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아침에 일어나 새벽공기와 함께 찬물 한 컵을 마신다. 그리고 늘 그리하듯 ‘오늘도 무사히…’라고 뇐다.
어렸을 적 집 마루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두 개의 그림이 있다. 풍요로운 가을마당에 암퇘지가 누워있고 새끼 돼지들은 어미젖을 빨고 있는 그림. 또 열살 남짓 소녀가 두 손을 예쁘게 모으고 기도를 올리고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엔 ‘오늘도 무사히’란 글귀가 쓰여 있다. 소녀의 간절한 기도 모습과 그 문구가 어린 내겐 퍽이나 인상 깊었나 보다. ‘오늘도 무사히’가 하루 시작을 함께 하는 주문처럼 돼버렸으니 말이다.
정신없이 하루가 가고, 새로운 날이 밝고, 또다시 직장이라는 삶의 현장으로 나간다. 나의 일상은 늘 그랬듯이 어제에 이어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똑같이 반복될 것이다. 종종 이런 일상이 따분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별 재미 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이유로 ‘나는 늘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나’라는 불평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내 삶에 얼마나 많은 감사를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크게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족 모두 무탈하고 건강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아침마다 물 한잔 들이키며 하고 있는 그 염원처럼 ‘하루 하루 무사히’ 다들 잘 지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 모른다. 이렇게 보자면 ‘재미 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네 일상’이 사실은 엄청난 축복일 수도 있다.
친정어머니께서 아이들을 돌봐 주신다. 출근 전 아침 밥상에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여쭤본 적이 있다.
“사는 게 이런 건가요? 이렇게 살아가면 되는 건지? 제가 잘 살고 있는 건가요? 뭘 위해 이렇게 사는 건지 가끔 이런 생각이 드네요.”
어머니는 가만히 고개 끄덕이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족이 아프지 않고 꼼지락 꼼지락… 이렇게 다들 살아가는 거란다.”
가끔은 보다 여유롭게 살고 싶고, 가끔은 무엇인가에 미치도록 도전하고 싶고, 또 가끔은 동굴에 숨고 싶기도 하다. 구름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이렇듯 나의 다양한 욕구들도 생겼다 사라지고 또다시 일어나 나를 강하게 유혹한다. 이런 중에 나는 또 일상을 묵묵히 살아간다. 어머니 말씀처럼 ‘꼼지락 꼼지락…’ 아프지 않은 것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세상살이 모두 의미가 있다. 과하지 않고 적게, 또 설레고 기대되지만 부산하지 않게 잔잔하게 흘러가는 시간들…. 다들 그렇게 사는 것처럼 꼼지락 꼼지락 살아가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 때, 직장으로 나서는 발걸음은 더 힘차고 즐겁다.
김수정 삼성전자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