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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팩은 데여서 안 할 거예요” 피합병기업 아우성, 왜?

전체 스팩주株 85% 합병 계획 없어…기관투자자 ‘무조건 반대’

이정하 기자 기자  2012.02.10 14: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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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 “내년 큰 사업 건을 앞둬 자금이 필요했고, 스팩 상장을 그 기회로 봤어요. 그러나 기관투자자들의 반대에 부딪치고, 스팩 시장이 좋지 않아 고민입니다. 공모가가 너무 낮으면요? 글쎄요…”

# “스팩 상장은 이번에 크게 데여서 다시는 안한다. 이미 상장을 준비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직상장을 할 것이다. 금감원과 거래소의 지나친 규제는 오히려 시장을 멍들게 만들고 있다.”

# “이번에 준비했던 게 너무 아까워서 직상장이든 우회상장이든 준비 중에 있다. 미승인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

시작은 화려했으나 결과는 참혹한 시장이 있다. '용두사미'라는 고사는 바로 이런 경우와 명확히 부합하는 말일 것이다. 스팩(SPAC)의 시작은 창대했으나 지금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2009년 12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이듬해 우리나라에 등장한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은 새로운 투자처로 인식되면서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스팩은 국내 투자자들에게 낯설게 느껴졌지만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보편화한 인수합병(M&A) 방식이었다.

스팩은 기존 직접 상장과 달리 아직 상장하기에 규모나 순이익 기간 등이 부족하지만 성장력이 기대되는 우량기업을 육성하고, 투자자들에게는 M&A시장의 투자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등장했다.

그러나 햇수로 3년차를 맞은 스팩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다. 대부분의 스팩종목들은 합병조차 추진하지 못했으며, 합병을 추진했다 하더라도 주주들의 반대, 상장심사 실패 등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처해있다.

인수합병기업을 찾지 못하고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로 남아있는 스팩은 10일 현재 모두 20개다. 스팩 등장 3년이 지났지만 단 2곳만이 상장에 성공했다.

   
 
미래에셋스팩1호, 히든챔피언스팩1호, 한화SV스팩1호 등 8곳은 아직까지도 “상장 기업을 찾고 있다”고 밝힐 뿐, 합병 소식이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키움스팩, 부국퓨쳐스타즈스팩 등 4곳은 거래소로부터 미승인 판정을 받았다.

또한 하나그린스팩, 대신증권그로쓰스팩 등 4곳은 합병 취소 결정으로 전체 스팩주 가운데 85%가 뚜렷한 합병 계획을 밝히고 있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2월엔 하이비젼시스템과 합병한 이트레이드1호스팩, 3월엔 코리아에프티와 손을 잡은 교보KTB스팩, 4월엔 삼기오토모티브와 규합한 현대증권스팩1호가 상장을 앞두고 있다.

스팩으로 증시에 입성한 HMC1호스팩의 화신정공과 신영스팩1호의 알톤스포츠는 상장에도 불구, 이후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화신정공과 알톤스포츠의 공모가는 각각 2485원, 6770원이었지만 전일 종가는 각각 1635원, 5700원이다. 애초 상장 기대와는 달리 주가는 형편없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화려한 등장에도 스팩이 골칫거리로 전락한 데에는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있으며 명확한 해결책도 없다. 투자자들의 섣부른 판단과 금융당국의 지나친 규제는 시장 활성화를 가로 막고 있다. 

“스팩은 괜찮은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우회상장(Backdoor Listing)은 껍데기 회사를 상장시키는 것에 불과했으며 투명하지도 않은 기업을 마구잡이로 상장시켜 문제가 됐으나 스팩은 이와는 다르죠. 제도로써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팩에 대한 한 자산운용사의 관계자의 답변이다. 스팩 제도는 미국 등 금융 선진국에서 사장이 좋지 않을 때 이미 현금을 확보한 페이퍼컴퍼니와 합병해 상장시킬 수 있는 좋은 제도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제도가 뿌리 내리기도 전에 연이은 스팩 실패와 이자 수익만이라도 챙기겠다는 투자자들의 홀대에 제도 자체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스팩이 알려지기 시작한 당시, 투자자들은 스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뚜렷한 수익 창출 능력이 없는 종이기업에 불과하다는 점을 간과한 투자자들은 스팩 주가가 상대적으로 싸다는 인식만으로 투자 과열 현상을 야기했고 이 결과 현금 가치 대비 2배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팩은 아직 합병이 이뤄지기 전 페이퍼컴퍼니로 현금밖에 없는 회사로, 투자를 한다고 해도 합병 전까지는 뚜렷한 이윤 창출 능력이 없다.

또한 금융당국이 제시한 매매거래 정지기간도 문제로 꼽히고 있다. 스팩이 합병기업을 만나 상장하기 위해서는 거래소의 합병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이 심사기간 2개월간은 매매가 정지된다. 적지 않은 기간 거래를 하지 못하게 된 투자자들이 상장 전에 주식을 털어버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우회상장은 빠르면 몇 시간 만에 결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스팩은 투자자의 돈을 장기간 묶어둬 투자 의욕을 떨어뜨리는 셈이다.

또 금융당국의 지나친 규제도 문제다. 상당수 스팩 상장 기업관계자들은 “이럴 바엔 누가 스팩 상장하겠냐. 스팩에 대해 질렸고, 그냥 직접상장을 준비할 것”이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고 있으며 에이비아이앤솔로몬스팩과 키움스팩1호는 제약업종의 전망이 어둡다는 이유로 상장 심사 문턱을 넘지 못했다.

최근에는 기관 투자자들의 합병 반대도 문제가 되고 있다. 기관 투자자들은 스팩 상장 기간이 꽤 흘렸고, 상장한다 하더라도 주가가 떨어지는 등의 어려움을 겪을 바엔 안전하게 원금과 이자비용 등만 챙길 요량으로 주총에서 ‘무조건 반대’를 외치고 있다. 실제 하나그린스팩과 대신증권그로쓰스팩은 주주들의 반대에 무산된 바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스팩에 몰리는 돈은 예치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들어오는 자금”이라며 “투자자들이 굳이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