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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소설과 게임과 공해와 MB정권

임혜현 기자 기자  2012.02.08 10: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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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옛날의 어떤 남자가 종로의 담배 가게에서 짧은 패설 읽는 것을 듣다가, 영웅이 실의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입에 거품을 물더니 담배 써는 칼을 들고 앞으로 달려들어 패설 읽는 사람을 해하였다.(정조실록 권31 중에서)”

조선 후기 풍속도에 가끔 등장하는, 담배 써는 칼이 있는 가게는 오늘날의 소규모 담배상인 절연초 가게인데, 사람들이 모여들어 잡담을 나누는 공간이기도 했으므로 패설(소설)을 읽어주는 전기수가 활동하는 무대가 되기도 했다.

소설에 ‘몰입해’ 있다가 흥분해 전기수를 죽이기에 적당한 기본 토양인데 흉기까지 갖춰진 무대인 셈이다.

소설과 담배 써는 칼이 없다고, 반드시 살인이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내지는 소설과 칼이 인간의 격정을 불러일으키고 인명을 해하는 원인이 되는 위험한 속성이 있기는 하나 어디까지 관리를 할 것인가라는 점은 상당히 흥미로운 논제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김탁환의 소설 ‘방각본 살인 사건’에서도 잘 다뤄져 있는데, 더 나아가 형사정책학(범죄학) 영역에서 바라보면, 일명 ‘피해자 없는 범죄’에 대한 논쟁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소설이 인간의 감정을 시킨다고 해도 이를 규제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다. 바꾸어 말하면 소설을 마약처럼 규제할 것인지라는 이야기가 되겠다. 골방에 틀어박혀 소설만 읽으면 사람이 세상과 유리돼 인간답지 못하게 돼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마약에 찌들어 자신을 해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경우에 따라서는 저 실록 속 사건처럼 칼부림으로도 이어질 여지가 있다. 마약을 사려고 범죄에 빠지기도 하고, 마약에 취해 있으면 다른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도 한다. 그렇다고 이를 손도 못 대게 원천 규제할 것인가? ‘예, 아니오’로 답이 갈리는데, ‘예’라는 답을 택하는 논리 구조에서는 피해자 없는 범죄를 처벌해야 한다고 이해한다. ‘아니오’라는 답을 하는 자들은 피해자 없는 범죄 자체는 죄로 다룰 것은 아니고, 뭔가 범죄로 이어질 경우 그때 처벌하면 족하다고 할 것이다.

이런 인간의 속성과 사회 시스템의 개인 규율의 정도에 대한 어렵고 끝없는 논쟁을 종로 담배 가게 사건에 이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본다.

바로 게임 규제 논란이다.

기자는 게임을 하지 않고 또 이해도 못 하는 편이지만, 근래 당국에서 보이는 게임에 대한 규제 일변도 정책과 몰이해는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물론 게임에 빠져 다른 여가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을 개인적으로는 별로 공감하지 못한다. 게임 관련 콘텐츠들을 다루는 언론 매체까지 있는 것도 신기하고 솔직히 좀 사회적으로 무용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사람이 쓸모가 있는 일만 하며 살지는 않고(호모 루덴스, 즉 유희적 인간이라는 개념도 있지 않은가!), 그런 일들이 산업으로도 연결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문화콘텐츠 수출기업 관계자 간담회에서 게임에 대해 “공해적 측면이 있음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국산 게임이 대외 경쟁력과 수출 면에서 큰 성과를 거두는 기특함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위험한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으로 추론 못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6일 정부 담화문 발표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게임이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수준”이라고 말했다는 점을 겹쳐 보자. 핀란드보다 네 배 이상 많은 우리나라 청소년의 평균 게임이용 시간도 언급했다고도 한다.

한 마디로 게임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것이다. 물론 국정 최고 통수권자가, 혹은 국민의 평생 교육을 생각해야 하는 부처의 장관이,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마땅찮게 여길 수는 있다. 경멸을 한다 해도 뭐라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생각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다른 나라(아니, 핀란드의 여러 측면을 모두 배우자는 게 정부의 모토도 아닐 것인데, 왜 게임 문제에서만 굳이 지구 반대편 조그만 나라인 핀란드를 굳이 언급하는 것인가?) 예까지 생뚱맞게 끌어다 붙이는 적극적인 공격 태도는 유감스럽다.

시청률 조사기관 TNms는 2011년 시청자들의 시청패턴을 분석한 결과 한 가구가 하루 7시간 넘게 TV를 본다고 했는데, 우리보다 많은 선진국에서는 이렇듯 TV를 보지 않는 것으로 안다. 그러면 대체 TV는 어쩔 셈인가?

무엇보다, 이런 냉정한 발언의 기반이 되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게임 못지 않게 놀고 먹는 모든 영역, 즉 현재 문화 콘텐츠 운운하는 산업들에 대해 모두 딴따라 취급을 하는 게 논리정연하지 않을까? 아울러 이런 세심하지 못한 태도를 관련 산업 종사자들 귀에 들어갈 게 뻔한 것을 개의치 않고 쏟아내는 정부의 무신경함을 기자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소설 때문에 살인 사건이 한 건 담배 가게에서 났다고 해서, 꼴보기 싫었던 소설도 담배 가게도, 흉기 사용 소지가 큰 담배 써는 칼도 이 참에 모두 때려잡자는 발상, 그리고 그런 구상을 공공연히 논의하고 관련 종사자들 전반을 백안시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태도가 게임에서 구현된다면 바로 그게 ‘이번 정권의 게임 공해론’일 것이다.

게임을 잘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고, 싫어하는 입장에서 보기에도 이런 규제론은 심각하다. 냉엄하게 게임을 몰아붙일 수는 있어도, 이런 식으로 학대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셧다운 제도도 좋고, 청소년 이용게임 현금거래 금지는 정녕 환영하는 바이다. 하지만, 이 정도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당국에서, 게임을 밥벌이로 삼는 많은 이들과 즐기는 국민들을 버러지 취급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줄 필요는 정말 없다고 우려한다.

   
 
중국 게임업체들이 근자에 막강한 자금력에다 중국 정부의 무한 지원을 등에 업고 우리 업체들을 추격해 오고 있다고 한다. 알다시피, 중국은 개인의 쾌락 추구를 경멸하는 경직된 논리가 지배하는 공산당 독재 국가다.

게임으로 인한 폐해가 적지 않다 해도, 게임 자체를 공해 취급하지 말자. 소설 줄거리에 몰입해 사고를 치는 속칭 X아이가 있다고 해서 소설 자체를 미워하고 소설 전파 창구인 담배 가게를 모두 폐쇄하겠다고 덤빈 정권은 조선 시대에도 없었던 이치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