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금철 기자 기자 2012.01.18 09:39:44
[프라임경제] 한국금융투자협회가 새로운 수장을 뽑기 위한 사전작업에 돌입한 가운데 지난 10일 협회장 후보 접수 마감 후 협회 내·외부, 해당 후보별 증권사 간 탐색전이 벌어지고 있다.
‘고인 물’로 대변되는 현재 금융투자협회의 쇄신도 관건이지만 특히 이번 선거는 민(民)과 관(官), 모피아(MOFIA)와 모피아의 대결양상을 보이며 예측 불가한 판세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후보 6명 가운데 김성태 전 대우증권 사장과 박종수 전 우리투자증권 사장, 전상일 동양증권 부회장은 금융투자업계의 산증인들로 ‘民’을 대표한다. ‘官’ 측은 금융감독원 출신의 유흥수 LIG투자증권 사장, 재정경제부 경력이 있는 정의동 전 골든브릿지증권 회장과 최경수 현대증권 사장(나열은 가나다순)이다.
이 중에서도 정의동 전 회장과 최경수 사장은 모피아(재정경제부 이니셜인 ‘MOFE’와 마피아 ‘MAFIA’의 합성어로 관료 출신의 기관 장악을 빗댄 말)로 육자구도 안에서 또 다른 경쟁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금투협 2대 회장 투표는 오는 26일 금투협 총회에서 회원사들의 투표로 진행된다.
◆후보들 아킬레스건은?
18일 금투협회장 후보추천위원회에 따르면, 구랍 7일 네 번째 연임을 포기하고 불출마를 선언한 황건호 회장의 후임자를 자처하며 출사표를 던진 인물은 모두 6명. 현재 네임밸류 및 경력에 따른 후보 개개인에 대한 ‘흠집 내기’마저 의미가 없는 상태다. 각 후보자에게 내려진 추천과 반대 의견들이 나름 명확하기 때문이다.
추천 의견만을 놓고 본다면 여섯 후보자 모두 회장감이다. 우선 20년 넘게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이력을 쌓은 김성태 전 사장은 합리적 마인드를 갖춰 소통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0년부터 LG투자증권 사장, 우리투자증권 고문, 흥국생명보험 사장, 대우증권 사장을 역임했으며 씨티그룹과 뱅커스트러스트컴퍼니 등 외국계 업체에서도 트레이딩, 자산운용, 파생상품 등을 두루 섭렵해 국내 금융시장에서 경험을 십분 활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출신인 유흥수 사장의 강점은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탁월한 리더십이며 금감원 경력을 내세운 금융당국과의 원활한 소통에 대한 기대감도 배제할 수 없다. 과거 증권감독원 국장부터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한국증권업협회 자율규제위원을 거쳐 현재 LIG투자증권을 이끌고 있다.
전상일 부회장은 동양메이저, 동양시멘트를 거쳐 동양증권 사장을 역임했으며 지난해 1월 부회장 취임 전 동양선물과 동양투신운용 대표까지 지내 산업과 금융 부문 전체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우리나라에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열풍을 몰고 온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외 나머지 후보들인 박종수 전 사장과 정의동 전 회장, 최경수 사장에 대해서는 추천과 반대 의견 모두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현재 금융투자업계에서 차기 금투협 회장으로 가장 많이 거론돼 ‘실질적 3강 체제’라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박종수 전 사장은 2001~2003년 금투협 전신인 증권업협회 부회장을 지냈고 이후 LG투자증권, 우리투자증권 사장 등을 역임했다. 박 전 사장을 지지하는 인물들은 우리투자증권이 자산관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나기 전까지 초석을 다진 인물이 박 전 사장이라며 대외적인 관리능력이 탁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 같은 실적에 비해 내부적 조직 관리는 떨어진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박 전 사장은 인사와 사업경영계획 등을 독단 처리했다는 노조 측의 불만이 현재까지 이어질 만큼 노조와 갈등의 골이 깊었다. 우리투자증권 사장 타이틀을 내려놓은 지 2년여가 지났지만 아직까지 노조가 회장 출마를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등 조직 관리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점이 큰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우리투자증권 관계자는 “박 전 사장이 기존 우리투자증권의 브로커리지 사업을 자산관리 분야로 확장하고 변모시켰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결국 다시 시장점유율을 따지는 식으로 경영 방향이 굳어져 더욱 신임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정의동 전 골든브릿지증권 회장. |
또 정 전 회장은 “정책당국과 상호보완하고 균형을 맞추거나 당국의 움직임과 논리를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일은 관 출신인 자신의 강점”이라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관료 출신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인물로 분석된다.
그러나 장점으로 내세운 관료 경험은 자칫 ‘왕의 귀환’으로 비쳐져 개혁을 요구하는 업계 분위기에 묻힐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는 관치 개입 우려와 맥을 같이 하는데, 기획재정부 출신이 또 민간협회장 자리에 앉는다는데 대한 거부감으로 해석된다.
실제 은행연합회장, 생명보험협회장, 여신금융협회장, 손해보험협회장, 저축은행중앙회장 등이 모두 재정부 출신이다. 이를 두고 금융계에서는 지난해부터 ‘모피아 천지로 변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민간협회장 전원이 모피아 출신으로 채워지는 데 대한 업계 거부감 외에도 자질 문제도 거론된다. 최고경영자 경험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예탁원과 골든브릿지증권에 불과해 금융투자업계 전반을 살피는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평가가 있다.
마지막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업계 전반이 침체 수렁에 빠진 시점에 현대증권 대표로 취임한 최경수 전 사장은 최악의 상황에도 흑자를 지켜내는 수완으로 유명세를 치른 바 있다.
최경수 현대증권 사장. |
다만 최 사장은 최근 ‘ELW 불공정거래 소송’이란 악재가 발목을 잡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는 17일 최 사장에게 징역 2년6월을 구형했고 선고공판은 금투협 회장 선거일인 26일 닷새 후인 31일 열릴 예정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이번 ELW 사건으로 기소된 12개 증권사 가운데 7개 증권사 임원들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을 근거로, 31일 재판 결과도 무죄가 선고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대증권 관계자는 “최경수 사장의 경우 실적 면에서 강점을 보이며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지금 당장 평가를 내리기엔 이른 감이 있다”며 “금투협 회장은 증권사 사장과 업무가 다른 만큼 얼마만큼의 능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증권사들이 밝힌 금투협의 개혁 과제
지난 2009년 증권업협회, 자산운용협회, 선물협회 등 자본시장 3개 협회가 통합해 출범한 한국금융투자협회는 이후 우리 자본시장에서 확고한 위상을 구축하고 있다.
금투협은 증권사와 자산 및 선물운용사, 부동산신탁사 등 161개 정회원, 295개 준회원 업체를 대표하는 기관으로 한 해 예산도 600억원 규모로 큰 편이다.
이런 이유로 금투협은 그간 금융투자업계의 큰 틀을 구축하며 회원사들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지만 반대급부로, 회원사에 대한 제도적 지원 및 업체 간 불균형 해소에는 소극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등 업계 대표기관으로서의 역량 강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속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식워런트증권(ELW) 등 일련의 사건과 연계된 회원사 상품들의 불완전 판매와 도덕적 해이 등을 감독할 자율규제기관으로서의 역할과 경영의 불투명성, 신(新) 금융개혁인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침체된 프리보드 시장의 활성화도 같은 맥락의 과제다.
금융투자업계 고위 관계자는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는 현 상태에서 새로운 수장을 축으로 과제를 해결할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며 “글로벌 경기 전반에 암운이 드리운 상황이라서 신임 금투협 회장에게 거는 업계의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회원사들의 관심은 부족하다. 그도 그럴 것이, 금투협 회장 투표는 ‘1사 1표’가 원칙이라서 증권사 직원들이 관심을 가질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1사1표는 전체 투표의 70%로 나머지 30%엔 차등투표권이 부여된다. 이는 회비 분담률로 산정되며 대형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소형증권사에 각각 2%, 1%, 0.4%가량으로 나눠진다.
또한 무엇보다 이번 취재를 위해 금투협 회장 선거 및 개선 관련 사항을 묻는 질문엔 모든 증권사가 약속이나 한 듯 익명을 요청했다. 쉽게 답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며 답변을 거부한 증권사도 5곳에 달했다. 누가 회장에 선출되든 별 상관은 없지만 회원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금투협의 회장을 뽑는 만큼 신중을 기하는 모습들이다.
대형 증권사는 규제에만 신경 쓰지 말고 금융투자업계 발전과 업계의 위상강화에 신경 써 달라는 입장을, 중소형 증권사는 정책수립 등 업계 이해관계를 반영할 때 대형사뿐만 아니라 중소형사까지 아우를 수 있는 균형 잡힌 정책을 내놓았으면 하는 바람이 대부분이다.
이외 향후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후 관련 제도를 정비하는 등 행정 노하우를 키워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이 관계자는 “그간 하향식 행정에 대한 업계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며 “제도 하나를 발표해도 너무 서둘러 마치 ‘번개 불에 콩 구워 먹듯 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고 속내를 밝혔다.
유일하게 사명 공개를 허락한 우리투자증권 관계자는 “보육시설 확충 등 직원 복지에도 관심이 높지만 업무 강도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것 같다”며 “증권사마다 출혈경쟁에 내몰리다보니 실제 직원들은 살인적인 업무에 노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