 불만 응집 본격화
중국이 평화롭게 발전을 도모한다는 '화평굴기'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점차 강경한 패권주의 속내를 드러내는 일이 늘고 있다. 사진은 중국의 대표적 상징인 베이징 천안문광장. |
EU는 지난 1월1일부터 유럽을 출입하는 모든 외국 항공사를 대상으로, 정해진 허용량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경우 탄소 배출 부담금을 물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에 대한 불만을 정면으로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일방적인’ 조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이 통신사 보도만 보면, 시종일관 외교적 레토릭을 생략하고 공세를 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일명 BASIC국가(중국과 브라질, 인도와 남아공)들의 불만인 ‘그간 환경을 파괴해 온 선진국들이 우리에게 이제 환경 핑계로 족쇄를 채우려 한다’는 논리를 이제 정식으로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풀이다.
하지만 이런 행보는 자국의 이익이나 신흥국들의 공감대를 내세우는 차원, 즉 소규모 그룹의 좌장 노릇으로서는 몰라도 중국의 현위치에 비하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국제인권 이슈에 무관심, 구미제국식 무역 룰에도 불만 노골적
미국 군사 관련 연구기관인 IHS제인은 중국의 연간 국방예산 지출이 오는 2015년까지 지난해 규모의 배로 증가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최근 선보였다. 이 보고서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다른 주요 국가의 국방예산 합계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패권국가로의 이행이 본격화되는 셈이다. 바랴크 외에도 본격적으로 추가 항모 건조를 추진할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어, 이제 본격적으로 대양해군 시대를 개막하는 것이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다.
남사군도 분쟁 등을 놓고 베트남 등 이웃들과 잡음을 여럿 빚고 있는 중국은 이제 미국과 본격적으로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맞서게 된다.
이런 상황에 북경을 이끌 차기 수장감으로 꼽히는 시진핑 국가 부주석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공정한 무역 룰을 놓고 의견 대립을 보인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 백악관을 방문한 시 부주석과의 면담에서 “지난 20년간 중국의 경제적 발전을 보며 우리는 힘과 부가 늘어날수록 책임도 그에 따라 늘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모든 사람들이 같은 규칙에 따라 활동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시 부주석은 “이번 방문 목적은 지난해 후진타오 주석과 오바마 대통령 간의 합의의 중요성을 증진시키고 상호이익과 상호존중의 바탕위에 양국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이라고 선을 긋고(즉 지난 번 대화 이상의 부담을 지기 싫다는 것), “미국의 각계각층을 만나 상호이해를 깊게 하고 합의를 넓혀
중국은 경제 성과를 내면서 G2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지만 막상 내부적으로는 분배 불평등 심화와 외부적으로는 구미 제국의 견제, 세계경제 선도국가로서의 역할 분담에 인색하다는 이미지 등으로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은 경제 성장의 상징인 상하이 푸동지구. |
실제로 원 총리가 시리아 문제에 대해 유로존 관계자에 “우리는 어느 일방 당사자에 대해 편을 들지 않는다는 절대적인 정책을 갖고 있으며, 여기에는 시리아 정부도 포함된다”는 보도(아일랜드 RTE 뉴스)에서 보듯, 중국의 태도는 오불관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메르켈 독일 총리가 시리아 추가 제재를 검토하겠다는 최근 발언과도 대조되는 부분이다.
◆패권주의 경향 짙어지면서 현지화 전략 급부상할 듯
이런 상황은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부담을 주는데,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도 이런 중국의 태도 변화를 상당히 유의해야 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주목할 이웃은 아세안이라는 의견들이 의미있게 나오고 있다.
외교안보연구원은 아세안이 EU식 경제통합 모형을 최종 목적으로 하지는 않지만(외교안보연구원 ‘2012 국제정세 전망’), 상당히 의미있는 경제 블록이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 연구서는 “이미 아세안 국가 중 선발 6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싱가포르·브루나이·필리핀) 간에는 99%의 상품에 대해 무관세가 적용되고 있다”고 소개하는 등 이들의 연대 시스템에 주목하고 있다. 이미 통상정책과 관련해 유관기관에서는 상당히 구체적 분석까지 마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지난해 말 ‘중국의 동아시아 진출 전략과 동아시아의 대응: 중국의 무역·투자·원조를 중심으로’라는 보고서에서 중국의 부담을 아세안과 연대해 풀자는 의견을 개진했다. 박번순 연구전문위원은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시장의 지위를 지켜야 하고, 중국에 집중되는 경제협력이 불균형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전문위원은 “아세안은 중국의 동아시아 진출로 최대한의 편익을 누리기를 원하지만 동시에 부담도 느끼고 있다”면서 동남아 지역이 역내 통합으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2015년까지 정치, 경제 및 사회문화 공동체를 창설하고자 할 때 우리가 이에 동반자로 거리감을 좁혀야 할 필요를 지적한다. 박 전문위원은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시장의 지위를 지켜야 하고, 중국에 집중되는 경제협력이 불균형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아세안과 호혜적인 무역을 확대하고 △경제발전 경험 등 지식 원조를 확대하여 소프트파워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이 나날이 힘을 키워가고, 중국식 국가 이기주의 역시 팽창하는 상황에서 현지화를 진행해야 할 필요도 높아지고 있다.
역시 구랍에 발표된 삼성경제연구소의 ‘일본기업의 대중국 전략 변화와 한국기업에 주는 시사점’ 연구보고서는 일본기업은 최근 몇 가지 커다란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대중국 전략에 큰 변화를 시도, 이미 중국에서의 위상을 높여 나가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중국을 그저 값싼 노동력 공급처(생산기지)로 이해해 왔던 우리의 전략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고, 이런 상황이 중국 현지시장에서의 경쟁국인 일본에 의해 극심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이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일본기업으로부터의 기술이전과 학습효과로 인해 중국기업의 캐치업 속도가 빨라질 것이며 한국기업은 한국에 진출한 일본기업과의 경쟁도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 한국기업의 (중국에서의) 불확실성이 증대될 것이라는 점은 일본기업에 대한 핵심부품 의존현상에 기인한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즉, 중국 등 신흥국을 무대로 일본기업의 목표영역이 기존 한국기업의 경쟁 포지션과 겹치고 있어 경쟁이 불가피한 실정이라면, 이런 일본식 현지화 공략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는 새 과제가 부여된 셈이다.
나날이 이기적이고 불편한 이웃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국으로부터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중국에 한 발 더 다가가는 한편으로 다른 패를 확보해야 하는 이중고가 있는 셈이다. 이런 어려운 과제를 푸는 경우, 동북아의 중재자 그리고 책임있는 국가로서 동아시아 통합에 기여할 수 있겠지만 이는 쉬운 일은 아니다. 동아시아 및 세계와의 협력에도 노력해야 한다는 고담준론 차원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중국을 연구할 필요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