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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가수 신해철의 존재 이유를 듣는다

“노무현대통령 만들기…미완성 6.10항쟁 완성 쾌감”

홍세정 기자  2005.12.12 18:5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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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e사상계]  “인간 기본 싸가지가 어디 가겠어요? 그 역할은 사람들이 요구하기도 하고 제가 해야 할 역할이기도 하고요”

MBC ‘고스트네이션’의 DJ로 최근에는 ‘프란체스카’의 앙드레역을 맡으면서 바쁜 하루를 보내는 신해철(37)이 2002년 노무현 대통령 선거 당시 지지운동에 참여한 것에 이어 얼마 전 100분 토론에서는 후드티 차림으로 출연해 일명 ‘옷차림 논쟁’으로 누리꾼들 사이를 뜨겁게 달구었다. 토론 논객으로 날카로운 논리를 펴는 그에게 ‘싸가지 없음’(?)은 어느새 그의 존재 이유가 되어버렸다.

   

그는 ‘싸가지’라는 말에서 풍기는 통속적인 분위기를 오히려 즐기는 것 같았다. 반면 ‘진보논객’이라는 호칭에 대해서는 그다지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진보논객이라… 멋있기는 한데 딴따라로서 그다지 좋은 표현은 아니네요.”라며 일축해버리는 그는 대체 머릿속엔 뭐가 담겨 있을까가 슬슬 궁금해졌다.

<온갖 편견, 소문 무성해도 그에 대한 정보는 늘 불완전>

그가 88년 대학가요제를 통해 가수로 데뷔한지 햇수로 17년이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정보는 늘 어딘가 모르게 불완전하다. 온갖 편견과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그는 이미 자신에 관한 주위의 ‘말’들을 소상하게 알고 있어 처음부터 맥이 풀렸다.

“편견요? 성질머리 더럽다, 인간이 덜 됐다, 참을성 절대 없다, 남을 낮춰볼 것이다, XX 정치할 거다 등등이죠 뭐. 이건 헛소문인데, 그룹 무한궤도를 하면서 제가 재벌 2세란 소문도 돌았어요. 신디사이저 1억 원씩 하는 등 음악을 돈으로 한다. 또 앨범 10장 낼 때까지도 노래 못한다. 음악은 좀 만드나본데 보컬이 안 된다 등등…”

그는 정말 그런 말들에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하지만 정작 그가 연예 생활을 하면서 힘든 일은 다른 데 있다고 한다.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닌 가족들의 사생활이 침해받는 것이다.

“전 애초에 이런 소문이나 편견에 짜증스럽긴 했지만 신경을 크게 안 썼어요. 정말 짜증스러운 건 제 가족들의 사생활이 침해받는다는 거죠. 그들은 연예인이 아니거든요”

<유독 사회비판적 내용 많아 ‘정치하려는 것 아니냐’ 오해도>

신해철 노래에는 유독 사회비판적인 내용이 많아 주위에서 ‘정치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그의 가수생활 20여년을 통틀어 사랑노래는 15개 정도가 전부였으니 그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초창기 때 유연했던 사회에 대한 비판은 최근 앨범에서 더욱 거칠어지고 노골화됐다. 하지만 그는 결코 어떤 의도성을 담아 노래를 만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제 노래는 다 리얼 스토리에요. 전 주위에 있는 소재들을 주어다가 가사로 만들거든요.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연애를 할 땐 사랑 노래가 나오는 거고 그런 노래를 안 쓸 땐 내가 연애진행형이 아니었던 거고…”

어린시절 그는 ‘나이들면 세상은 좋아질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신해철이 바라는 좋은 세상은 언제쯤 올 건가?
“전 내일 모레가 40인데 별로 좋아진 게 없네요. 아 XX, 정말 언제까지 이럴건데~”

“왜 한국드라마는 죄다 재벌 2세 색소폰 부는 스토리야. 차인표까진 멋있어. 근데 이건 계속 부니까. 그렇다고 재벌들이 그 드라마를 볼 것 같진 않아. 왜 우리는 드라마가 국민의 것이 아닌가 말이지. 내가 영국 드라마들을 재밌게 봤는데, 거긴 미남 미녀가 안 나와요. 소재도 주변 얘기지”

<‘개한민국’인 이유는 드라마가 재벌2세 색소폰부는 뻔한 스토리 일색>

그는 또 우리 사회의 ‘통성명 문화(?)’에 대해 비판한다. 사람들끼리 처음 만나면 이름과 나이를 먼저 묻는 관례가 관계 속에서 서로의 위치를 규정하지 않으면 이내 불안해지는 한국인들의 속성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영국 한인 PC방엘 가면 게임에 중독 된 어린 양놈들이 와서 내 어깨에 손 올려놓고 ‘헤이 맨~’이러는 거야. 위계질서 따지는 게 국가발전에 도움이 될까. 우리나라는 표준어가 왜 서울말이 되어야 하지? 런던 말은 런던지역의 사투리거든. 우리나라는 일부지역의 방언이 표준어를 차지하지. 이 나라의 최고층이 ‘옳은 말 바른말’ 하면서 국민들에게 그 말을 쓰라고 강요하고…. 그러면서 무슨 국민통합을 외치냐고”

<어린시절부터 사회란 부조리한 것 인식 ‘음악은 내 도피처'>

“내가 그때 반장이었는데, 반 친구가 결석해서 집에 찾아가면 정말 입 밖에 내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 부모님 일 나가고 그때부터 고아야. 동생이 발을 데여서 화농이 생겨 병원에 가야하는데 돈이 없는 거야. 학교 앞 절이 있었는데, 스님들은 사모님들이랑 좋은 차타고 다니고, 정말 세상 X같아 보였지.”

초등학교 때부터 그는 사회란 ‘부조리한 것’으로 인식했다. 서민아파트를 빙자한 빈민아파트에 살던 그가 중 1때부터 한 아르바이트만 해도 30가지가 넘는다.

“내가 뭘 좀 팔았거든. 근데 그거 팔러 돌아다니다보면 있는 집에선 박대, 없는 집에선 오히려 그 집 할머니가 눈물 흘리시면서 곶감을 손에 쥐어주시더라고. 있는 자들이 더 차갑다는 걸 안 건 그때였어”

그런 그에게 작은 아버지가 사준 워크맨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볼륨을 끝까지 올리면 나는 내 공간으로 도망갈 수가 있었어”

“사회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던 때는 6.10항쟁, 우리한테는 6.10사태라는 말이 더 익숙하지만…. 내가 대학교 1학년 때였지. 학교에 전기기타 메고 가서 기타를 치는 게 미안한 분위기…뭐 예술이랑 정치랑 무슨 상관이 있겠냐고 하겠지만, 그땐 발레 하던 애들도 돌 던지고 미대 애들, 체대 애들도 길거리에 나왔어”

<“나는 87학번, 386 마지막 열차를 탔다”>

그때 그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청계천 근방을 보도블록을 아스팔트로 깔았어. 순전히 데모 못하게 하려는 거지. 백골단(전경)한테 건전지 던지면서 막 튀었어. 근데 그 XX들이 직격탄 쏘면서 한방에 밀려나오는 바람에 한방에 깨졌어. 결국 다다른 데가 철공소 안이었지. 그 좁은 공간에 80명이나 몰려있었는데, 화공약품 냄새, 최루탄 냄새, 땀 냄새…정말 가관이었어. 그중에서 가장 지독한 냄새가 뭔지 알아? 인간이 뿜어내는 공포의 냄새야”

“옆에서 백골단 하나가 여학생 한 명을 잡고 철문에 대고 대가리를 찧는 거야. ‘텅 텅’하고 울리는데, ‘엄마, 살려주세요.’ 하고 여자애들이 소리 지르는 데 내가 그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뭔지 알아? ‘쟤 때문에 나까지 걸리겠다.’는 거였어. 인간이 얼마나 비겁하고 나약한가를 절실히 느꼈지”

갑자기 그를 ‘사상검증’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가 ‘나는 OO주의자’라고 무 자르듯이 얘기할 거라곤 애초에 기대하진 않았다.

<‘운동’에 대한 지독한 회의가 운동권서 그만둔 계기>

“민주주의가 타락해 한국적 민주주의가 있던 시기라 민주주의는 X도 아니고, 사회주의로 가야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 당연히 사회주의를 공부했지. 막스도 레닌도 날 그다지 감동시키지 못했어. 레닌이 좋았다면 레닌의 삶이 좋았던 거고, 체 게바라의 삶의 모습이 멋있었다고 생각했던 거지”

‘믿을만한 언론은 대자보가 유일했던’ 시대를 회상하는 그의 모습은 여느 386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그가 운동을 그만 둔 것은 바로 그 ‘운동’에 대한 지독한 회의였다.

“NL과 CA의 멱살싸움이 한창일 때 머리 한쪽에 떠올랐던 건 국회의사당에서 의사봉 가지고 몸싸움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이었다”

“그 당시에는 노무현은 차선이었어. 우리에게 최선이란 없었거든. 내가 87학번 386세대 제일 막내 학번이잖아. 6.10항쟁의 미완성과 실패. 노무현 대통령으로 만드는 건 미완성의 6.10항쟁을 완성시키는 쾌감 같은 거였어.”

<노무현 후보 지지했던 이유는 일종의 부채의식 때문>

이 때문에 ‘신해철 정치할 거다’라는 의심을 받기 좋게 행동했다고 그는 인정했다. 사실은 국회의원 선거 때 정계로부터의 지속적인 러브 콜을 받아왔음도 시인했다.

“정치는 ‘NO!’라고 말했는데, 계속 ‘비례대표 몇 번 주겠다’ 고 하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끈질기더라고. 나중엔 내가 이랬지. ‘나 아침에 못 일어나거든요’ 라고. 정치하는 사람들은 조찬회라 하여 아침을 먹으면서 얘기하는데 아침을 밖에서 먹는 짓(?)도 싫고…. 내 기상시간은 오후 3시거든. 내가 정치하면, 후드티에 장갑 끼고 국회에 가라고? 하하”

‘후드티에 장갑 끼고’ 국회에 등원한 그의 모습을 떠올리니 문득 ‘뉴스 보기 정말 즐겁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지금 386들의 변화가 당황스럽다고 했다. 이유는 386들이 현실과 너무 쉽게 타협해 버린다는 것이다.

“영원히 철들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그는 존재만으로도 정말 유쾌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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