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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외래어 한개 우리말로 바꾸는데 60만원?

최영식 기자 기자  2012.01.18 09: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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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뿌리 깊은 나무’는 ‘한글’을 소재로 삼은 드라마였다. 외래어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 한글의 우수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작품이란 평가가 뒤따랐다.

하루가 멀다고 외래어가 쏟아지고 있다. 우리말로 적절히 바꾸지 못한 채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다. 외래어를 말하면 벌칙을 받는 게임까지 있을 정도니 평소 얼마나 많은 외래어가 사용되고 있는지 쉽게 짐작이 간다.  

분별없이 사용되는 외래어를 우리말로 순화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국립국어원은 2004년부터 우리말다듬기 사이트를 운영 중인데, 아쉽게도 ‘별 효과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8년째인 이 우리말 순화 작업은, 누리꾼들이 직접 제안한 다듬고 싶은 외래어를 선택하고, 우리말 공모를 거쳐 ‘다듬은 말’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305개의 외래어를 공모해 우리말로 순화했고, 지금은 ‘벤치마킹(benchmarking)’과 ‘스펙(spec)’을 대신할 우리말을 공모하고 있다.

심사기준은 의미의 적합성, 조어 방식, 간결성 등 세 가지. ‘다듬은 말’로 선정된 단어를 최초로 제안한 공모 참가자에겐 문화상품권 30만원이 지급된다. 두 번째로 제안한 사람은 20만원, 그다음은 10만원을 받는다.

이 문화상품권은 중앙행정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으로 집행된다. 외래어 하나를 우리말로 순화하는데 60만원이 쓰이는 셈이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누리꾼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8년이란 시간 동안 얼마나 효과를 거뒀는지 의문이다.

한번 공모를 하면 적게는 300개에서 많게는 700개 정도의 제안어가 등록된다. 하지만 한 사람이 단어를 세 개까지 제안할 수 있기 때문에 참여자 수는 제안어 수보다는 적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외래어 ‘리얼 버라이어티(real variety)’는 공모를 통해 ‘생생예능’으로 다듬어졌다. 하지만 이를 제안한 누리꾼의 글에는 왜 이 단어를 제안했는지 간단한 설명은커녕 제안어만 달랑 남겨져 있다. 한 누리꾼이 ‘생생예능’을 제안하자마자 30초 만에 같은 단어가 두 번이나 제안됐는데, 결과적으로 30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순위가 결정된 것이다.

즉, 우리말다듬기에 들인 비용에 비해 실제로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사람의 수는 적고, 순화할 우리말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사람보다는 단지 문화상품권을 얻기 위해 요행을 바라고 공모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11월16일 사이트 운영방식을 개편하면서 제안 양식을 만들어 뒀지만 이를 지키는 누리꾼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아직 심사 시에 제안내용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외래어를 우리말로 아무리 예쁘게 다듬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국립국어원의 의도는 좋았지만 방법이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스크린도어’가 ‘안전문’으로 다듬어진지 오래지만, 아직도 지하철에서는 매일 ‘스크린도어가 열립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다. 귀중한 예산을 좁은 곳에 허투루 쓰기보다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우리말을 자주 접할 수 있도록 작은 부분부터 고쳐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