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IC 기능 덕분에 입금잔고액 범위 내에서는 체크카드로 사용하고, 이를 초과한 부분부터 신용카드 기능으로 사용이 가능한 하이브리드형 카드 이른바 듀얼 서비스도 곧 가능해질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연초에 이 같은 하이브리드 카드가 시장에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금융계에서는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IC칩 카드가 도입된 이래 많은 비용이 낭비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한 문제 개선은 좀처럼 보폭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은행과 카드사 중 많은 곳에서 판촉 목적상 혹은 계약 유지 필요상으로 분실자에 대해 재발급을 용이하게 해 주고 있는데, 으레 이뤄지는 “재발급해 드릴까요?” 관행이 앞으로 하이브리드 카드 시대에는 한층 더 강화되지 않겠느냐는 지적입니다.
일례를 들어 봅니다. 4대 금융지주에 해당하는 모 금융그룹 산하 A은행과 거래하는 갑녀는 상당한 건망증의 소유자입니다. 월급통장에 체크카드를 만들어 쓰던(편의상 체크1이라고 합니다) 갑녀는 어느 날 이를 분실하고 맙니다. 아무래도 집 밖에서 잃어버린 건 아니고, 안에서 어디에 둔지 난감해진 상황인데, 은행에 정지신청을 하러 들르니 체크카드를 하나 더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체크2라 합니다). 그런데 이 체크2를 잃어버린 건망증 갑녀. 얼마 후 계절이 바뀐 옷을 정리하다 체크1을 발견합니다. 은행에 들러 사정을 설명하는(“이러저러하니 체크2를 정지시키고 체크1로 다시 살려달라”) 갑녀 앞에 앉은 창구 직원 표정이 미묘합니다. “고객님 그건 좀 곤란한데요, 그냥 다른 카드 만들어 드릴게요.”
또 다른 예입니다. 외국계 B은행과 주로 거래하는 을녀. B은행 신용카드를 만들어 쓰던 을녀는 신용카드에 (자신이 갖고 있는 B은행) 거래 계좌 입출금 기능을 넣을 수 있다(일명 ‘현금카드 기능 추가’인데 체크카드 기능 얹기로 그냥 이해해도 무방)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가까운 지점에 들른 을녀는 “저희 점포에서는 이 기능을 추가할 수 없다”는 설명을 듣습니다. 되는 지점 있고 안 되는 지점 있다는 뜻입니다.
IC칩이 심어져 있는 카드 발급 비용은 2000년대 초반 조사 결과 장당 1만원 가량이었다고 합니다. 적지 않은 비용인데, 이렇게 높은 가격을 주고 사는 IC칩 정보 기능과 수정·재사용 가능성을 도외시하고 이뤄지는 “그냥 새로 하나 더”에 의해 낭비되는 비용은 또 얼마일까요?
상황이 이럴진대, 많은 고객들이 체크카드와 신용카드 기능을 겸하는 하이브리드 카드를 들고 다닌다면 사정은 어떻게 될까요? 분명히 편리하긴 하지만 정보가 집중되는 상황이고 보니, 부정사용 필요성이 높아진다는 위험성 때문에, 분실 신고·정지 신청자는 이전보다 늘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 반대로 재발급·이용정지해지신청 역시도 부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에 대한 대비는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그렇잖아도 정보를 다시 고쳐 넣기 번거롭거나 우리 영업점에서는 아예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되찾은 카드들이 가위로 썰려 나가고 있습니다.
IC칩 카드가 푸대접 받는 일은 사실 처음은 아닙니다. 아직도 많은 가맹점에서 사실상 마그네틱선 기능에 의지해 영업을 하는 실정이라는 지적이 여전합니다. 이런 상황에 정보를 담을 큰 그릇인 IC칩의 기개를 펼쳐 보일 하이브리드 카드 시대가 열렸는데, 그 관리와 수정 등 여건과 마인드는 아직 걸음마 단계인 것 같습니다. IC칩에 담은 정보는 은행망 등 전산에 접근하지 못하면 변조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충분히 아껴서 다시 쓸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재발행 비용, 작지만 모으면 크고 다 고객 주머니에서 나가는 영업비용·판관비에서 지출될 테니까요.
신용카드 휴면카드를 1000만장이나 줄이겠다는 당국의 선언이 나왔습니다. 또 많은 IC칩 카드가 사라질 운명인가 본데, 이를 잘 이용해 새 하이브리드 카드로 재탄생할 여지는 없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