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한국금융투자협회(이하 금투협)가 8일 임시총회를 열고 신임 상근부회장과 자율규제위원장 등 주요 임원 선임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두 직책 모두 노조가 ‘밀실내정’ ‘낙하산’ 의혹을 제기했던 관료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다. 업계 일각에서는 박종수 회장이 취임 초 인사과정에서 배제된 게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추측도 나온다.
금투협은 8일 신임 상근부회장으로 남진웅 전(前)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을 선임했다. 자율규제위원장직에는 박원호 전(前) 금융감독원 시장담당 부원장이 이름을 올렸다. 두 보직은 금투협 상근임원으로 3년 임기다.
또 김석 삼성증권 대표이사가 비상근부회장에 선임됐으며 김성진 한국자본시장연구원 고문과 원종석 신영증권 대표이사가 각각 공익이사, 회원대표 자율규제위원직에 선출됐다. 비상근부회장과 공익이사는 이사회 구성원이며 회원대표 자율규제위원은 자율규제위원회에 소속돼 2년 간 업무를 수행한다.
◆“신임회장 취임도 전에 인선 다 끝나”
이번 임원 선임에 대해 금투협 노조는 낙하산 인선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앞서 박종수 회장의 취임식 당일이었던 6일 노조는 긴급 성명을 내고 “사상 초유의 관치금융에 의한 불법 낙하산 종합선물세트가 내려오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노조는 “협회 정관에 따라 회장 추천을 받아야 할 상근부회장에 신임회장 취임도 전에 기획재정부 차관보가, 회장이 선임하는 집행임원에 감독원 국장이 내정됐고 개최적도 없는 후추위(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야할 자율규제위원장에 감독원 부원장이 내정됐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같은 날 오전 발표된 금투협 신임 집행임원 리스트와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 금투협은 6일 박종수 신임회장의 임기 개시와 함께 집행임원을 신규 선임했다.
6일 금감원 앞에서 열린 금융투자협회 노조의 낙하산 인선 규탄 집회 현장. 노조는 "정부당국이 161개 회원사를 일개 ‘거수기’ 취급하고 있다"며 관치금융 시도를 저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8일 임시총회 결과도 마찬가지다. 상근부회장에 기재부 요직을 거쳐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지낸 남 전 국장이 선임된 것과 자율규제위원장으로 증권감독원 시절부터 30년 간 금감원에서 경력을 쌓은 박 부원장이 임명된 것 모두 노조 관계자의 예상대로였다. 노조는 이 같은 선임 과정이 정관 등 기본절차를 모두 무시한 채 벌어졌다는 입장이다.
지난 6일 금감원 앞에서 열린 규탄 집회 현장에서 기자와 만난 이연임 노조위원장은 “자본시장법과 협회 정관에 따르면 상근부회장은 회장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자율규제위원장은 후보추천위원회(후추위)의 추천이 필요하다. 집행임원도 회장이 선임한다. 그런데 모든 인선은 신임회장이 취임하기도 전에 끝난 셈”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8일 총회 당일에도 이 위원장은 “내정자들이 총회에 단독후보로 올라 회원사들에게 찬반 의사만 물을 것이 뻔하다”며 “정부당국이 161개 회원사를 일개 ‘거수기’로 취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투쟁은 절대 노사분규가 아니다”라며 “오히려 우리는 민간기구인 협회의 입장을 대변해 당국의 부당함과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관예우 금지법이 금투협 낙하산 원인?
업계에서는 민간 출신인 박종수 회장이 취임 초 인사권에서 일부 배제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조직 내 박 회장의 기반이 아직 미미한 상황에서 외부의 압력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당선 직후 “회원사와 업계 입장을 최우선으로 대변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던 그가 취임식에서는 “정부와의 정책 파트너십 강화에 힘쓰겠다”고 한 발 물러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8일 상임부회장 등 주요 임원을 선임하는 임시총회 당일 금투협 본관 앞에서 협외 노조원들이 낙하산 인선 반대를 호소하는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
한편, 지난해 확대 시행된 공직자 전관예우 금지법이 이번 논란의 핵심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10월30일 확대 시행된 ‘전관예우 금지법’에 따라 금감원의 경우 4급 이상 직원은 의무적으로 재산등록을 해야 하고 재취업이 제한된다.
특히 퇴직 전 5년간 맡은 업무와 유관 업종으로는 향후 2년간 취업이 불가능하다. 이 같은 이유로 해당 규제가 시행되기 직전 금감원 직원들의 연쇄 탈출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전관예우 금지법 확대 시행 이후 갈 곳이 마땅치 않아진 금감원 등 부처 임원들이 금투협 같은 유관기관 입성에 눈독을 들이는 분위기”라며 “금투협의 경우 회장선출과 임원 인선이 모두 비공개 총회로 진행되는데다 여론의 관심도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에 매력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