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토종 커피 브랜드로 스타벅스 등과 당당히 맞서온 카페베네가 이번에는 미국 중심지 뉴욕에서 일을 벌이나 봅니다.
꼭 커피 문화 본고장으로의 토종 브랜드 역수출이라는 애국적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스타벅스를 포함해 테이크아웃 중심이던 뉴욕의 커피 전문점 문화에 한국의 매장과 마찬가지로 앙띠끄(엔틱: 골동품) 분위기가 나는 북카페라는 콘셉트를 도입했다니, 스타벅스풍보다는 이런 분위기의 찻집을 더 좋아하는 기자로서도 이런 공략법을 상당히 응원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한 가지는 카페베네쪽에 당부하고 싶습니다.
바로, ‘미숫가루라떼’가 뉴요커들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기사들의 전언 때문인데요.
언론 기사들을 보면, ‘곡물을 주재료로 한 우리네 미숫가루를 현지 맞춤 음료로…’ 등 표현이 눈에 띄어 우리의 문화를 일부 변형을 하면서도 세계화해 나가려는 노력이 돋보이고, ‘열흘만에 5000잔 이상 판매고 달성’ 등 일단 성적표도 고무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미수가루라떼(Misugaru latte)’라고까지 표기하면서 고집할 이름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아, 오해는 말아 주세요. 뉴요커들이 발음하기 어려우니 이름을 바꾸거나, 외국어로 적당히 작명해 바꾸자는 건 아닙니다.
미숫가루라떼 운운하는 자체가 좀 이상한 대목이어서, 이번 기회에 카페베네가 상품명을 붙이면서 차제에 이렇게 부르자고 우리 한국 갑남을녀들에게도 메시지를 주고 나섰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미숫가루를 알다시피, 각종 곡물의 가루를 볶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미수’를 만들기 위한 재료입니다.
미수란 무엇이냐면, 미시라고도 하는데, 미시는 잘못된 표현이라고도 하고 미수의 고어(엣말)이라고도 하니 일단 이 문제는 사전들의 각각의 편집 태도에 달린 것 같습니다. 미시라는 단어는 ‘이륜행실도(옥산 서원본, 1518년) 6’에 등장하는데, 미시를 만들기 위한 가루가 미숫가루였던 셈입니다.
그러니, 일단 가루를 타 액체를 만들고 이걸 우유(라떼라고 하니 레시피는 직접 못 봤지만, 우유가 들어갔을 것으로 봄)와 섞었거나 혹은 미숫가루를 액체화하는 데 우유를 기본 베이스로 사용했다면 이는 일단 미시+우유라고 할 것이거나 우유 탄 미시가 되는 것이지, 미숫가루가 떠 있지 않는 한 가루 운운하는 것은 문제라는 의견입니다.
무엇보다, 음료는 미수로 한다는 것이 이미 오래 전 사어가 된 게 아닌데(현재도 사전에는 ‘미수’라는 표현이 있음), 무엇보다 네이버사전에는 ‘미식’이라는 단어를 ‘미수’의 비슷한 말로 소개하면서 설탕물이나 꿀물에 미숫가루를 탄 여름철 음료라고 하는 등, 택하기에 따라서는 더 발음이 예쁜(상품화하기도 좋은) 이름도 있습니다.
이 달고 고소한 콜로이드성 음료를 가리키는 단어가 따로 있고, 그 재료명을 +가루라고 해 부르는 것이 옳은 게 분명하면 왜 이렇게 미국에까지 나가서 미숫가루라떼 운운해야 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심지어 그렇게 부르면 길기까지 한데 말이지요(“버카충은 하고 다니냐”는 학생들 은어는 ‘버스카드 충전’이라는 말을 길게 하기 싫어서 그런다고 이해해 줄 법 해도, 미숫가루라떼, 말도 안 맞고 길기까지 한 이건 아니잖아요).
일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그렇게 사용한다라고 우길지 모르겠는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우기는 것하고, 언중(言衆)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교회를 절실히 다닌다”고 근래에 꽤 많은 사람이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여전히 ‘독실히’ 다니는 게 맞는 것과 같습니다. 하다 못해 ‘짜장면’이 ‘자장면’의 속음이라고 사전에 올라가는 데 걸린 세월이 얼마이며, 이는 원래 외래어라 논란 여지가 컸던 것이라 ‘미숫가루물’, ‘미숫가루 한 잔’ 이런 표현은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카페베네에 부탁하고 싶습니다. 이왕 미국에서 이 상품명 붙인 게 얼마 안 되었는데, 한 달이 꽉 차기 전에 바꿔 부르고, 그러면서 한국 언론에 대대적으로 이 단어를 이슈화하면서 계몽성 캠페인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입니다.
카페베네까지 이렇게 부르면, 정말 이 정체불명의 말은 굳어지고 말 겁니다.
도발을 하려면 좀 완벽히 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수 혹은 미식을 사용한 이번 뉴욕 도발은 100점을 노렸지만, ‘미수(未遂)’에 그쳤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