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1930년대 대공황이 덮치자 일부 국가들은 본국과 식민지를 묶은 일명 파운드 블록, 프랑 블록 등의 경제공동체를 구성해 경제공황 위기를 넘기려 했다. 이때 독일 등은 시장에서 밀려나면서 1차 대전 이후 상처를 회복하던 시점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고 사회불안을 맞았다. 유례가 없는 위기였다는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에는 환율전쟁이라는 개념이 등장, 선진국과 신흥국간 힘겨루기가 연출됐다.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실물경제 위기전이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2012년에는 이 두 가지 이기주의가 모두 발호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유럽이 그리스 부채의 처리 문제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고, 신흥국이 과연 극심한 경제침체 상황에서 견인차 기능을 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높지만, 세계경제는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5일 ‘2020년 세계경제 5대 관전 포인트’를 내놨는데, 여기에는 △유로존의 재정통합 가능성 △새로운 기후변화 체제 출범 △선진국 재정 건전성 달성 △인구증가 및 구조변화의 영향에 △중국의 제1 경제대국 부상 등이 언급돼 있다.
프랭클린탬플턴 이머징마켓그룹 마크 모비우스 최고경영자(CEO)가 3일(현지시간) CNBC에 출연, “투자자들은 이제 유럽연합(EU)의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고 유로존은 생존할 것”이라고 말하며 유로존에의 투자를 선언했다.
영국언론 인디펜던트는 2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전문가들의 유로존 미래 전망에 대해 암울한 전망들을 전하면서도 올리 렌 유럽연합(EU) 경제통화담당 집행위원의 긍정적 시각(“한 걸음씩 재정 건전성 및 성장률 제고와 일자리 창출 상황을 창조하고 있다”)을 함께 인용, 보도했다.
미국은 2010년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 양국간 경제 대결구도가 첨예하게 대립한 바 있다. |
◆화폐 둘러싼 갈등 다시 수면 위로? 환율전쟁 2기
이미 지난 2009년경 화두가 된 바 있는 환율전쟁은 당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이는 문제의 근원적 해결보다는 미봉책으로 끝났다는 지적이 당시에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실물경제 침체라는 현상황이 불씨가 돼 환율 전쟁이 다시 격화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된다. 즉, 환율전쟁의 주요 축은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수출에서 덕을 보는 국가가 있느냐는 문제에 있는데, 실물경제 침체라는 상황에서는 신흥국이 수출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펴는 과정에서 이런 방법의 유혹에 노출될 정도가 더 커지고, 선진국으로서는 이런 가능성에 신경을 더욱 곤두세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환율전쟁에서 제 목소리를 냈던 중국과 브라질은 모두 최근 관련 압박에 직면해 있다.
우리 재정부가 만든 2020년 관전 포인트를 살펴보자. 이 보고서는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세계경제 순위가 2001년 143위에서 2010년 2위로 급부상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향후 경제 성장성이 빠르게 증가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재정부 보고서뿐 아니라 이런 긍정적 시각을 펴는 여러 논자들의 시각에는 전제가 있다. 중국의 수출이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 또한 중국이 평가절상을 상당 기간 더 펴야 한다는 것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위안화가 연간 3% 절상될 것으로 가정하면 2018년이면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은 바 있다. 아울러 1월29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은 국제통화기금(IMF) 윌리암 머레이 대변인이 주요 20개국(G20) 개발도상국 총회에서 “위안화가 여전히 ‘상당히’ 저평가돼 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하는 등, 여러 세계경제 주체들은 중국의 평가절상 지속을 바라거나 이를 전제해 전망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중국이 세계를 이끌 초강대국으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지, 혹은 미국을 능가할지의 문제에서 중국의 화폐 값어치가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는 점을 강요하면서 논의를 이끌어 나가는 데에는 상당한 부담이 존재한다.
즉, 위안화 평가절상으로 인한 중국 경제의 부풀림 현상이 이미 심각해 중국으로서도 이런 상황에 구미 선진국들이 원하는 절상 지속을 여전히 해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베이징의 1인당 GDP는 지난해 8만394위안(약 1만2447달러)이지만 1인당 가처분소득은 3만2900위안에 불과(1인당 GDP의 40%를 약간 웃도는 수준)하다는 계산도 나온 바 있다. 게다가 베이징시의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5.6%나 되는 등 중국이 실제로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는 것보다 많은 출혈을 감수하고 국민의 생활 질은 나빠지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베이징대 증권연구회에서는 국무원 산하 기관인 발전연구센터 금융연구소 관계자들이 인민은행(우리의 한국은행격)이 위안화 평가절하와 통화완화를 모색하는 등 통화정책에 손을 대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는 통화완화정책의 일환으로 법정 지급준비율을 0.5%p씩 낮춰야하며 1분기에 약 3∼4차례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함께, 현재 단기적으로는 위안화 절상이 한계에 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역외선물환(NDF)시장에서 위안화의 선물환율이 인민은행의 현물환율보다 낮게 거래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이미 시장이 위안화의 평가절상 한계 도래, 즉 곧 평가절하가 일어날 것을 전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브라질도 마찬가지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해 9월 국제연합(UN) 총회 기조연설에서 환율 전쟁을 끝낼 때라고 발언했지만, 브라질 당국은 신년 들어 환율 전쟁에 개입할 태세를 다시금 갖추고 전의를 공공연히 불태우고 있다.
기두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올해 첫 각료회의에서 “헤알화 가치가 계속 오르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 없다”고 밝혔다. 만테가 장관은 “헤알화의 강세로 브라질 제조업이 가격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아울러 “헤알화 평가절상은 수출기업들의 수익을 갉아먹는 것은 물론 제조업체 전반에 타격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이미 2011년에도 브라질 당국이 환율 전쟁 재개 문제에 상당한 고심을 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외신 보도가 나온 점과 궤를 같이 한다. 즉 브라질은 신흥국이 선진국들이 강요하는 대로 환율 문제로 인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는 시각을 여전히 지속적으로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2011년 1월초, 파이낸셜타임스는 “브라질 중앙은행은 헤알화 강세를 억제하기 위해 시중은행의 외환포지션에 대한 지급준비율을 오는 4월부터 인상하기로 했다”고 보도했으며 이런 일련의 시각과 방법론에서 브라질 당국자의 2012년 발언이 나오고 있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등 여러 유럽 국가들이 선거의 해를 치르게 되고, 이 와중에 여론의 의식해 상당한 강경론을 펴면서 이런 중국이나 브라질 등의 태도와 정면 출돌할 수 있다는 점이다. 11월 대선 국면에서 공화당측 후보로 선출될 주요 인물로 꼽히고 있는 미트 롬니 후보는 연일 “중국이 인위적으로 저렴하게 만든 제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G20과 개발도상국의 부채 추이. 자료는 IMF. |
◆블록 경제 가능성 역시 모락모락…브라질發 ‘남남외교’ 인기 얻을까
이런 위기 상황에서 이른바 ‘블록 경제’의 도래 가능성마저 높아지고 있다.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한 이기주의적 발상에서 탄생한 블록 경제는 따로 식민지 시장을 갖추지 못한 산업국가들의 타격과 이로 인한 반발, 2차 대전으로까지 연결되는 혼란을 불러온 바 있다.
블록보호주의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는 데에는 글로벌 자유무역의 쇠퇴가 자리 잡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역할 강화와 함께, 다자간 협상에 힘을 실어줘야 하지만 WTO를 중심으로 한 노력 특히 도하 어젠다 등 다각 자유무역 시대의 구상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다. 이처럼 다자간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여러 국가들이 개별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를 모색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위기감이 세계를 휘감으면서 조급증으로 인한 블록경제 모색 경향이 극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국가 간 필요에 의해 지역별로 블록을 형성하는 등 블록을 중심으로 한, 보호주의 양상이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WTO에 따르면 지역무역협정(RTA) 체결 상황이 괄목할 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물론 FTA를 포함한 것이나, RTA 발효건수가 2007년 14건에서 2008년, 2009년 각각 26건, 27건으로 점점 늘고 있는 것은 자유무역이 더 이상 공감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이런 경향이 2010년에는 15건에 달하는 등 일시적으로 주는 듯도 했지만, 새로운 상황에서 블록주의가 강화되는 조짐이 최근 엿보이고 있어, 환율전쟁 등 세계 각국이 각자도생의 마인드로 날카롭게 대립했던 2008년 위기 이후의 상황에 겹쳐볼 때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3일(현지시간) 브라질 언론에 따르면 호세프 대통령은 연방 상·하원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개도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중시하는 남남 외교를 대외정책 중심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는 신흥국들을 한 데 묶어 현재의 실물경제 위기를 타개할 필요가 있고, 이런 노력을 외교적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내걸겠다는 뜻으로 풀이돼 눈길을 끈다.
환율전쟁 상황으로 치닫을 경우, 미국과 유럽연합은 중국은 물론 경제규모가 작은 개발도상국에게도 ‘칼날’을 겨눌 가능성이 제기된다. |
호세프 대통령은 “브라질은 미국 및 유럽과 건설적이고 균형적인 관계 정립을 추구한다”고 말해 기존의 미국 및 유럽 정책이 변화하는 데 대한 불안 여론을 잠재우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유럽발 경제위기와 관련, “G20(주요 20개국)의 틀 안에서 위기 해결책과 대안을 찾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밝혀 G20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한 마디로 개도국간 연대와 브라질의 목소리 내기를 본격화할 것임을 굳이 감추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이는 중국이 부드러움의 가면을 쓰고 있던 '화평굴기'의 시대에서 어느덧 가면을 벗고 ‘대국굴기’로 본격적으로 넘어간 상황과도 견주어 볼 만하다.
◆블록의 시대, 자원빈국 한국은 어쩌나?
이에 따라, 한국 등 일부 샌드위치 국가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에 실물경제가 침체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면서, 한국은 인도네시아 및 중남미 등 개도국 시장이 탈출구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를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블록쌓기 상황에서 우리의 길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환율전쟁 역시 우리에게는 달갑잖은 개념이기는 마찬가지다. 보호주의와 환율 전쟁에 대한 미국 등 구미 선진국들의 경고의 칼날은 중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작은 규모의 경제규모를 가진 국가들에게도 겨눠지고 있다. 지난 세밑에 나온 미 재무부의 ‘세계 경제 및 환율 정책’ 보고서는 이례적으로 중국 외에 한국,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시장 개입 자제를 요청한 바 있다. 환율 조작국에 준해 우리나라를 보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돌파구를 마련할 길은 결국 세계 전역으로 우호적인 인프라를 깔아나가는 방법뿐이라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 중남미가 세력화 내지 개도국간 협력 강화로 새로운 페이지를 열지 주목되고 있고,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 대한 진출 강화도 필요한 상황에서 틈새시장 개척을 통해 환율 전쟁이나 블록 경제로 인한 수출 악화를 피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동남아나 중남미는 신흥국으로서 상당한 위상을 갖추고 있고 시장이 큰 대신 여러 난점 역시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중남미의 경우 국제통화기금(IMF)은 유럽발 경제위기의 파급 가능성이 높다고 여러 번 경고했다. IMF 니콜라스 에이자기레 미주국장이 “유럽의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중남미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인데, 이 인물은 지난달 초에도 “유럽의 위기가 심화하면 중남미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따라서 자원외교 등 캐치프레이즈를 시끄럽게 전면에 내걸어 오히려 경계심만 높인 정권 초의 실책을 교훈삼아, 이들 신흥국가들이 아쉬운 부분을 해결해 줄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매력을 앞세우고 어려운 상황 속에 유럽권 등과 달리 발을 빼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자본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것으로 위기 탈출을 함께 해 나갈 위상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