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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대한민국의 청년에게 권하는 루신 ‘아Q정전’

최보기 칼럼니스트 기자  2012.01.16 18: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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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1983년 가을 오후 4시, 한바탕 접전으로 최루탄 가루가 자욱한 교정. 노 교수님께서 한마디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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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뭘 알고나 눈물 흘린다. 이유도 모른 채 낑낑대는 골목의 저 강아지들이 불쌍할 따름이다”

강아지들은 최루탄에만 낑낑대는 것이 아니다. 눈이 내려도 미친다. 빗물로 녹지 못한 것이 눈인 줄 알 턱은 없고, 다만 한 순간에 세상이 온통 하나의 색으로 변했다는 것, 먹어봐야 배도 안차는 것이 이리 저리 날리니, 이게 웬일인가 정신을 못 차리겠다. 그러니 우왕좌왕 뛰는 수밖에.

‘아큐, 阿Q’는 청나라 말기, 자신의 성도 이름도 정확하지 않은 일자무식, 시골의 날품팔이 청년이다. 집도 절도 없어 사당에서 지내는 노숙자다. 사람들이 그를 아퀘이[Quei]라고 불렀기에 저자 루신(魯迅)이 그렇게 정리했다. 일설에는 ‘큐(Q)’가 변발한 청나라 사람들의 머리 모양을 상징, 루쉰이 주인공 아큐를 통해 당시 중국인의 무지몽매함을 꼬집었다고도 한다.

아큐는 말했듯이 아무 생각 없는, 무지몽매한 잡놈이다. 그는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 얻어 맞는 대신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이유 없이 괴롭힌다. 그러나 때리든 얻어 맞든 이기는 건 항상 아큐 자신이다. 나를 때린 그 놈은 고결함을 모르는 돼지다. 그러니 나는 여전히 고결하고, 그 놈은 돼지다. 내가 이겼다. 그리고 잠들면 그만이다. 루신은 이런 아큐를 통해 종이호랑이로 전락했음에도 대국인이라는 자아도취에서 못 깨는 당시 중국인의 어리석음을 풍자했다.

아큐는 원래 혁명당을 싫어했다. 명쾌한 근거는 없다. 그냥 혁명은 반역이고 반역은 자기에게 좋을 것 같지 않아서다. 그러나 명망과 지체 높은 거인영감이 혁명당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는 혁명당이 되기로 한다. 자신을 무시했던 나쁜 놈들을 죽여버리기 위해서다. 아무도 임명해주지 않았지만 아큐는 스스로 ‘혁명당’이라고 떠벌린다. 이제 갖고 싶은 것, 맘에 드는 여자 모두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다. 혁명당원과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는 아큐가 혁명을 위해 한 것이라곤 그것 밖에 없다.

그리고 조씨 집이 약탈당하던 저녁, 자신을 부르지도 않았고, 자신의 몫을 하나도 챙겨주지 않은 혁명당. 그래서 아큐는 다시 혁명당을 증오한다. 관청에 고발해 참수형을 시킬 작정을 세웠다. 그러나 불쌍한 아큐, 조씨 집 약탈을 구경만 했지 그들이 누구인지도 몰랐던 아큐는 혁명 정부에 약탈의 죄를 쓰고 체포돼 사형을 당한다.

난생 처음 붓을 든 아큐는 자신의 사형 조서에 서명을 동그라미로 대신한다. 동그라미가 제대로 안 그려진 것이 조금 속상하지만 그런 것은 쓸모 없는 놈들이나 잘하는 거라고 자위하고 만다. 사람이 살다 보면 감옥에 들어갈 때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처형도 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다. 성안 사람들은 불만이다. 총살형이 참수형보다 재미가 덜하기 때문이다.

루신은 ‘아Q정전’을 쓰면서 후세 역사가가 ‘아큐’의 정확한 이름을 찾아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마저 접는다. 그때쯤엔 ‘아Q정전’ 따위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러나 그의 생각은 틀렸다. 90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Q정전’은 불후의 명작으로 도처 국가들에 남아있다. 무지몽매한 민중에게 진정한 혁명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 지를 논하는 자리마다 교과서로 읽힌다.

힌 갑옷에 힌 투구. 지금 같은 매스미디어와 SNS가 없던 그때 아큐가 살던 시골 사람들에게 알려진 혁명당원들의 모습이다. 매스미디어와 SNS가 대세인 지금, 트위터에 만개한, 정체불명의 온갖 루머와 거짓말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극과 극은 통한다.

‘아큐’는 개인일 수도 있고, 집단일 수도 있고, 국민일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양극화가 점점 심해진다. 수시로 잠수함과 항공모함을 들이대며 힘겨루기를 해본다. 그사이에 유일한 분단국, 남한과 북한이 있다.

   
 
둘이 손을 꼭 잡고 친하게 지내면 남들이 싸움을 일부러 붙여도 싸울 일이 없다. 그러나 둘이 으르렁대기만 한다면 언제가 그들의 대표선수로 차출돼 무제한 완폴제의 난타전을 벌이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싸움을 피해가야 ‘아큐’가 안 된다. 그럴려면 아큐처럼 무지몽매하지 말자. 어떤 교수의 충고대로 모르면 공부하자.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다 안다는 사람, 그러니 자신이 무조건 정답이라고 빡빡 우기는 사람들이다. 아예 모르는 아큐나 그들 같은 천재나 국가와 국민의 행복한 미래에 도움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극과 극은 통한다.

프라임경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