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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 잃은 '신용평가사' 어떻게 평가하나

'독자신용등급제'는 검토 '순환평가제'는 아직…

정금철 기자 기자  2012.02.13 1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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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난해 1월 대한해운(005880)은 회생절차 개시 신청 전까지 신용평가사들은 회사채 신용등급 'BBB+'를 부여했으나 회생절차 신청 이후에서야 'D'로 등급을 내렸다. 다음 달인 2월에도 진흥기업(002780)은 두 차례 1차 부도위기에 몰린 후에야 비로소 신용등급이 떨어졌고 이달 영업정지를 당한 부산저축은행도 일이 터진 다음 신용등급이 조정됐다. 

특히 2010년 12월 NICE신용평가는 '영업기반이 안정적'이라며 LIG건설의 기업어음(CP)에 'A3-' 등급을 매겼지만 결국 자금난으로 3월 21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LIG건설은 법정관리 신청 불과 열흘 전까지 기업어음을 발행했다.

이렇듯 뒷북 평가, 신용등급 퍼주기, 뒤 봐주기 등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좀처럼 개선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수수료 체계의 개선, 독자신용등급(Stand-alone rating) 및 순환평가제도의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에 앞서 신용평가사들의 자정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신평사의 신용 자체가 문제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해 1년 이상 장기자금을 직접 금융시장에서 조달하려면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을 첨부해야 한다. 발행기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투자자 보호와 채권시장의 합리적 가격 형성이 목적이다.

기업 신용평가는 금융상 채무에 대한 전반적인 적기 상환능력 정도에 따라 'AAA'부터 'D'까지 크게 10개 등급으로 나뉘며 'AA'부터 'B'까지는 동일 등급 내 구분 필요성이 있는 경우 '+' 또는 '-' 기호를 붙여 표시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AAA, AA+, AA, AA- A+, A, A-, BBB+, BBB, BBB-는 투자적격등급이며 BB+, BB, BB-, B, CCC는 투자 요주의 등급, C는 투자부적격 등급이다. D는 현재 채무불이행 상태인 경우를 뜻한다.

이러한 평가를 내리는 국내 신용평가사는 한국기업평가, NICE신용평가(한국신용정보), 한국신용평가 등이 대표적이며 지난해 말 기준 신용평가 회사채 평가기업의 합계는 992개사로 2010년 대비 2.1% 늘었다. 이처럼 평가 대상 기업은 매해 늘어나고 있지만 신평사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는 과거와 다를 바 없다.

우리나라는 지난 1985년 기업어음 적격업체 선정기준으로 신용평가제를 도입했고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신용평가 관련 규제체계 개선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 신용평가체계는 주요 국가와 비교해 정책의존도가 높고 평가사 진입 및 퇴출이 어려운 구조로, 평가사의 위법행위에 대한 제재수단 역시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문제로 유럽의 경우 2009년 신용평가 등록요건을 도입, 작년 유럽증권시장감독국(ESMA)이 신평사를 승인하고 있으며 같은 해 신평사 규제 법안을 만들어 행위규제를 엄격히 했다.

미국도 2006년과 2009년, 2011년 국제공인통계평가기관(NRSRO) 규정을 개정해 지정제를 등록제로 전환하고 유지요건을 강화하고 있다.

◆평가가 필요한 국내 신용평가기관들

발행사가 수수료를 부담하는 현행 신용평가 수수료 지급 방식에 따른 논란은 신용평가 선진화를 위한 첫 번째 해결 과제다.

국내 신평사 수입은 일반적으로 발행사인 기업의 평가수수료다. 회사채 발행이 목적인 기업은 신용평가가 필요하고 다각화한 수익원을 갖지 못한 국내 신평사는 이득을 위해 신용등급에 관대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게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암묵적인 '룰'이다.

이에 대해 국내 신평사는 기업의 등급을 내리면 자본시장 불안정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만큼 평가에 인색하기 힘들다는 궁색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내 신평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작년 건설이나 해운 등은 업황이 좋지 않다는 전망이 팽배했었는데 이럴 때 신용등급을 강등하면 회사채나 기업어음 발행에 문제가 생겨 자금조달이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이럴 경우 회사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되면 업황 악화가 더욱 심각해질 수도 있다"며 "대기업이라든지 내실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들은 회생 가능성에 어드밴티지를 줘 통상적으로 신용등급을 많이 깎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한 기업들의 신평사 조련도 문제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신평사들을 피해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평가를 하는 신평사를 선택하는 관행이 업계에 만연해있다.

동양증권 강성부 채권분석팀장은 "발행사들이 신평사를 선택하는 구조인 만큼 신평사들이 발행사의 눈치를 안 볼 수는 없다"며 "신평사에 대한 무작정 질타보다는 정부 차원의 명확한 개선안 도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유럽 등 자본선진국은 수수료 체계에서 기업들과의 이해상충과 관련한 문제 해결 방안으로 평가보고서에 평가수수료 등의 기재를 의무화하고 있다. 정부가 기업에게 수수료를 일괄 징수한 후 실적 기준으로 신평사에 배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으로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신용평가 수수료 체계의 개선 외에도 독자신용등급 및 순환평가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13일 자본시장연구원 김필규 선임연구위원은 "신용평가사의 신뢰성과 공정성 제고를 위해 국내 신평사의 선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에 대한 방안으로 △신용평가 진입 및 감독, 규제체계의 개선 △독자신용등급 제도 도입 △신용평가 관련 정보공시 확대 △신용평가 결과 비교 공시 △신용평가 애널리스트 등록제 도입 △순환평가제 도입 등을 제시했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이 이 가운데 가장 주목하는 방안은 바로 '독자신용등급제'와 '순환평가제'다. 국내 신용평가 등급은 업체의 상환능력과 외부지원 등을 고려해 매기고 있으나 글로벌 신평사들은 독자신용등급 제도에 따라 계열기업이나 정부 추가지원 등을 배제, 재무적 건전성과 향후 전망을 반영해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평가하고 있다.

이르면 올 하반기 도입될지 모를 독자신용등급제도는 벌써부터 주요기업들의 반발에 직면해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업황 불황을 겪는 대기업 계열사는 모기업의 지원을 배제한 평가로 신용등급이 하락할 가능성이 커져 자본조달에 비상등이 켜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순환평가제도는 신용평가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평가사가 일정기간 평가를 한 이후 다른 평가사가 평가를 담당하는 제도로, 과도한 점유율 경쟁을 제한해 발행사에 대한 의존도를 축소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은 2010년 신용평가 개혁 법안에서 구조화증권의 순환평가제도 도입 검토를 권고했으며 유럽도 지난해 신용평가 규제 법안 개정안을 통해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순환평가제의 경우 새내기 신평사 육성에 걸림돌이 될 수 있고 업무 해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선제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차례가 되면 평가 용역이 돌아오는 만큼 적당히 업무를 처리할 우려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필규 연구원은 "순환평가에 따른 신평사의 프리라이딩(무임승차)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기존 신평사의 과점구조를 고착화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지난 9일 자본시장연구원 주체, 금융위원회 후원으로 열린 '신용평가 제도개선을 위한 정책세미나'에서는 독자신용등급제와 애널리스트 등록제가 개선 방안으로 선택됐으나 정작 핵심인 순환평가제와 수수료 체계 개편안은 제외됐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현행 수수료 체계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현재로선 마땅한 대안이 나오지 않았고 순환평가제의 경우 추가적 고찰이 필요해 태스크포스(TF)팀의 장기 검토과제로 남겨뒀다"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