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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견된 상폐’ 중국고섬, 거래소·대우證 “강 건너 불구경”

24일 상장폐지 진행 “소송해도 투자금 반도 못 건져”

이수영 기자 기자  2011.10.25 17: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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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7개월 동안 거래정지 상태에 묶여 있던 중국고섬공고유한공사(이하 중국고섬)가 지난 24일 사실상 상장폐지 수순에 돌입했다. 최초 공모가 7000원에 주식을 사들인 개미(개인투자자)들은 수백억원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그러나 정작 투자를 권유한 주체들은 느긋하다. 대표 주관사인 KDB대우증권과 상장심사를 맡은 한국거래소 등은 도의적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사태 해결에는 손을 놓고 있다. 증권가에 ‘차이나 디스카운트’ 충격을 안긴 사태의 쟁점은 누가, 얼마나 책임지느냐다.

중국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내 주식시장에 ‘데뷔’해 주목받았던 중국고섬이 상장 9개월 만에 공식적인 상장폐지 절차에 들어갔다. 한국거래소는 24일 “중국고섬이 국내 감사인인 E&Y한영회계법인으로부터 의견 거절을 받음에 따라 상장폐지 절차를 진행한다”고 공시했다. 회사 측이 다음달 2일까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거래소는 곧바로 정리매매에 들어갈 예정이다.

◆상장 9개월 만에 퇴출…뭐가 문제였나?

중국고섬은 중국 내 폴리에스터 섬유 전문기업인 절강화항, 복건신화위 등을 100% 자회사로 거느린 지주회사다. 2008년 9월 설립됐으며 이듬해 9월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코스피 시장에는 싱가포르서 상장된 원주를 해외주식예탁증서(GDR·Global Depositary Receipts)로 전환해 2차 상장하는 방식으로 올해 1월 입성했다.

해외주식예탁증서는 전세계 주요 금융시장에서 동시에 발행·유통되며 신용도가 높은 기업들이 주로 발행한다. 당시 국내에서만 1932억원의 투자금이 몰렸다. 대표주관사로 KDB대우증권이 나섰고 공동주관사는 한화증권, 인수사 업무는 HMC·IBK투자증권이 맡았다.

중국고섬의 퇴출은 이미 지난 3월 예견됐었다. 원흉은 불투명한 회계였다. 국내 감사인인 E&Y한영회계법인에 따르면 회사의 은행예금 회계기록과 은행 측 자료를 비교한 결과 9억8000만위안(약 1750억원)이 회계장부상 불일치 금액으로 나타났다. 1800억원 가까운 거금이 증발했다는 얘기다.

회사는 지난 3월22일 회계불일치 사실이 알려지자 하루 만에 주가가 24% 가까이 주저앉았다. 싱가포르 증권거래소는 이날 곧바로 매매정지 조치를 내렸다. 이튿날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예탁증서 거래도 중단됐다. 회사는 거래정지 이후에도 주총과 감사보고서 제출을 수차례 미뤄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었다.

◆몰락한 개미 “대책이 없다”

문제는 이번 사태의 피해자인 개인투자자들을 구제할 방법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다음 달 중순경 예정된 거래소 정리매매 기간 동안 주식을 팔거나 국내 상장된 예탁증서를 싱가포르 ‘원주’로 전환하는 것이 그나마 묘수다. 투자자들은 최초공모가의 1/100도 못 건질 정리매매 보다 원주전환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이미 원주 가치가 국내 주가보다 현저히 낮아진 상황에서 환율·수수료 등을 고려하면 건질 수 있는 투자금은 절반에도 못 미칠 전망이다. 중국고섬의 국내 최초공모가는 7000원, 이를 원주로 교환하면 예탁증서 1주당 원주 20주로 바꿀 수 있다.

중국고섬이 싱가포르 거래소에서 거래가 정지되기 전 종가는 0.19싱가포르달러, 이를 국내 가치로 환산하면 주당 3390원 정도다. 여기에 원주전환 수수료 30원을 떼면 1주당 가치는 약 3360원으로 떨어진다. 최초공모가에 반 토막도 안 될 뿐 아니라 국내 거래정지 전 종가인 4165원에도 크게 밑돈다.
 
청약 미달 물량을 끌어안은 KDB대우·한화증권의 고민도 이것이다. 일반 인수되지 않은 물량 905만3452주를 해당 증권사들이 총액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증권은 보유한 800만주에 대해 올해 상반기 235억원을 손실액으로 떠안았고, 한화증권은 상장 첫 날 80만주를 매각했으나 나머지 약 350만주는 올해 2분기 손실 처리했다고 밝혔다.

◆“증권사 IB, 수수료 경쟁에 눈 멀어”

한편, 중국고섬 개인투자자 553명은 상장사 부실 심사를 이유로 한국거래소와 대우·한화증권, 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19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특히 대표주관사인 대우증권은 중국고섬에 대한 실사를 6개월 만에 끝내 비난을 자초했다. 상장기업실사에 국내 기업은 보통 6개월, 외국 특히 중국기업은 2년 가까이 걸리는 까닭이다.

또 하나대투투자증권은 중국고섬 상장 전후로 회사에 유리한 애널리스트 리포트를 발표해 도덕성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전문가의 추천으로 투자를 결심한 소액주주들의 기대는 상장폐지라는 최악의 결과물로 돌아온 셈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국내 증권업계 IB가 수수료 경쟁에 지나치게 몰입하면서 크고 작은 부작용이 생긴 것이 사실”이라며 “회계법인이나 증권사가 해당기업의 부실 사실을 미처 몰랐다하더라도 이후 부도 등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했다면 자체 실사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