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오영대 교육감님이 귀천하신지(지난 1월 4일) 오늘로 40여 일이 된다. 지인에게 폐를 끼치는 장례절차 없이 곧바로 안장해 달라는 유언과 함께 해남 선산으로 가셨다는 부음을 언론에서 접한 지 40여 일이 된 것이다. 교육감님일 때도 선이 굵었는데 돌아가실 때도 거인답게 가시니 애틋함이 더하다.
故 오영대 전남도교육감 |
필자는 95년 5월 초부터 97년 10월 하순까지 전남도교육청 매곡동 청사에서 교육감님을 뫼셨다. 전남교육의 수많은 시책을 다듬으면서 교육감실에 불려가 지침을 받고 결재를 받기를 2년 반 동안 했다.
교육감님은 시도에서 처음으로 평교사에서 전문직을 선발했는데, 필자는 그 전문직 공채 1기 출신이다. 처음으로 평교사 장학사를 배출했을 때, 그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래 10살도 더 차이 나는 타 시도 전문직들과 전국단위 전문직 연수를 받을 때면 필자는 그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내야만 했다.
교육감님은 취임일성으로 우리교육의 당면과제를 교육의 본질 회복이라고 하셨다. 전인교육 실천, 진로.직업교육 강화, 교육사회 조성을 3대과제로 정해 일사분란하게 밀고 나가셨다.
그 파워풀한 행정력은 특유의 카리스마를 배경으로 빛을 발했다. 96년 정부에서 5.31교육개혁안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이 교육감님이 지난 3년 동안 추진한 시책과 많은 부분에서 맞아 떨어졌다.
그런 연유로 중앙정부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시도교육청 평가에서 전남이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특히 마음의 교육, 실천적 인성교육, 농어촌 교육 활성화 시책 등이 주목을 받았다.
50년 동안 변하지 않았던 교실을 바꾼 표준학교 가꾸기, 해외연수의 모델을 보여준 교민 합동 연수, 전국최초로 개통한 전남교육정보망, 그리고 교직원 연립 사택 건립 등은 그 당시로는 획기적인 내용이었다.
현재 대부분의 학교에서 무상급식이 이뤄지고 있는데 기실은 교육감님 때 그 여건이 마련된 것이라고 봐야한다. 96년까지 급식시설을 완료했고, 97년에 전 초등학교에 급식이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읍면별로 지역민.학생.교직원 합동 체육대회가 실시된 것도 그 때이다. 지금 전남교육의 커다란 자산이라 볼 수 있는 시설 중에 그 때 이뤄진 것이 퍽이나 많다. 야영.수련장과 학생 교육원, 폐교를 활용한 학생의 집도 당신의 작품이다.
필자는 지금도 부끄럽다. 한번은 한문 투를 좋아하신 교육감님의 취향에 맞춰 교육감님 명의의 글을 써 가지고 갔는데, 인간미의 미자가 아름다울 미(美)가 아니고, 맛 미(味) 임을 지적해 주셨다.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 이후 교육감님께 가지고 가는 문서나 글의 마지막 교정은 언제나 사전이나 자전을 놓고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앉아서 글을 교정해 줄 때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내 고향 월출산 바위가 내려와 앉은 듯 항시 바위처럼 앉아계셨으며,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작은 글씨를 편하게 읽으셨다. 교정해줄 때면 어휘의 그 정확함과 필체의 그 유려함에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다. 한문 투의 반초서의 글씨는 한 획도 어긋남이 없었다.
나이 72세 되던 월례 조회 시, 세월이 시속 72킬로미터로 떠나간다고 하여 장내를 부드럽게 하기도 했다. 임기를 며칠 앞둔 마지막 국정감사장에서 "오늘 이 자리는 지난 1년간의 전남교육행정에 대한 감사 자리가 아니라, 제 교육인생의 감사 자리라 생각하고 섰다"는 말씀에 국정감사장이 숙연해 지기도 했다.
전교조와의 갈등 해결, 강단 있는 행정, 모두가 우려했지만 소신으로 나아간 교육개혁은 오영대 교육감님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학습의 이론을 다시 쓰게 한 '폭넓은 학습'은 오영대 교육감님의 또 다른 대명사다. 광주시 교육장 시절, 전국단위 행사장에서 당신이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해야하는데 진행요원의 잘못으로 준비가 안 되어 낭독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즉석에서 국민교육헌장 393자를 외워 낭독하던 일은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이기홍 목포교육장 |
필자는 며칠 전, 교육감님의 묘소에 들렀다. 아직 황톳기도 가시지 않은 묘 봉우리가 나를 침묵하게 했다. 해남군 송지면 금강리 월강마을 뒷산에 위치한 교육감님의 묘역에는 시속 88킬로미터로 질주했던 세월이 멈춰있었다. 먼저 간 아내 곁에 누워계신 교육감님께 생전에 잡숫지 않는 것이지만 술 한 잔 올리며 명복을 비는 큰 절을 올렸다.
이 세상, 누가 가고 누가 오는가. 어떻게 오고 어떻게 가는가. 달빛 흐르는 월강마을을 휘돌아 나오면서 교육감님께서 항시 하시던 말씀을 다시 생각했다. "사람의 육체는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마음은 정신을 낳게 하고, 정신은 생각을 낳게 한다. 이 생각을 위해 평생 배우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봄 기운은 오영대 교육감님의 혼불인 양 금강리 들녘을 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