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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철 모르는 소나무, 떼쓰는 사회

우헌기 코치 기자  2012.02.09 14: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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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큰 소리를 치고, 우겨라. 교통사고가 났을 때 운전자들 행동수칙 1호다. 무조건 떼를 쓰라, 그러면 이긴다. 이는 나이나 배움과는 상관없는 듯싶다. 이렇듯 우리 사회엔 떼쓰는 풍조가 만연했고, 떼쓰는 사람이 득을 보는 사회가 돼 버렸다.

신호등 앞에서 내 차가 눈길에 미끌어지면서 정차했던 앞차 범퍼를 부딪쳤다. 앞차 범퍼엔 거의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피해 운전자는 범퍼를 확인한 후 아무 말 없이 자기 차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는가 싶더니 다시 돌아와 내 전화번호와 자동차 등록증을 확인하곤 돌아갔다.

며칠 뒤 피해 차량 운전자가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보험회사의 연락이 왔다. 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런 나쁜 사람의 입원은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면서 개탄했다. 일선 담당자는 선생님 말이 맞긴 하지만 자기들로서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의사로서도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렇지만 이런 이 일은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계속 주장하자, “선생님에겐 별 손해가 없습니다”라고 오히려 나를 달래려고 했다.

교통사고 후유증은 더러 나중에 나타나기도 하니까 그럴 수 있겠다 싶기고 했지만, 사실을 밝혀내려는 의욕을 별로 보이지 않는(?) 보험회사 직원 태도에 더 화가 났다. 도대체 이 사람들 누구 편인가? 이렇게 생긴 손실은 보험자에게 떠넘기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났다.

자동차 범퍼만 보면 어느 정도의 충격이 가해졌는지는 쉽게 알아낼 수 있는데, “어쩔 수 없다”고만 되풀이하다니…. 소비자들의 보험금이 엉뚱하게 새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이런 도덕적 해이가 사회 전반으로 퍼질까가 더 걱정이었다. 어렵게 연결된 부서 책임자도 똑같은 대답이었다. 다만 그런 환자들에겐 의사들과 협조해서 빨리 퇴원시키는 방향으로 해결한다고 했다. 착잡했다.

겨울 추위가 사라진지는 오래 됐다. 언 한강에서 얼음을 지치는 건 이제 신화가 됐다. 몇 년간 겨울에 덜 추우면 소나무도 늦가을까지 새 가지를 낸다고 한다. 2007년, 2008년, 2010년 3년 동안 전국에 걸쳐 소나무가 늦가을까지 새 가지를 냈다. 2010~2011년 겨울 근래 보기 드물게 오래 추웠다. 혹독한 추위로 2010년 늦가을까지 난 가지들이 많이 말라 죽었다. 작년에는 소나무들이 새 가지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철모르고 자라던 소나무들이 혹독한 추위를 겪으면서 새 가지를 잃는 호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철모르고 새 가지를 내던 소나무가 예상치 않은 추위를 겪고서 철이 든 모양이다.

천하없어도 되는 것은 되고,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세상이어야 한다. ‘어쩔 수 없다’는 안이한 태도가 그런
   
 
엉터리를 양산하고, 알게 모르게 사회 저변에 도덕적 해이를 확산시킨다. 다소 귀찮더라도 따질 건 따지 고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조금씩 놔두다보면 끝이 없다. 어른들이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는 걸 봐주는 사회가 되선 안 된다. 그런 일을 저지르면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철들 때까지. 사람도 당해봐야 안다고 하지 않는가.

우헌기 ACC 파트너스 대표코치 / (전) 청와대 비서실 행정관 / (전) 택산상역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