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2.01.30 13:17:12
[프라임경제] 주요 시중은행이 2012년을 맞아 내실성장과 위기관리강화 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시중은행들은 영업력 강화에 초점을 두고 리딩뱅크 도약을 위한 승부에 나설 태세다. 이 같은 은행계의 주도권 싸움은 세계경제 위기가 실물경제로의 위기 전이 본격화로 더욱 어려워질 것이 분명한 가운데, 바젤Ⅲ를 의식한 준비 작업을 마쳐야 하는 등 넘을 고비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유럽 재정위기 등 여러 뒤숭숭한 소식 가운데서도 은행계에서는 일단 ‘사상 최대 실적’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서 보듯 반금융권 정서가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쉽게 돈을 번다며 백안시하는 시각이 높아진 한해였다. 무엇보다 은행 건전성 기준이 상향된 바젤Ⅲ를 2019년까지 도입해야 한다는 점은 올 한해 상당한 스트레스를 줄 것으로 보인다. 바젤은행감독위원회가 유동성커버리지 비율(LCR) 규제와 관련된 시장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LCR 재정비 계획을 당초 2013년6월에서 올해 말로 앞당겨 확정키로 합의했다는 점도 부담을 높이고 있다.
◆몸집 불리기 못지 않은 영업 전략 재고 요구↑
배당 자제 요구가 높아지는 등 난제가 산적하게 된 셈이다. 특히 한국의 시중은행들은 자기자본이익률(ROE)가 낮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2011년 5월13일 ‘21세기 금융비전포럼’에서 이장영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홍콩이나 중국, 싱가포르 등 경쟁국보다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ROE가 낮다”고 발언했다.
ROE을 홍콩, 싱가포르 수준으로 높이려면 유동성비율을 충족시키고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영업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게 이 전 부원장의 당시 지적이었는데, 실제로 바젤Ⅲ 대응책으로는 수익성 확보를 위한 영업 전략 재점검(영업 강화)와 몸집 불리기가 주요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연초에 주요 시중은행장들이 이구동성으로 영업 관련 발언을 내놓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다. 아울러 (성사되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은행 M&A 이슈가 근래까지 여러 건 화제를 모아 온 점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나+외환으로 판도 변화, 은행계 촉각
하나금융그룹(086790)이 외환은행(004940)의 자회사 편입을 승인받은(27일) 것은 이런 상황에서 단순한 순위 변화 외에 영업대전을 한층 가속화하는 지각변동 요인으로 볼 수 있다. 합병을 기정사실로 전제하고, 신탁재산과 수탁자산을 합친 총자산을 기준으로 순위를 점검해 보면, 1위 우리은행을 갖고 있는 우리금융(053000)이며, 하나금융이 2위로 부상하게 된다. KB국민은행을 갖고 있는 KB금융은 3위가 되는데, 2위와 3위간 차이만 해도 3조원 가량이 난다는 분석이다. 신한은행을 갖고 있는 신한지주(055550)는 4위가 된다.
◆영업 강화는 해야 하는데 노동관계 기류는 예전 같지 않아
하지만 이렇게 영업대전으로 행원들을 내몰아야 할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지만, 행원들을 과거와 같이 무한경쟁 분위기로 몰아세울 수만은 없다는 점이 고위간부들의 고민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우선 KB국민은행 노동조합은 오는 3월에 열릴 정기주주총회에서 우리사주조합원과 소액주주로부터 의결권을 위임받아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등 실력행사에 나설 방침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타임오프제 시행 등으로 노조 투쟁력이 약화됐다는 소리도 없지 않은 가운데, 지주 측에서 주도한 은행 생산성 강화 요구에 대한 불만이 사외이사 추천 문제로 본격적으로 봇물이 터질지 주목된다는 것이다.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기 위해서는 의결권 있는 주식총수의 0.25% 이상을 보유한 자여야 하지만 KB금융 우리사주조합은 조합원 계정으로 지주의 총 주식의 0.91%를 보유하고 있어 일부 위임을 받는 등으로 돌파구를 뚫을 여지가 있다.
KB국민은행 노조는 사외이사 선출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 이전에도 이미 어윤대 회장 선임에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등 경영 관련 사항에 의견 개진을 시도한 바 있다. 사진은 2010년 7월13일 주주총회장에 참석, 의사발언을 하고 있는 노조원. |
신한은행의 경우는 행장 임기 만료 건이 문제다. 임기가 오는 3월말까지로, 사령탑 교체 관련 리더십 부재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하나은행의 경우는 ‘간접적 영향’이 눈길을 끈다. 하나금융그룹에서 외환은행을 인수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고임금인 외환은행 수준으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고, 인수자금 조달을 위해 무리수를 둔 점이 은행 등 일선 자회사에 부담감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리은행의 경우도 공적자금 투입 금융회사라는 특수성으로 좀처럼 풀기 어려운 특별성과급 문제 등 노사간 갈등 요인이 존재한다는 평가다.
◆신년사 이어 곳곳에서 영업 강화…‘부드러운 리더십’ 변화 눈길
이에 따라 행원들을 과거와 같이 무작정 독려할 수 없다는 숙제가 부상하고 있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먹이는 문제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영업대전을 치러야 한다는 이중고가 업계의 난제가 될 전망이다.
고객의 소리를 직접 청취하러 현장에 나선 신한은행 서진원 행장. |
하나은행 김정태 행장은 신년사에서 “지금부터 우리는 고객과 시장의 변화에 따라 영업의 기회를 만들고, 새로운 고객을 찾아야 한다. 아직 거래하지 않는 고객을 유치하고, 기존의 고객에게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서 발전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영업 강화를 주문했다. 하지만 김 행장도 강압적인 실적 경쟁에 나서는 것을 조심스러워 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외환은행 인수를 준비하는 국면에서 하나은행의 경우 상당수 행원을 희망퇴직 시켰기 때문에, 상부의 영업실적에 대한 관심이 억압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 내부 반발이 높아져 영업대전에 역효과를 가져올 여지가 크다.
우리은행 이순우 행장은 28일 열린 2012년 경영전략회의 중간에, 나눔경영 후원금 전달 과정을 집어넣는 등 부드러운 이미지 구축에 나름대로 노력 중인 것으로 보인다. |
우리은행 이순우 행장은 28일 일산 킨텍스에서 임직원 2000여명과 함께 참석한 가운데, ‘2012년 경영전략회의’를 개최했다. 이 행장은 이번 경영전략회의에서 ‘아시아 톱(Top) 10 은행’이 되는 것을 중장기 목표로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고객 제일 △현장 중심 △기본 충실 △프로 △글로컬(Glocal) △1등 브랜드 등 6대 경영원칙을 발표했다.
KB국민은행의 민병덕 행장 역시 리스크 관리 강화와 견실한 성적 등을 강조하는 등 영업대전에 눈길을 주고 있으면서도 ‘함께 가기’에 초점을 일찍부터 둔 케이스다. 민 행장은 여러 개 겹쳐 묶은 화살은 꺾기 어렵다는 일명 ‘절전지훈(折箭之訓)’을 흑룡의 해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을 이미 신년사에서 나타낸 바 있다.
유례 없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새롭게 맞이하는 금융환경을 대비해야 하는 은행들이 어떤 영업대전 성적표를 받아들지 주목되는 가운데, 치열한 영업대전을 ‘외강내유(적에게는 강하고 내부 식구간에는 부드럽게)’로 치러 내야 한다는 쉽지 않은 숙제를 잘 풀어나갈지, 근래 새로 교체된 사령탑들이 보일 지휘 성과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