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 달 하순 회사 근처 주민센터를 찾은 A양, A양은 간만에 여기서 새마을기를 봤습니다. 학창 시절 추억에 잠기는 A양, 아울러 A양은 새마을기를 보면서 유럽 재정위기 등 경제난국 속에서 다시금 우리 국민들이 새마을 운동 시절처럼 마음을 다잡아 '한강의 기적'을 다시 일궈보아야 한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A양의 마음 속 한켠에는 그래도 좀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었으니….
새마을기, 다들 보신 지 좀 되었지요?
한때 관공서, 각급 학교 등에는 새마을기가 태극기와 함께 걸려 있었습니다. 이는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던 무렵부터 유지됐던 관행인데요.
한동안 관공서 등에 걸려 있던 새마을기는 그러나 현재는 자취를 감춘 상황입니다.
서울시의 경우는 민선으로 뽑힌 조순 전 시장 시대(이 분은 한국 경제학계의 거두인데 한때 정치를 하셨습니다)에 새마을기를 하기(下旗) 했습니다. 당시 서울시 부시장을 지낸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청양 이면장댁 셋째아들’이라는 책에서 그 추진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새마을기는 박 전 대통령 시대에 학교, 관공서 등에도 게양하라고 지시한 이래 관행적으로 내걸어 왔지만, 새마을운동중앙회는 임의 단체인데 서울시에서 깃발을 걸고 있는 게 옳지 않다고 판단, 시청과 산하 기관에 하기 조치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관련 단체 등에서 거센 항의를 했지만, 이 전 총리(당시 부시장)는 게양하지 않는 게 옳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미리 정한 일정에 맞춰 하기했다고 책에 적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하기 예정에 즈음해 관련 단체에서 항의 방문차 몰려가기도 했으나, 이미 그 자리에 아르헨티나 국기가 게양돼(당시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방문해 새마을기 대신 예우 차원에서 이 자리에 기를 게양) 허탈하게 돌아섰다는 가십성 보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A양이 얼마 전 본 주민센터에 게양된 깃발은 그럼 무엇일까요?
새마을기를 태극기, 시기와 함께 게양 중인 여의동주민센터(서울 영등포구). 하지만 서울시 본청에서는 이미 조순 전 시장 시대부터 새마을기를 하기한 상태다. |
서울시청 행정국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시에서는 조 전 시장 시절 하기 조치 이후 새마을기를 다시 건 적이 없다고 합니다. “서울시에서는 다른 단체 깃발은 달지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영등포구청 설명은 약간 다릅니다. 공무원 생활을 한참 한 고참급으로 생각되는 영등포구청 홍보관광과 관계자가 물음에 답하러 나섰습니다. 이 분은 기자의 문의에 해당 구청에서는 달고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과거 하기 조치 이후 언제 내건 것이냐고 추가 질문을 하자 “(아예) 내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영등포구청의 설명이 이런데, 그 산하 기구인 여의동주민센터에서는 구청 방침을 따라간 것이겠지요.
결론적으로, 당시 이 전 총리는 ‘충돌 불사’라는 초강수를 두고 의미 있는 일을 한 것처럼 기억하고 있지만(회고록에 썼지만), 공무원들은 막상 그렇게 문제를 심각하고 논리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마 잠시라도 기를 내렸다 어느 순간 다시 걸었거나 한 것일 텐데, 분명히 문제의 취지가 설명됐다면 상황이 이렇게 어물쩍 처리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본청 방침이 제대로 챙겨지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불법’은 아니니 비분강개하고 싶은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장이 혹은 본청에서 아무리 말을 해도 아예 ‘아무튼 그거 내린 적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면 일은 심각하다는 생각은 없지 않습니다.
이러니 매번 민선 시장이 바뀌면 또 새 집행부 따라 간다는 소리가 나오고, ‘영혼이 없는 공무원’ 소리가 나오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영혼이 없다고 할 때엔 시키는 대로나 그대로 잘 따라한다는 뉘앙스가 있지만, 이번 새마을기 관련 조사를 해 보니, 영혼은 없고 그냥 ‘곤조’만 있는 건 아닌지 싶습니다. 그러니, 야당에서 선거로 시청에 들어온 조 전 시장이나 이 전 부시장의 말발이 안 섰던 게 아닌지 싶고, 박원순 시장이 많은 걸 바꾼다고 지금 열의를 불태우는 것도 나중에 저 짝이 안 날지, 정말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