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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도 스타 의료 자원봉사도 스타"

건국대병원 고영초 교수, 30년 매주 수요일 자원봉사 펼쳐

정숙경기자 기자  2006.12.27 06: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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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 자선냄비의 딸랑 소리가 거리에 넘치고, 알게 모르게 이웃을 돕는 미담들이 우리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준다. 마음 둘 곳 없는 엄동설한에 뭐 하나 시원하게 풀리는 구석 없는 암담한 현실에 그런 소식조차 없다면 무슨 낙으로 시린 가슴을 위로할까.

“대학 시절 가톨릭 의료단체에서 서울 난곡동 달동네 봉사활동을 하다가 자연스레 이곳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후 군 복무 시절을 빼고 계속 봉사 활동을 이어왔죠”

매주 수요일이면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전진상 의원에 발길을 돌려 하얀 가운을 입는다는 이 의사. 벌써 30여년째다. 그는 바로 가난한 환자들로부터 ‘하얀 옷 입은 천사’로 불리는 건국대병원 신경외과 고영초(54) 교수[사진]다.

고영초 교수는 신경계통 수술 분야의 권위자로 알려지면서 건국대병원이 개원과 동시에 영입한 이른바 ‘스타’ 교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진료 스케줄 때문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이미 생활의 일부가 돼버린 의료 봉사는 이제 손에서 놓을 수도 없게 돼버렸다”고 미소를 띄우는 그는 “덕분에 주말마다 와이프로부터 핀잔을 들으면서 집을 나서는 게 일상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고영초 교수는 사실 수련의 때부터 전진상 복지관(의원)에서 무료 의료 봉사를 펼쳐왔으며 요셉의원에서 진료 봉사를 한 지도 10여년을 훌쩍 넘겼다.

그는 “요셉의원 초창기 시절엔 술 냄새, 오줌 냄새, 불결한 위생으로 행려 환자들의 옷이나 양말을 벗기는 게 너무 싫어 대충 진찰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성경 말씀 중에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구절을 발견하게 됐죠. 마음 한 구석이 찔리더군요”라면서 당시를 고백했다.

고영초 교수는 어렸을 적 내과의사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서울의대 졸업을 앞두고 뜻하지 않게 부친의 교통사고를 겪으면서 당시 신경외과로 전공을 바꿨다. 이후 뇌종양, 뇌혈관 질환, 선천성 뇌질환, 뇌외상 및 척수질환 환자 치료에 매진했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하느님의 신비를 느끼지 않는 의사는 없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고 교수는 그 와중에서도 영세 상인과 서울에서 쫓겨난 철거민, 노숙자 등이 환자의 대부분인 이 병원에서 한 주도 빠짐없이 뇌종양과 뇌출혈, 뇌기형 등의 질병을 무료로 치료해 왔다.

봉사의 세월이 길다 보니 애틋한 사연도 적지 않다. 20여년 전 14살이던 한 아이가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자란 뇌종양을 안고 시력을 거의 잃은 채 찾아왔던 것.

수술로 더 이상의 병 진행은 막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는 시력을 잃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그 아이를 잊고 지내던 고 교수에게 최근 한 시각장애인 안마사가 찾아와 안마를 해주겠다고 손을 뻗었다. 바로 20년 전 그 아이가 어엿한 성인이 돼 스스로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앞으로는 무료로 진료하는 곳에 의사가 필요한 경우 언제, 어디서든 의사들이 마음껏 봉사할 수 있도록 연결시켜주는 일에 앞장서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사를 직업 이전에 소명으로 알고 ‘환자 우선’으로 진료하는 고 교수의 조용하지만 열정적인 행동이 의미있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봉사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나서 보세요. 봉사를 마치고 기지개를 켤 때 뭉친 근육이 풀어지는 쾌감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압니다”
기사제공 : 데일리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