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180만평 야드에 총 10개의 도크로 세계 조선·중공업 시장을 호령 중인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겨울 칼바람은 매섭지만 조선시황 부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선박을 건조하는 산업 현장의 열기가 뜨겁다. 이러한 현대중공업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을지 여간 궁금하다. 울산조선소 본관을 직접 찾은 지난해 12월, 설계실 임원 및 실무진과 만난 자리에서 해답을 얻었다. 현대중공업의 핵심 경쟁력은 설계능력이다. 한때 세계 제일로 꼽힌 일본이 왕좌의 자리에서 물러난 것도 설계를 간과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1990년대 중반 전 세계 발주물량의 40%를 확보하며 세계 최고로 꼽힌 일본 조선 사업이 불과 몇 년 새 우리나라에 역전당하고 말았다. 현재 중국시장에도 추월당한 처지다. 문제는 가격경쟁력과 기술력으로, 핵심은 설계 투자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선주들이 새로운 설계와 필요한 재원을 요구했지만 표준화된 모델만 고집하는 등 승승장구하던 시절, 설계인력을 육성해야함에도 기존 선박만 고집했다고 회자되기도 한다. 그만큼 선주의 요구, 시대적 트렌드에 얼마나 유연한 대처를 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는 현대중공업(009540)이 설계한 선박이 세계에서 인정받는 이유의 반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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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김원옥 부장, 최정호 상무, 남상훈 부장. |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본관에서 최정호 조선사업본부 조선설계실 상무, 김원옥 조선 선체설계1부 부장, 남상훈 조선설계실 조선설계운영부 부장 등을 만나 현대중공업 설계실 현황과 비전을 들었다.
-선박설계 프로세스와 엔지니어 구성 등 현황이 궁금하다.
▲기본설계, 초기설계는 같은 개념으로 보면 된다. 실제로 설계의 근간이 되는 기본설계는 선주에게 승인을 받은 뒤, 검사를 대행해주는 선급기관에 승인을 받는다. 주요 재원들은 모두 여기서 결정된다. 중국, 일본 등 해외 조선업체들을 앞서갈 수 있는 근본적인 기술은 기본설계에서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상세설계를 수행한다. 상세설계는 집으로 얘기하면, 기둥이 세워진 상태에서 창문을 다는 등 디테일한 작업이다. 즉, 기본설계에서 결정된 것들을 구체화 하는 설계다. 생산설계는 현장에서 직접 배를 만들도록 세부적인 치수까지 계산한다. 지속적으로 공법을 개선하고 개발해 현장에서 생산하는데 공수는 적게 투입하고 효과적인 제품을 만들도록 하고 있다. 설계는 기본 설계부터 생산설계까지 모두 중요한 단계를 거친다. 엔지니어 구성을 보면, 기본설계를 포함해 설계실 전체 인원은 1000명 이상의 대규모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우리나라 조선 1위를 이끌어가는 핵심은 설계를 중심으로 한 인력들이 대거 포진돼 있기 때문이다. 설계실 근무자들은 우리나라에서만 1등이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든 최고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현대중공업을 이끌어 가는 기관차, 선두를 이끌어가는 핵심 브레인이 설계실에 다 모였다고 보면 된다. 신규 선박과 특수선 등을 개척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연구해서 만들어 내는 것도 중심적으로 하고 있다.
-요즘 조선업계 트렌드는 어떤가.
▲최근 사회적 분위기가 친환경을 요구하고 있는 추세다. 선박도 환경을 생각해 이산화탄소(CO2)를 적게 배출하면서 운항할 수 있는 배를 설계하기 위해 시스템적인 것을 연구해 나가고 있다. 앞으로 최고의 경쟁력은 친환경선박을 누가 설계해 낼 수 있느냐가 바로미터 될 것이다. 현대중공업에서 만들어낸 배가 EEDI지표가 낮고, 중국이 높다고 하면 전부 우리 쪽으로 올 수밖에 없다. EEDI란 선박의 연비효율을 나타내는 지수로, 1톤 화물을 1해상마일(1.852㎞) 운반할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말한다. 두 번째는 에너지 세이빙이다.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절감하면서 배를 운항할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탄소배출 규제와 연관이 있나.
▲그렇다. 국제해사기구(IMO)에서 기준치를 만들어 놨다. 우리는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지만, 중국은 상황이 다르다. 이런 것들이 실현되고 나면 차별화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것들이 하루빨리 공포되길 바란다. 또, 친환경 자체가 비용을 상승시킬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고, 선주는 고효율에 따라 연료소비를 최소화하길 원한다.
-선주가 새로운 컨셉트의 배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나. 일화를 소개한다면.
▲덴마크의 AP몰러-머스크라는 선주가 있다. 이 선사의 선박은 에너지 세이빙 측면에서, 폐열회수장치(WHRS, Waste Heat Recovery System)를 적용하고 있다. 배를 운항하면 폐열이 나오는데, 그것을 다시 활용해 연료를 절감하는 것이다. 최근 연료를 절감하는 그린십 기술을 요구하는 선주가 많고, 실제로 우리가 짓고 있는 배에도 이런 부분을 협의하면서 적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회사의 콘셉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주사가 어려운 걸 요구하니까 우리도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은 옛날 방식이다. 선주사의 독특한 요구는 우리에게 발전의 기회가 된다. 우리가 그것을 적극 수렴한다면 결국 선주도 좋고, 우리 야드도 발전하는 계기된다는 마인드로 움직이고 있다.
-가격경쟁력을 위해 설계할 때 유념하는 부분은.
▲초기설계 단계부터 원가개념을 가지고 설계를 한다. 수주할 때 가격, 설계하면서 들어가는 자재비, 현장에서 필요한 생산비를 전체적으로 계산하고 있다. 어떻게 이익을 낼 것이냐의 문제는 최적의 설계로 현장에서 공수를 줄이면서 선주가 원하는 기술적인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공법 등의 연구를 통해 현장에서 배를 지을 수 있는 기술력과 생산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선박을 만드는데 강재가 많이 소요되는데, 강재는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선주가 요구하는 조건을 만족시키되, 강재를 적게 투입하기 위해서는 설계 기술력이 중요하다. 가격경쟁력과 관련된 부분을 다시 정리한다면, 싼 게 경쟁력이 있다는 방식은 구시대적인 것이고, 현재의 방식은 고객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면서 감동시키는 것이다. 또, 그 가치는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선주가 결정하는 것이다. 만약 선주가 100원의 가치 있는 배를 요구했는데, 선주가 110원~120원의 감동을 받으면 가격경쟁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산술적인 금액이 아닌 선주가 요구하는 수준 이상으로 만족시키는 게 우리가 가진 가격경쟁력이다.
-중국의 견제가 위협적이다. 설계기술면에서 경쟁력은 어떤가.
▲일반상선은 중국이 많이 따라온 것 같다. 결국, 중국과 차별화 할 수 있는 것은 설계 기술력이다. 최근 우리는 일반상선보다 드릴십,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저장재기화설비(FSRU),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FLNG) 등 특수선이 매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설계 기술력을 통해 앞으로 중국과의 갭을 벌려나갈 계획이다. 신선형개발 등 새로운 기술에서 앞서 나가야한다. 우리는 앞으로 계속 나가고 중국이 천천히 따라오도록 하는 게 설계라고 생각한다. 현재 그런 아이템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진행 중이다. 통상 단편적으로 기술력의 차별화에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고효율화다. 자동차를 만들더라도 똑같이 흉내 내서 만들 수는 있지만, 어떻게 만들어서 어떤 경쟁력이 있게 하느냐가 숨은 노하우가 되겠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동차를 만드는데 얼마나 고효율로 만드느냐 하는 부분은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다. 그런 부분에서 중국은 상대적으로 우리한테 떨어진다. 하지만 언젠가 그 갭이 좁혀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리지 않고, 중국이 두 걸음 나갈 때 네 걸음 뛰어가야 그 갭이 계속 유지가 된다. 그런 각오로 움직이고 있다.
-영업설계 엔지니어들의 창의적인 설계 마인드를 위한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해외연수나 신기술 국제세미나에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선주사를 방문해 선주사의 새로운 요구를 청취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을 기초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신입사원의 경우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은 다음 영업설계로 오게 되나.
▲보통 영업으로 가기도 하고, 현장으로 가기도 한다. 최근 추세는 설계를 알아야 되겠다는 게 우선이다. 설계실에 일을 하는 분들이 다시 영업이나 현장 쪽으로 가기도 한다. 지금 현장 관리자 중에 설계실에 계셨던 분들이 꽤 많다. 우리 회사만 놓고 봤을 때, 설계를 해본 사람이 개선발표도 잘한다. 마인드 자체가 설계 마인드가 돼 있으니까 그런 것 같다. 예전에는 자기가 하던 걸 그대로 하는데 요즘은 다양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설계실의 경우 연간 몇 건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나.
▲프로젝트로 보면 연간 20건 이상 될 것이다. 예전에는 기존 것을 많이 했다면, 지금은 매년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형태의 배들을 많이 연구해야 된다. 특수선 시대로 가면서 더 많은 설계인력이 요구되고 있고, 고급인력들이 더 요구되는 게 현재의 상황이다.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올해 신조선 발주가 위축될 것이라는데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최근 유럽 경제위기 등으로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현재 수주해 놓은 것을 가지고 설계도 하고 선박을 건조하고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하고 있다. 크게 보면 선주들은 선박 건조비용을 금융회사로부터 빌려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게 막히면 어려움을 겪는다. 유럽발 경제위기가 지속된다면 우리도 많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에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고, 살아남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마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