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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새마을기 하나 통제 못 하는 서울시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2.10 14: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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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난 달 하순 회사 근처 주민센터를 찾은 A양, A양은 간만에 여기서 새마을기를 봤습니다. 학창 시절 추억에 잠기는 A양, 아울러 A양은 새마을기를 보면서 유럽 재정위기 등 경제난국 속에서 다시금 우리 국민들이 새마을 운동 시절처럼 마음을 다잡아 '한강의 기적'을 다시 일궈보아야 한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A양의 마음 속 한켠에는 그래도 좀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었으니….

새마을기, 다들 보신 지 좀 되었지요?

한때 관공서, 각급 학교 등에는 새마을기가 태극기와 함께 걸려 있었습니다. 이는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던 무렵부터 유지됐던 관행인데요.

한동안 관공서 등에 걸려 있던 새마을기는 그러나 현재는 자취를 감춘 상황입니다.

서울시의 경우는 민선으로 뽑힌 조순 전 시장 시대(이 분은 한국 경제학계의 거두인데 한때 정치를 하셨습니다)에 새마을기를 하기(下旗) 했습니다. 당시 서울시 부시장을 지낸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청양 이면장댁 셋째아들’이라는 책에서 그 추진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새마을기는 박 전 대통령 시대에 학교, 관공서 등에도 게양하라고 지시한 이래 관행적으로 내걸어 왔지만, 새마을운동중앙회는 임의 단체인데 서울시에서 깃발을 걸고 있는 게 옳지 않다고 판단, 시청과 산하 기관에 하기 조치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관련 단체 등에서 거센 항의를 했지만, 이 전 총리(당시 부시장)는 게양하지 않는 게 옳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미리 정한 일정에 맞춰 하기했다고 책에 적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하기 예정에 즈음해 관련 단체에서 항의 방문차 몰려가기도 했으나, 이미 그 자리에 아르헨티나 국기가 게양돼(당시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방문해 새마을기 대신 예우 차원에서 이 자리에 기를 게양) 허탈하게 돌아섰다는 가십성 보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A양이 얼마 전 본 주민센터에 게양된 깃발은 그럼 무엇일까요?
   
새마을기를 태극기, 시기와 함께 게양 중인 여의동주민센터(서울 영등포구). 하지만 서울시 본청에서는 이미 조순 전 시장 시대부터 새마을기를 하기한 상태다.
기자는 A양의 회사 근방에 있는 서울 여의동주민센터(여의동은 행정동명이고, 법정동명으로는 여의도동)를 찾았습니다. 실제로 이날도 깃발이 게양돼 있더군요(사진 참조). 이에 관련, 서울시 정책이 변한 건지 확인해 봤습니다.

서울시청 행정국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시에서는 조 전 시장 시절 하기 조치 이후 새마을기를 다시 건 적이 없다고 합니다. “서울시에서는 다른 단체 깃발은 달지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영등포구청 설명은 약간 다릅니다. 공무원 생활을 한참 한 고참급으로 생각되는 영등포구청 홍보관광과 관계자가 물음에 답하러 나섰습니다. 이 분은 기자의 문의에 해당 구청에서는 달고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과거 하기 조치 이후 언제 내건 것이냐고 추가 질문을 하자 “(아예) 내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영등포구청의 설명이 이런데, 그 산하 기구인 여의동주민센터에서는 구청 방침을 따라간 것이겠지요.

결론적으로, 당시 이 전 총리는 ‘충돌 불사’라는 초강수를 두고 의미 있는 일을 한 것처럼 기억하고 있지만(회고록에 썼지만), 공무원들은 막상 그렇게 문제를 심각하고 논리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마 잠시라도 기를 내렸다 어느 순간 다시 걸었거나 한 것일 텐데, 분명히 문제의 취지가 설명됐다면 상황이 이렇게 어물쩍 처리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본청 방침이 제대로 챙겨지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불법’은 아니니 비분강개하고 싶은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장이 혹은 본청에서 아무리 말을 해도 아예 ‘아무튼 그거 내린 적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면 일은 심각하다는 생각은 없지 않습니다.

이러니 매번 민선 시장이 바뀌면 또 새 집행부 따라 간다는 소리가 나오고, ‘영혼이 없는 공무원’ 소리가 나오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영혼이 없다고 할 때엔 시키는 대로나 그대로 잘 따라한다는 뉘앙스가 있지만, 이번 새마을기 관련 조사를 해 보니, 영혼은 없고 그냥 ‘곤조’만 있는 건 아닌지 싶습니다. 그러니, 야당에서 선거로 시청에 들어온 조 전 시장이나 이 전 부시장의 말발이 안 섰던 게 아닌지 싶고, 박원순 시장이 많은 걸 바꾼다고 지금 열의를 불태우는 것도 나중에 저 짝이 안 날지, 정말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