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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기적’ 만드는 종합예술인들

[현대중공업 ‘현장’③] 손 쉴 틈 없는 협업 시스템 현장…‘조선업 불황 맞나?’

이진이 기자 기자  2012.01.11 09: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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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서울발 울산공항 비행기가 착륙 준비로 분주해질 때쯤 몇몇 탑승자들의 입에서 조용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창문 밖 드넓은 바다 한켠에 자리한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마치 항공사진을 보는 듯한 첫 인상을 그대로 각인시키려고 하는 찰나, 주변 건물이 눈에 띈다. 어림짐작해도 15층 이상 높이의 건물이었지만 울산조선소와 비교하자니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으로 비춰질 만큼 한 없이 왜소하게만 느껴진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첫 방문길. 기대는 흥분으로 뒤바뀌고 있었다.
 
울산공항에 도착해 밖으로 나서자 짭짤한 바닷바람이 코끝을 때린다. 추운 날씨다. 주위를 둘러볼 새도 없이 울산조선소로 발길을 향했다.
 
차로 15분 남짓 달렸을까. 현대자동차(005380)가 1996년 12월 완공해 울산시에 기부했다고 전해들은 왕복 6차선의 아산로에 올랐다.  
 
거리 풍경을 보며, 기억 속 ‘현대중공업(009540)’을 다시금 떠올렸다. 산업도시 울산의 지역경제를 대표하는 곳. 글로벌 조선·중공업 시장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기업.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현대중공업 TV광고 속 육성(肉聲)도 오버랩 된다. 
 
정 명예회장은 당시 광고에서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와 5만분의 1지도, 방어진 백사장 사진으로 영국은행에 조선소 건설 자금을 빌리고, 선박을 수주한 일화를 말했다.
 
대한민국 경제에 희망이 되겠다던 현대중공업의 정문이 드디어 눈앞에 나타났다. 무언가 듬직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나같이 진풍경, ‘종합예술’이라 불리는 이유
 
정문 오른쪽으로 나란히 세워진 체육관과 문화관이 문지기 같다. 낡은 외관만큼 울산조선소와 태동을 함께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실제로 이곳 조선소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기도 하다.
 
문화관 안으로 들어서자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기념관이 보였다. 이곳에서는 정 명예회장과 현대중공업의 역사를 언제든지 볼 수 있다. 이날도 어김없이 기념관을 관람하려는 학생들과 외국인들로 붐볐다.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의 집무실.
정 명예회장이 생전에 “나는 성공한 기업가가 아니라 단지 부유한 노동자”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처럼 복원해 놓은 그의 집무실에서 검소함이 배어있다. 집무실은 그만큼 단조롭고 소박하다.
 
발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왔다. 멀리 보이는 공장 외벽에 ‘우리가 잘되는 일이 나라가 잘되는 일’이라는 표어가 큼지막하게 써 붙어 있다. 국가경제에 이바지하고 ‘국민기업’을 키우고자 했던 정 명예회장의 정신을 그대로 투영돼 있었다. 
 
하나같이 크지만 옹기종기 모인 공장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 행렬이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200만평이나 되는 야드를 빠르게 오가기 위해서다. 마침 블록을 실은 트랜스포터 한 대가 지나가고 그 뒤를 자전거 두 대가 뒤쫓는다. 
 
   
블록을 운반 중인 트랜스포터의 모습. 조선소 내에서 이동수단 중 가장 우선순위다.
도크까지 안전하게 옮기는 작업이다. 선박은 여러 개의 메가블록을 이어 붙여 만들어 진다. 작은 블록들이 모여 하나의 선박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장점은 집단지성이라는 말이 있다. 선체설계, 기장, 전장 등 모든 분야에서 협업을 잘 이뤄서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 낸다는 얘기다. 조선 사업을 종합예술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울산조선소에는 총 10개의 도크가 있다. 원유운반선, 컨테이너선, 벌크선 등 수십 척의 선박이 위용을 뽐낸다. 그 크기에 놀라 탄성이 새나온다. 새삼 우리나라 조선기술의 우수성을 되새김질 하게 만드는 규모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1척의 선박에 오를 기회가 생겼다. 1안벽에 접안된 10만5000톤급 원유운반선 ‘피닉스 콩코드(PHOENIX CONCORD)’호다. 배 위에서는 선박인도를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작업자들이 블록 표면을 일정하게 깎는 그라인딩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파트 4층(21미터) 높이의 조타실에 올라가니 선박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길이 244미터 폭 42미터에 이르는 이 선박은 원유운반선 중에 작은 편에 속한다. 우리나라 일일 석유사용량 190만 배럴(약 26만톤)의 2분의 1가량의 원유를 저장할 수 있는 크기다.
 
중심에는 세계 최대 1600톤급 규모의 골리앗 크레인 등이 중심을 지키고 있다. 
 
◆기업 넘어 ‘노블리스 오블리제’
 
강추위에도 야드 곳곳에서 현장직원들의 손길은 분주하기만 하다. 조선시황 부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철 블록을 쇠망치로 두드리는 사람, 불꽃을 내며 용접하는 사람 등…. 
 
이곳에는 협력사 직원 포함 4만5000명의 사내외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많은 구성원을 수용하기 위해 공장마다 식당을 두고 있을 정도다. 조선소 안팎으로 현대중공업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 규모가 하나의 소도시와도 같아 기업을 넘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기업이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의미, 제조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잘 살길 바라던 정 명예회장의 기업가 철학이 발현된 것이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항공촬영 전경.
이밖에 100만평의 기타부지에 사원아파트를 포함해 호텔, 병원, 각종 복지회관, 스포츠시설 등도 마련돼 있다. 
 
이곳 야드에는 선박뿐만 아니라 엔진과 중장비공장도 함께 있다. 엔진, 굴삭기, 휠로더 등이 줄서있다. 현대중공업이 조선회사가 아닌 종합중공업회사라고 불리는 이유다. 
 
임진년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현대중공업의 모습을 상상하기에는 커다란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