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 기자 기자 2012.01.06 17:18:10
[프라임경제]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사술(詐術) 부리기가 ‘봉이 김선달’ 뺨치는 ‘희대의 사기꾼’이 경상남도 거제에 나타났다. 그의 사기행각 면면을 살펴보면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곧 사업승인이 날 것처럼 속여 거제 아주동에 위치한 수만평 땅을 두어 시간 만에 팔아치운 건 사기 축에도 못 낀다. 이미 판 땅을 코스닥 상장업체에 되팔기도 했다. 21세기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는 K씨의 기상천외한 사기행각을 취재했다.
지난해 4월 중순, 한미개발 박경호 대표는 중학동문 정용우씨와 안부전화를 나누던 중 솔깃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경상남도 거제시 땅 일원이 공동주택개발 사업부지로 조건부 승인이 났다는 얘기였다. 정씨가 소개한 땅은 거제시 아주동 땅 1000번지 일원으로 소유자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 K씨였다.
그러던 5월1일 저녁, 동문 정씨로부터 갑작스레 전화한통이 걸려왔다. “땅주인인 K씨가 자네(박 대표)를 만나러 가겠다고 하니 내일(2일) 오후 시간 좀 비워달라”는 것이었다. 아무런 협의도 안 된 상태에서 무작정 상경하겠다니 박 대표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 230억원에 나왔던 땅이 보름새 260억원으로, 30억원 가량 ‘껑충’ 뛴 까닭이었다.
박 대표는 “100원짜리 물건을 사고파는 것도 아니고 사업진행 상황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서 만나 무얼 하느냐”며 단호히 거절했지만, “K씨의 지인이 부도 위기에 놓여 급전이 필요한 모양인데 계속 만류해도 막무가내”라는 게 동문 정씨의 입장이었다. 그렇게 박 대표와 K씨의 악연은 시작됐다.
박 대표와 K씨가 첫 대면한 것은 2일 오후 2시30분 국민은행 부천서지점 지점장실. 한 시간 가량 거제사업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 후 본격적으로 가격흥정이 이뤄졌다. 화두는 단연 30억원이나 인상된 땅값이었다.
서로 옥신각신한 끝에 1차 사업부지 5만267㎡을 250억원에, 2차부지 2만8683㎡을 180억원에 매매하기로 협의가 끝났다. 박 대표로선 꽤 괜찮은 거래였다.
1차 사업부지만 두고 보더라도 기존 260억원보다 10억원이나 싼 가격에 샀을 뿐 아니라, 그 안에 포함된 △국유지 △행불자토지 △도로 △완충녹지 △묘지 등 타인명의의 땅도 K씨가 직접 매입해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2차부지의 경우 애초 200억원 선을 예상했는데 흥정이 잘돼 180억원에 매입하게 된 것이다.
이후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부도를 막아야 하는 급박한 상황인 만큼 전문가 견해를 받은 ‘제대로 된 계약서’는 나중에 다시 만들기로 하고, 아쉬운 대로 지점장 책상에서 PM직원이 작성한 계약서로 대체키로 했다. 물론, 계약금 43억원 또한 계약서 인주가 채 마르기도 전에 계좌이체로 송금됐다.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서 발견됐다. 과태료 2000만원까지 물어가며 토지거래 신고를 차일피일 미루는 건 시작에 불과했다. 늦어도 6월까지 마무리된다던 사업승인은 12월 중순이 넘어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러다 9월 중순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제대로 된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자’는 박 대표 의견에 K씨가 온갖 이유를 대가며 회피하기 시작한 것이다.
◆상장사마저 속인 K씨…이중 토지매매
그러나 박 대표의 마음고생은 G리츠에 비할 게 아니었다. G리츠가 K씨와 엮이게 된 것은 지난해 3월 중순 S토지개발사 H 대표에 의해서다. 부동산투자회사인 G리츠는 코스닥 상장업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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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경찰서 경제팀은 최근 같은 땅을 두 번이나 되판 ‘희대의 사기꾼’ K씨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K씨가 한미개발과 한 부동산 매매계약서(좌)와 G리츠와 한 토지매매 및 사업권 양도 계약서(우). |
지난해 3월 중순, 한 설계사사무소. 그곳에는 G리츠 김모 부장과 변모 차장, S토지개발사 H 대표 등이 한창 사업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G리츠와 S토지개발은 지난해 1월 거제시 고현동 골든 아틀란티스 사업을 성사시키며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사업이야기를 나누던 중 H 대표가 괜찮은 제안을 하나 내놨다. “직접 시행하려고 2년 동안 공들인 곳이 5월 말이면 사업승인이 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사업권을 양도하려 한다. 살 의향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H 대표가 추천한 곳은 거제로, 바로 K씨 땅이었다.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한 G리츠는 ‘오는 6월30일까지 사업승인을 완료한다’는 조건 아래 5월18일 H 대표와 사업권 양도양수 계약을 체결했다. (물론, 6월30일까지 사업승인이 나지 않았지만 G리츠 측은 계약을 유지키로 했다. 앞서 분양된 거제 덕산아파트와 벽산아파트가 최고의 청약경쟁율을 보인 탓이었다.)
실 토지주인 K씨와 계약이 체결된 건 그로부터 3개월 뒤인 9월5일 오전 11시, G리츠 사무실에서였다. 그러나 이때도 미심쩍은 일이 한둘 아니었다.
먼저, G리츠 측이 제안한 제한물권 설정에 K씨가 반기를 들었다. 계약금 집행 후 권리보전을 위해 지정매수인을 G리츠로 하자는 요구에, K씨는 “굳이 꽤 많은 비용까지 들여가며 처분신탁을 할 필요 있겠느냐”며 “계약금을 받는 즉시 G리츠가 권리설정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단언했다. G리츠 입장에서도 썩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이후에도 K씨는 특유의 ‘말발’로 G리츠 측 제안을 교묘히 빠져나갔다. 예를 들어 ‘해당 땅에 대한 채권채무 관계를 확인해 본 후 계약금을 지급하겠다’는 G리츠 측 입장에, K씨는 “중도금을 수령하면 모든 설정내용을 말소할 것”이라며 “설정내용 중 거제시청, 통영세무서를 제외하고는 단순 차입관계라서 차입금만 상환하면 아무 문제없다”고 은근슬쩍 넘어갔다.
또, ‘중도금 지급일을 사업승인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로 하자’는 제안에는 “한국상호저축은행, 경기상호저축은행, 진흥상호저축은행, 영남상호저축은행 등에서 대출한 165억원이 10월20일 만료된다”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9월 말 이전까지 사업승인을 취할테니 10월18일까지 중도금을 상환해 달라”고 했다.
K씨의 ‘사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행각이 들통날 위기에 놓이자 S토지개발 H 대표와 합공해 오히려 역정을 내기도 했다.
9월7일 오후 G리츠는 회사직원 두명을 거제에 내려 보냈다. 계약금을 지급하기 직전 최종적으로 거제시청을 통해 사업승인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시청 담당주사는 “중도금 지급예정일인 10월18일 까지는 사업승인이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자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K씨로부터 항의전화가 걸려왔다. K씨는 다짜고짜 G리츠 직원에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보고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 모르는 업체에서 불쑥 찾아가 공무원들에게 물어보면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윗선이 힘써서 9월 말까지 사업승인이 나도록 다 만들어 놨는데 남의 일 망칠 작정이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
S사 H 대표 또한 G리츠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지금 300억원에 계약하자는 업체도 있다. 9월 말까지 사업승인을 받아낼 것이고 만일 그때까지 승인이 안 나면 중도금 안주면 될 것 아니냐”며 회유와 협박으로 능란하게 속여, 결국 계약금 25억원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던 11월11일 G리츠 측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K씨가 공문을 통해 “자신은 사업승인을 전제조건으로 계약한 적이 없으며 사업승인 유무에 상관없이 지급하기로 한 중도금을 G리츠가 지급하지 않아 대출기관 연체이자가 발생하는 등 손해를 입고 있다”며 종전의 말을 180도 뒤집은 것이었다.
“약속했던 사업승인 날짜가 늦어지고 있으니 중도금 지급일을 사업승인 날짜 기준으로 맞춰주겠다”고 약속했던 건 오히려 K씨 측이었다.
앞선 9월19일, S토지개발 H 대표는 G리츠 사무실로 찾아와 경상남도 도시계획과에서 거제시청으로 송부한 공문을 보여주며 “도로편입부지 주민공람공고 기간이 필요해 사업승인이 부득이하게 10월18일로 연기됐다. 사업승인 날짜를 어겼으니 중도금 지급일을 사업승인 날짜에 맞춰주겠다”고 한 바 있다.
이에 G리츠는 곧장 H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H 대표는 별일 아니라는 말투로 “현재 위암수술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있다. 퇴원 후 직접 K씨를 만나 해결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들을 안정시켰다. 그러나 H 대표는 이미 수술을 마치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상태였다고 한다.
◆사기행각 들통 나자 자진해 경찰서로
믿었던 도끼에 제대로 발등 찍힌 G리츠는 백방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K씨가 거제도 땅을 이중매매한 사실을 알게 됐다. ‘현대판 봉이 김선달’ K씨의 사기행각에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이중매매 사실은 한미개발이 해당 땅에 대해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 가처분 신청을 해놓으면서 알려지게 됐다.
K씨의 최후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12월6일 오전, 거제 아주동 석호해와루아파트 K씨 집 앞. 한미개발과 G리츠는 마지막으로 K씨에 전화를 걸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K씨는 자신의 행각이 들통 난 지 전혀 알지 못했다.
K씨는 마지막 전화통화에서 조차 말 바꾸기에 바빴다. 한미개발이 G리츠에 대해 물으면 “G리츠와는 계약금을 돌려주고 계약을 끝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으며, G리츠가 전화하면 “한미개발과 계약한 건 사실이지만 그 계약은 이니 끝난 것”이라고 일관했다.
자신의 행각이 들통 난 뒤에도 K씨는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 ‘봉이 김선달’을 빼다 박은 듯한 모습이었다. 한미개발과 G리츠가 집앞에 와 있다는 소리에 K씨는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며 아주지구대에 신고, 스스로 경찰서행을 택했다.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K씨는 “죄가 있으면 법대로 처리하면 되지 왜 집까지 찾아와 난리냐”며 적반하장 격 태도를 취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G리츠 측은 K씨를 사기혐의로 거제경찰서 경제팀에 고소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