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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용산상가에서 ‘휴대폰 가격표시제’ 물어봤더니…

“제조사 위한 정책” “누가 과연 가격표시제 근거로 휴대폰 사겠나”

유재준 기자 기자  2012.01.27 1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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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임진년 시작과 함께 정부가 휴대폰 ‘가격표시제’를 일괄 적용하고 있지만, 애매한 분위기만 연출되고 있다. 정부는 가격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취지를 내세우며 가격표시제를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에 맞지 않다는 볼멘소리만 거세다. 시작부터 삐거덕 대고 있는 휴대폰 가격표시제의 현주소를 알아보기 위해 휴대폰 판매점과 대리점 등 판매 일선을 찾아갔다.

   
지식경제부에서는 올해 초 휴대폰 가격표시제를 시행, 매장별 과도한 보조금과 복잡한 요금제 등 소비자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했다.

휴대폰 가격표시제는 올해 초 지식경제부에서 시행한 제도로, 매장별 과도한 보조금과 복잡한 요금제, 요금할인 등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다.

얼핏 보면 꽤 그럴 듯해 보이지만 이를 두고 최근 말들이 많다. 실효성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이유도 간단하다. 핵심은 “누가 과연 가격표시제를 근거로 휴대폰을 사겠느냐”는 말이 딱 들어맞겠다. 비단 소비자의 마음뿐만이 아닌, 휴대폰 판매점들도 여러 이유로 불만은 매한가지인 게 현실이다.

구정연휴 전인 지난 19일 용산 아이파크몰의 분위기를 살피러 직접 발걸음을 옮겼다. 8층까지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해 내리자 스마트폰 판매점으로만 꽉 메워진 매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는 약 80여명의 판매원들이 상주해 손님 모시기에 온 힘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으레 짐작을 했기 때문인지 판매원들의 표정이 예전만치 밝지 않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유가 여럿이겠지만 스마트폰 옆에 비치된 가격표시 거치대가 자꾸 매장 분위기와 오버랩 되고 있었다. 그 중 한 판매점을 찾았다.

◆제조사만을 위한 가격표시제라고?

10년째 핸드폰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김모씨(36·남). 김씨는 가격표시제에 대해 묻자 한숨이 깊어졌다. 할 말이 많은 모양새다.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김씨는 “제조사를 위한 정책”이라며 실용성이 미비하다는 지적을 늘어놨다.

김씨는 “제조사가 제조뿐만 아니라 판매도 같이 하고 있는 가운데 가격표시제는 대형점과 판매점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 부각되고 있다”며 “대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감이 고스란히 대형점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이러한 제도는 소규모 판매점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김씨는 “진작 시행하려 했으면 20년 전에 했어야했다”며 “냉장고, TV가 오래전에 가격을 표시해 두고 판매한 것처럼 휴대폰도 그렇게 했어야했다”고 역설한다.

김씨에 따르면 이 제도는 유통망을 바꾸기 위한 제조사의 전략으로, ‘가격표시제’로 대형점 보다는 소규모 판매점을 주로 찾는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것이다.

가격을 고민하는 소비자들에게 대형점이나 판매점에서 가격이 동일하다는 것을 내세워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이용해 대형점으로 소비자를 유도한다는 설명이다.

   
아이파크몰과 같은 집단상가에서는 ‘가격표시제’ 시행으로 매장마다 차별성이 사라져 단말기 판매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게 판매점의 설명이다.

또 다른 매장의 판매원도 우려스런 입장은 같았다. 아이파크몰 등 집단상가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박씨에게 가격표시제의 실용성에 대해 묻자 손사래를 친다.

박씨는 “아이파크몰과 같은 집단상가에서의 경우 ‘가격표시제’로 판매점마다 차별성이 사라져 단말기 판매에 어려움이 뒤 따른다”고 운을 뗐다.

이어 박씨는 “현재 집단상가에서 가격경쟁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다. 가격이 다 똑같으니까 경쟁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소비자의 눈길을 끌만한 차별성을 내세워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으니까 판매 실적마저 줄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의욕마저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가격을 판매점에서 직접 결정하는데, 예를 들어 A점에서 50만원에 갤럭시폰을 내놨다면 B가게에서는 동일한 모델을 49만원의 가격에 내세울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B점에 소비자가 집중될 수 있어 집단상가에서는 가격을 맞추고 있다는 이야기다.

◆대리점도 할 말 있다

대리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발걸음을 돌려 도착한 곳은 대리점이 밀집해 있는 명동. 서울의 중심이라 불리는 명동거리에는 SK텔레콤, KT, LGU+ 제품 모두를 취급하는 판매점 보다 통신사와 일정 관계를 유지하는 대리점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6평 남짓 해 보이는 소규모 대리점에 들어갔다. 15년 이상 핸드폰 관련 업종에 몸담았다는 박씨는 가격표시제에 대한 질문에 되레 기자에게 “핸드폰 살 때 표시된 가격을 확인 하시나요”라며 되묻는다.

박씨는 “고객들은 이미 가격을 다 알아보고 대리점을 방문하는 데 가격 거치대가 무슨 소용이냐”며 “또 오전, 오후마다 달라지는 가격 때문에 때때마다 바꿔야하는 고생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씨는 “고객들이 가격표시를 해놔도 보지 않는 게 현실이다”며 “요금제에 따라서 할인율이 다 다르게 적용되고 있는데 결국, 이 제도는 수박 겉핥기식 아닌가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문제 ‘리베이트’

박씨는 가격표시제 활성화에 있어 리베이트도 문제점이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박씨는 “통신사에서 받는 리베이트가 사라지지 않는 한 가격표시제로 기존의 판매구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며 “지금까지도 소비자들의 위약금 및 할부금을 대체하는 데 리베이트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가격표시제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제도 시행으로 과대광고가 사라지는 게 정부의 의도였지만, 판매점 혹은 대리점에서 공짜라는 문구가 쉽게 눈에 띄고 있는 실정이다.

이어 박씨는 “삼성제품의 경우 잘 판매되기 때문에 리베이트가 적다”며 “LG와 팬택은 리베이트가 크기 때문에 마진이 많이 남게 된다. 그러니까 리베이트로 위약금을 물어주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어 가격 고지는 어려울 것이다”고 말했다.

박씨는 리베이트가 난무하는 행태에 직영점도 한몫했다는 주장이다.

박씨는 “이렇게 리베이트가 난무하는 것은 통신사에서 운영하는 직영점 때문이다”며 “직영점은 통신사에서 임대료와 인건비를 지원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어 주위 소규모 대리점은 부부가 함께 일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됐다”고 한탄했다.

박씨 또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부부가 함께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지만, 급기야 영업을 포기하는 상황까지 내몰려 결국, 대리점을 처분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트렌드세터 즐비, 소비자도 전문가

가격표시제가 깨끗한 판매구조로 이용자들을 위한 정책이라지만 대리점과 판매점은 실효성에 여전히 의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특히, 명확하고 제대로 된 서비스가 이뤄져야하는 판매일선에서는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제도의 실효성을 체감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제도 시행으로 과대광고가 사라지는 등 투명성이 부각될 것이라 게 정부의 의도였지만 정작 대리점과 판매점의 현상황은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정책을 이행해고 있는 처지다.

결국, 정부와 통신사, 대리점, 판매점은 모두 가격표시제 시행에 있어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질적으로 제도의 혜택을 바라는 이용자들의 입장도 불 보듯 뻔하다.

현장에서 2G에서 3G를 전환하기 위해 판매점을 방문한 추모씨(32세·남)는 “3G로 바꾸려면 우선 요금제를 선택해야 하는데 요금제마다 할인율이 달랐다”며 “어떤 요금제를 선택할지 고민돼서 인터넷에서 확인한 가격을 종이에 적어왔지만 실제 판매점에서 고시된 가격은 다르게 표시돼 있어 혼란스럽다”고 말하며 가격이 적힌 종이를 보여줬다.

또 다른 이용자 신모씨(40세·여)도 이 제도가 보여주기 위한 정책에 불과하다며 “만일 가격표시제가 이용자들을 위한 것이라면 판매점이나 대리점에서 ‘공짜폰’이라는 문구가 사라졌어야 하지만 여전히 거리마다 광고문구가 보인다”고 말했다.

‘가격표시제’에 대해 현실성과 효율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구동성에 관계당국과 업계가 어떠한 움직임을 보일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