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이번 설 연휴에 지방은행인 A은행이 ‘차세대 전산시스템’ 도입을 위해 금융거래를 일시 중단했습니다.
전산시스템을 바꾸거나 점검하려면 다수의 은행 고객을 온-오프라인을 망라해 실시간으로 상대해야 하는 은행으로서는 물리적으로 어려움이 크고 상당히 공을 들여야 하는데, 그래서 연휴를 그 기회로 삼는 경우가 많고 A은행 역시 설 연휴를 디데이로 삼았다는 게 업계의 이야기입니다.
이에 따라 A은행은 기존 전산데이터를 새로운 시스템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CD/ATM기를 이용한 현금거래는 물론 인터넷 뱅킹과 폰 뱅킹, 체크카드와 직불카드를 이용한 구매거래 등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고객인 저에게도 미리 설 자금을 인출해 놓으라며 몇 번이나 문자메시지 안내가 왔습니다. 자동화코너는 이 기간 아예 문을 닫았다는 후문입니다. 다른 은행에서 A은행으로 이체하는 것도 지장을 받았다고 합니다.
제한된 창구에서 외환 환전 업무를 한 부분은 바로 이해가 갑니다. 외국돈 실물을 갖고 교환을 하는 정도이니까, 온라인이라고 불리는 전산이 도입되기 전 수기식 장부를 쓰던 기분으로 일을 보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또 신용카드는 이 A은행이 은행계 카드(카드업만 하는 전업 여신업체, 즉 일명 전업계 카드와 은행에서 여신업을 하는 경우를 구분지어 부르는 말)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그 물품구매 처리를 이 기간 중에 열어놓은 점도 금융 취재를 좀 해 본 기자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전표 매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약간의 '딜레이'는 문제가 아닐 테니까요.
그런데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타행 ATM을 통해서 A은행 카드, 즉 이건 체크카드가 아니라 신용카드인 경우인데, 현금서비스를 받는 것에 응하겠다고 나선 대목입니다.
현금서비스도 물품구매처럼 여신업체의 업무 중 일종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현금을 동원해 대출을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자기 은행 계정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에 지장이 있는 사정에서 굳이 무리수를 두면서 자금을 내줄 요청인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다른 은행에서 잠시간이라도 자금을 동원해 ‘빚을 내 빚을 주는’ 것일까요? 그렇지만 이런 것을 일반적으로 볼 수는 없잖아요? 기자는 설 연휴를 앞두고 이런 쓸 데 없는 고민을 좀 해 봤습니다.
‘공탁(소송에 다툼이 되는 액수를 법원이나 법원이 정하는 금융기관에 맡겨두고 절차를 진행하는 일)’을 하는 경우처럼 일정액을 다른 은행들에 쌓아두고 현금서비스 수요에 응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고민이 길어지면 이런 쪽으로까지 상상의 나래를 뻗기도 합니다. 어쨌든, 아무리 봐도 다른 금융 인출 수요에 대해서는 정지를 시키면서 현금서비스 요청에 대해서만 이렇게 관대한지는 구조식을 그려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이게 금융공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거나, 법적으로 정당하지 않다는 말은 물론 아닙니다. 다만 다른 은행을 훑어볼 적에 꼭 자기 은행 신용카드를 가진 고객을 위해 현금서비스만큼은 해 줘야 하는 것은 아닐 뿐더러, 관행적으로 볼 때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영역인 것으로 보입니다.
역시 은행계 카드를 갖고 있는 B은행의 경우 2008년에 전산 점검으로 설 연휴 기간 서비스를 중단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B은행의 경우에는 이 기간에 자동화기기를 이용한 현금지급 및 계좌이체, 해외송금 업무와 인터넷뱅킹 및 텔레뱅킹을 이용한 계좌조회 및 계좌이체, 체크카드 사용 및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을 모두 정지시켰습니다.
다른 예를 봐도 무슨 특별히 현금서비스라는 걸 달리 취급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역시 은행계 카드를 운영하는 C은행, 그리고 최근에야 카드사 분사를 이룬 D은행의 2010년 사례를 봐도 그렇습니다.
C은행은 당시 자동화기기와 인터넷뱅킹, 폰뱅킹 등 일부 시스템을 일시 중당했고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자동화기기(ATM.CD) 및 자기앞 수표 등 거래를 중단했습니다.
다만, ‘타은행 자동화기기 및 대행사 자동화기기를 통한’ 현금서비스는 가능하게 해 뒀습니다.
D은행도 같은 기간에 전산 점검을 한 경우인데, 이곳은 그냥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을 모두 정지시키겠다고 언론에 공표했었군요.
무슨 논리적 일관성은 없다는 중간결론을 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C은행 관계자 설명을 들으면 (2010년 점검으로부터) 몇 해전에도 전산을 점검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카드 고객의 현금서비스도 정지를 시켰다고 하고, 전산 점검 등에 있어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범위로 하는가에 따라 이를 아예 못하기도 하고 그나마 융통성을 발휘하기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전산을 점검하는 일의 번거로움과 그 절대적인 문제의 크기에 따라 약간 다른 업무를 볼 융통성을 가미하거나 할 여지는 있고 논리적으로 꼭 현금서비스 등을 취급할 수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일도양단의 단정을 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문제는 남습니다. 굳이 통장에서 설맞이 자금을 빼야 하는 소규모 은행 고객들은 정지 대상이면서, 굳이 다른 은행이나 대행사까지 끼고 현금서비스를 받겠다는 경우에는 문을 열어둘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아니, 솔직히 자기 은행 ATM에서 되는 것도 아니고 굳이 저렇게까지 하겠다는 건 뭔가, 싶습니다.
그래서 불온한 상상을 해 봅니다. 대출을 무척 비싼 이자를 주고 하는 카드 현금서비스 고객을 놓치기 아쉬운 마음에 그렇게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 말이지요. 그래서 굳이 남는 장사인데 전산 문제라는 본업을 푸는 데 지장이 있을지 없을지 저울질을 해서 정하다 보니 그 서비스 신청을 받는 은행도, 아닌 은행도, 처리해 주는 경우도 혹은 그렇게까지 안 해 주는 경우도 엇갈려 나타나는 게 아닌가라는….
어쨌든 현금서비스나 카드론 장사에 대한 시선이 따가운 요즈음입니다. 그런 와중에 이런 관행은, 아 물론 그게 몇 년은 된 관행인 것으로 보이지만요, 이제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