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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공부해야 하냐구요!

만드는 것 보다 없애는 것이 더 어렵다는데...

마정건 객원기자 기자  2006.12.25 2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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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오는 광고문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아이 : 무엇 때문에 공부해요?

부모 :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서지. 좋은 회사에 가기 위해서야.

       모두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야. 모두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이야.

       모두 너를 위해서야. 모두 너를 위해서야.

아이 : 저기요. 무엇 때문에 공부해야 하냐구요.

공익광고라지만 이젠 감흥이 없다. 오히려 나는 채널을 돌려버렸다. 왜 그랬을까. 처음 이 광고를 접했을 때 참신한 느낌을 받았고, 부모로서 자기성찰을 요구하는 어떤 울림이 있어 좋았다. 그런데 왜. 난감한 순간이 떠올랐다. 멍청하게 앉아 있다가 느닷없이 일격을 맞았었다.

어느 늦은 밤이었다. 그야말로 공부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똘똘 뭉쳐진 아이를 학원에서 집으로 데리고 가는 중이었다.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 위의 광고가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광고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무심코 들었다. 그런데 듣다보니까, 불연 듯 나의 머리를 망치로 때리는 것이 있었다. 나는 서둘러 라디오를 꺼버렸다. 그리고 휘파람을 불며 딴청을 피웠다. 아이가 이 광고를 듣지 않았기를 바라며. 아이는 뒷좌석에서 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아이가 눈을 뜨며 이렇게 물었다. “아빠, 왜 끄는데요.” 당황했지만 태연하게 대답했다. “얌마, 왜 끄기는. 집에 다 왔잖아.”“왜요? 내가 들으면 안 되나요.”평소 아이답지 않게 집요하게 파고들려했다. 아빠의 졸렬한 행동에 아이는 화가 난 것일까. 나는 얼버무렸다.“야야. 다 왔다, 내려라.”

눈치 챌 수 있겠는가. 내가 왜 당황했고, 라디오를 서둘러 꺼버렸는지. 그 광고는 어른만 들을 때는 감동을 받을 만한 광고였지만, 아이와 함께 듣기에는 난감했던 것이다. 광고 끝에 아이는 부모에게 이렇게 말했다.“저기요. 무엇 때문에 공부해야 하냐구요.”

부모들이여! 다음 답변은 준비되어 있는가. 아이는 왜 공부하냐고 무조건 따지고 있는데 그런 아이를 설득할 좋은 말이 있느냐 말이다. 네 인생을 위해서라고? 일반상식은 지금 아니면 배울 수 없으니까? 과연 공부에 지친 아이들에게 그런 뻔한 답들이 제대로 받아들여지겠는가. 답을 줄 자신이 없었기에 나는 애써 꺼버렸던 것이다.

한 가지 더 있다. 광고에는‘아이들아, 꼭 공부하지 않아도 좋단다.’라는 메시지가 강하게 담겨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말이다. 구조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공부가 아니어도 살 방법은 많단다 라고 말할 만큼 대담한 부모가 있을까.

나같이 소심박약(小心薄弱)한 범부의 입장에서는 공부외의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기에, 광고가 공부 안 해도 좋다는 빌미꺼리를 제공하는 듯 해 더럭 겁이 났던 것이다. 광고는‘대화합시다’로 간단히 끝을 맺어버렸지만 아주 무거운 짐을 부모에게 던져 준 셈이 되었다.

그들의 선의와 진심을 믿는다. 광고를 만든 사람들은 진정 부모와 자식간에 사랑의 회복을 위하여 구상하고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랑의 회복을 통해 아이들이 공부의 참맛을 알 기회를 줌으로서 아이들을 학문에 정진하게 한다는 소박한 희망도 가져보았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거기까지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 다음의 사태는 예측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다수의 부모는 자식을 잘 설득할 말주변도 지식도 그다지 갖추고 있지 못하다. 설사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고 우격다짐식으로 공부하는 환경에 놓인 아이들에게 타당하게 공부의 이유를 설명할 만큼 자신이 없다.

나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무책임한 광고구나.

참여정부 들어 정부조직이 방만해졌다는 비난이 끊이질 않고 있다. 양극화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데 서민들의 뼈와 살을 발라서 거둬들인 혈세를 가지고 누구 좋은 일시키냐며 볼멘소리들이 아우성을 친다.

정책당국도 아무런 생각 없이 조직을 늘리고 키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도 소위 일반상식이라는 것이 있을 테니까. 다만 그들도 위의 공익광고를 만든 사람들처럼 무언가를 만든 후의 사태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따져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그 여파는 공익광고에 견줄 바가 아니다. 사안에 따라 메가톤 급의 혼란이 야기될 수 있는 것이다. 혹시 그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조직이란 만드는 것보다도 없애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고유 업무가 무엇이건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지면 그 조직은 이해집단이 된다. 공공의 업무를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조직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 조직이 그들에게는 평생직장이니 누가 함부로 흔들려고 한다면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만들어줄 때는 언제고 필요 없으니 나가라고 한다면 누가 옳거니 하겠는가. 원천적으로는 그들의 잘못이 아닌 것이다. 앞날을 충분히 예견하지 않은 최초 정책입안자들의 과오인 것이다.

그러므로 만들기 전에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정말 필요한 조직인가. 나중에 없앨 수 있는 조직인가. 그것을 위해 어떤 약정이 필요할 것인가. 다 따져보아야 한다. 그야말로 더는 두고 볼 수 없을 정도의 꼼꼼함의 극치를 달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존의 조직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지를 살펴봐야 한다. 기존에 만들어진 조직으로 감당할 수 있다면 새 것을 만들지 말고 기존의 조직을 최대한 활용할 방법을 먼저 찾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다.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불편하게 한다고, 유사한 조직이 있는지도 확인도 안 해보고 새로운 조직을 마구 만들고 사람을 뽑아 들이면 나중에 그 무거운 짐들은 국민들이 모조리 떠안게 될 것이다. 뒷생각 없이 만든 공익광고로 인해 부모들이 참담함에 빠지듯이 말이다.

이제 국민들 다수는 참여정부가 남은 기간 중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새롭게 만들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조직과 제도를 융통성 있게 잘 활용하길 바랄 뿐이다. 그것이 그간의 실정(失政)을 만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참으로 무책임한 정부구나 라는 말을 듣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