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록키’, ‘람보’로 유명배우가 된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한 SF물 ‘저지 드래드’(1995년작)는 2000년대의 황량한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표는 오염돼 극히 좁은 도시를 빼고는 저주받은 황무지처럼 됐다. 거대 도시에 인구가 폭발하자 치안이 불안하다. 그 해결책으로 경찰권과 기소권, 사법권을 한꺼번에 손에 쥔 소규모 엘리트집단(판사가 직접 사법경찰관, 검사 역할까지 모두 하는 형태)이 선출된다.
주인공 드래드는 이 저지 역할에 충실한 인물이다. 주인공이 살인 누명을 쓰게 될 때(증거 조작) 사형 위기에 몰릴 때, 그의 목숨만은 간신히 구하게 되는 것은 늙은 법관(명배우 박스 폰 시도어가 분했다)이 어느 법전 한 귀퉁이에 있는(사문화돼 있던) 조항에 따라 자신이 도시의 대법관직에서 은퇴, 황무지로 총을 들고 악을 사냥하는 방랑자로 나가면서 주인공의 죄를 일부 탕감해 주는 강수를 둔 데 따른 것이었다. 주요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다.
한나라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 데 이어 당명마저 새누리당으로 바꾸는 등 민심을 다잡기 위해 연일 분투하고 있다. 그런데 비대위에 영입된 김종인 전 장관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경제민주화 관련 논란이 뜨겁더니, 이에 연이어 공천 문제로 모든 노력이 도로공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일명 ‘김종인 논란’은 차제에 논하기로 하고, 공천 문제는 이른바 살신성인의 자세로 당이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택한 초강수 중의 초강수다. 그런데 막상 이 구상이 의원들의 눈치보기 특히 중진 및 원로들의 버티기로 인해 건곤일척이 아니라 좋은 게 좋은 것, 혹은 용두사미가 될 공산이 크다 한다.
이는 탄핵 역풍(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으로 한나라당 등이 오히려 총선에서 고전한 사건)이 거세던 17대 총선 무렵, 공천심사 전에 영남권 중진 14명을 포함해 27명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풍경과 대조된다. 당시 부산의 경우만 해도,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스스로 몸을 던져 당이 기사회생할 길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의 모양새는 탄핵 역풍에 맞바람을 불러일으키려던 17대 총선 무렵이 아니라, YS의 재산공개 파동으로 여러 정치인이 심판대에 세워지자 억울함을 호소하던 무렵과 닮아 있다.
당시 박준규 전 국회의장이 서운함을 드러내던 것에는 그나마 억울함의 기반이라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내가 정치 자금을 어떻게 만들어 쓴 줄 알면서도 몰아붙였다고 못내 서운해했다고 전한다), 지금 중진 이상 시니어 정치인들이 박근혜 비대위 체제의 결단 압력에 저항하는 것에는 그저 “왜 나만 갖고 그래!” 이상의 코드를 읽어내기 어렵다. 친이는 친이대로 왜 “MB가 잘못한 일을 다 우리가 뒤집어 써야 하나”라는 것이고, 친박은 “여태 당하기만 했는데 이제 와서 물러나라는 소리냐"며 나름대로 억울함의 논리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탄탄한 구조 하에, 4대강 전도사 소리를 듣는 이재오 특임장관(그는 문국현 전 의원 관련 부담이 있다. 이른바 정치살인의 수혜자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이다)도 공천 신청을 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고, 나경원 의원도 다시 중구에 출사표를 던진다고도 한다(나 의원은 급식 문제로 이번에 다시 나서면 당에 부담만 줄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보온공’이라는 놀림감으로 전락, 당 이미지 마이너스 원흉이 된 안상수 전 대표도 과천시민들의 사랑에 다시 한 번 기댈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쯤 되면 일단 한나라, 아니 새누리의 깃발만 받아서(공천) 들면 당선된다는 영남권 의원들이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는 것은 애교에 가깝다.
이런 와중에 김성수 의원이 불출마 선언의 용단을 내려 노장들의 압박에 나선 것이나 홍준표 전 대표가 공천 신청을 하지 않겠으니 전략 공천 등 당의 필요대로 쓰라고 나선 것은 신선하다. 특히 초선에 친박이라는 점에서 이번 갈등에서는 이미 비껴서 있는 상황에 대의를 따라 나선 김 의원도 특기할 만 하지만, 홍 전 대표의 선택이야말로 그의 인생역정에 비춰보면 상당히 의미가 깊은 길이다.
검사 시절 내내 특수부나 공안부 같은 훈훈한 곳에는 발을 제대로 들이지 못했던 비주류였던 데다, 선배 검사를 수사해 시쳇말로 ‘왕따’가 돼 법복을 벗은 홍 전 대표는 국회 입성 이후에도 ‘저격수’로 반대 정파의 미움을 받는 구박덩어리 정치인이었다. 오죽 했으면 그가 선거법 위반 관련으로 의원 배지를 잠시 뗐을 때 ‘중앙일보’에서는 만평을 통해 ‘DJ 저격수, 가다’라고 표현했을까. 당에 최병렬 전 대표 몰아내기 바람이 불었을 때 엇박자를 냈다가 비주류로 다시 내몰린 것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나중에 그는 서울시장 후보감으로, 그리고 원내대표로 당 대표로 성장했다(기억을 못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당의 대통령 예비후보로도 이름을 올린 바가 있다). 이런 그의 입신은 어느 날 줄을 잘 서서라거나, 어떤 딜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잘 알지도 못하는 환경-노동을 주특기로 공부하면서(초임 정치인 시절에 노동 전문가인 반대 정파 정치인들을 마크하기 위해 공부한 것이라고 함), 이후에는 환노위원장을 맡으면서 그는 정책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결과에 가깝다는 해석이다.
말을 막 해 늘상 문제가 되기는 했지만, 그런 앞뒤를 재지 않은 태도는 “아랫사람들의 잘못에 ‘사법책임은 아니지만 관리책임’은 지겠다”며 훌훌 의원직 사퇴 선언을 하던 모습으로도 이어진다. 당이 요구하자 편안한 송파갑 지역구를 버리고 동대문으로 덥썩 자리를 옮겨 탄핵 역풍에 맞서 당선됐던 일도 기억에 새롭다.
최근 당 대표 직함을 내려놓을 당시에도, 그의 당 구하기 전략에 대해 박 전 대표의 지지 표명이 없어서였다는 언론 해석이 뒤따랐다.
그렇게 화려하지만 늘상 실속은 크게 없는 비주류로 머물던 그가 이번에 “나를 적당히 임의로 쓰소서”라는 듯 기발한 선언을 내놨다. 밝은 곳에서 많은 수혜를 누려온, 더러는 호가호위를 해 오던 다선의 거물들 대부분이 위에서 말했듯 혹은 언급은 안 되었지만 더 이상한 케이스를 만들며 불출마 선언 압력을 애써 모른 척 하려 하고 있다.
이런 정황 속에서 노구를 이끌고 황야에 보안관으로 나가던 늙은 법관을 클로즈업하던 영화 속 장면이 새삼스럽다. 노법관은 홍 전 대표와 같이 적고, 양지만 지향하는 거물들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