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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경복궁 KAL호텔 바라보는 이웃 헌법재판소 속내는

임혜현 기자 기자  2011.10.26 08: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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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학교 인근에서는 숙박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으로 자리잡아 왔다. 학교보건법상 학교정화구역 내 호텔, 여관 및 여인숙 등의 영업을 금지한 학교보건법상(동법 6조 1항 13호 등)의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때문이다(절대정화구역은 학교 출입문으로부터 직선거리 50m, 상대정화구역은 경계선으로부터 200m 이내).

그런데, 합법적으로 여인숙을 운영하고 있는데 인근에 학교가 들어섰다면? 이 경우조차도 법규정을 엄격히 해석해 여인숙을 쫓아내야 할까, 그렇지 않으면 기득권을 인정해 주는 게 법적으로 타당한 해석일까?

형사처벌을 피하려면 여인숙을 옮기거나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경직된 법 해석에 반발한 어느 시민 덕에 이 판단은 헌법재판소까지 넘어갔다. 이미 몇년째 여인숙을 운영하던 유 모씨는 뒤늦게 이전해 온 학교 때문에 학교보건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 판결을 받았고(집행유예), 이에 “해당 법률 조항으로 인해 이미 얻은 여관영업권을 박탈당하는 등 재산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지난 25일 이 같은 경우를 감안하지 않고 학교정화구역 내 여관 등 영업을 금지한 학교보건법 6조 1항 13호 등에 대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선고했다.

뒤늦게 이전해 왔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의 교육 환경을 관리하고 학습권을 보호해야 할 합목적성이 개인의 재산권을 압도한다는 것으로 해석돼 특히 주목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유씨의 딱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교육백년지대계’라는 대의를 택한 헌재의 의식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 같은 헌재의 결정과 그 배경 정신이 깡그리 무시당하는 사례가 앞으로 적잖이 자행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이는 터라, 모처럼의 어려운 결정이 갖는 의미가 빛을 잃겠다는 걱정이 드는 데 있다.

대한항공이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경복궁 옆 7성급 호텔 건립 추진 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대해 호텔이 경복궁 인근에 자리하게 됨으로써, 궁과 그 인근 환경을 크게 해칠 것이라는 지적이 정치권과 시민사회 단체, 교육계, 지자체 등에서 줄기차게 제기되고 있다.

대한항공 호텔 건립 예정지는 인근 풍문여고와 덕성여중고에서 불과 7m, 4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학교보건법에 저촉된다는 다툼도 있어 왔다. 학교 근처에 호텔이 있으면 교육상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지적.

문제는 특별법 논리로 학교보건법의 이 같은 규제를 우회하는 법률이 등장했다는 데 있다. 본지는 의원발의 형식으로 ‘관광숙박시설 확충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안’이 연초에 국회에 제출될 당시에도 이러한 위험성을 언급하며 우려를 표한 바 있으나, 결국 ‘관광진흥법’의 개정 형식으로 학교환경위행정화구역 내에도 유흥, 사행시설이 없는 관광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된 바 있다.
   
송현동 호텔 건립 계획은 문화계로부터 경복궁 주변의 풍광을 해칠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근 학교들의 면학 분위기 보호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를 사고 있다. 지도는 김창수 의원실에서 배포한 국정감사 관련 보도자료 중 일부. 지도를 보면 문제의 부지가 경복궁과 인근 학교들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정치권 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는데 자유선진당 김창수 의원은 지난 달 20일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관련법을 고쳐서 대한항공 호텔을 지어야 하는지에 대한 특혜 논란과 법적 울타리를 떠나 문화적 가치 차원에서의 문제점, 해당 부지에 대한 부실한 문화재 발굴조사 등 다각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김 의원은 “대한항공이 행정소송에서 패소하고도 문화관광체육부와 국토해양부는 법을 바꿔가면서까지 특혜 시비가 있을 정도로 지원해야하는가”라고 주장한 바 있다.

조선시대부터 유구한 시간 동안 서울을 지켜온 경복궁 인근 풍광과 역사적 의미가 손상이 온다는 지적은 일단 차제에 논하기로 하자. 문제는 이렇게 특혜 소리를 들을 정도의 밀어붙이기 한켠에서는 여인숙은 나중에 들어온 학교에게 자리를 비켜 주라는 헌재 결정이 공존한다는 데 있다.

대기업이 추진하는 호화로운 호텔에게는 학교 앞에 자리할 특혜가 허락되고, 영세한 업자가 운영하는 여인숙에는 먹고 살 권리가 인정될 여지가 전혀 없는가.

   
 
과연 호텔을 여학교 인근에 지어야 할 필요를 인정해 주는 나라에서, 또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아젠다로 내세운 나라에서 이러한 모순은 참으로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유씨의 여인숙을 뜯어내려면, 대한항공 7성급 호텔 건립 뉴스감도 같이 퇴장시키는 게 옳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