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이대 나온 여자’는 도도하고 새침하다. 더구나 냉정한 증권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건 기본, 숫자와 통계로 세상 모든 것을 증명하려는 퀀트(계량분석) 애널리스트다. 토러스투자증권 이원선 리서치센터장(이사)을 만나기 전의 편견들은 그의 서글서글한 웃음에 싹 사라졌다. 여행이 낙인 평범한 결혼 17년차 주부이자 칼날 같은 냉철함으로 3년 연속 ‘베스트애널리스트’에 등극한 실력자. 극심한 변동장에 시달리던 이달 초 증권가 ‘여풍(女風)’의 주역으로 떠오른 그를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토러스투자증권 본사에서 만났다.
설익은 가을내음과 함께 국내 증권가에도 신선한 바람이 불었다. 역대 두 번째이자 리서치센터 출신으로는 첫 여성 센터장이 탄생한 것. 토러스투자증권(대표 손복조)은 이달 1일 신임 리서치센터장으로 이원선 이사를 임명했다고 밝혔다.
이 센터장은 1994년 대우경제연구소를 시작으로 ING-Barings증권, 대우증권 등을 거쳐 수년 간 퀀트 애널리스트로 활약했다. 퀀트는 ‘수량으로 잴 수 있는’이라는 뜻의 ‘퀀티테이티브’(Quantitative)의 줄임말이다. 특히 애매한 증시의 방향성을 결정해주는 주식 ‘애정녀’ 이원선 센터장의 ‘퀀트마인트’는 남다르다.
◆“퀀트 애널, 남녀 불문 모두 섬세해”
여타 애널리스트들의 기업 분석이 주관적인 판단에 비중을 둔 것이라면 퀀트 애널리스트는 철저히 수치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주가를 예측한다. 일상에서도 일종의 ‘직업병’이 있다. 계량분석가로 일하면서 생긴 습관을 묻자 이 센터장은 망설임 없이 답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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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러스투자증권 이원선 이사. 지난 1일 토러스투자증권(대표 손복조)은 국내 증권사 사상 두 번째이자 리서치센터 출신으로서는 처음으로 이원선 이사를 센터장에 임명했다. 이화여대 경영학 석사 출신인 이 센터장은 국내 최고의 퀀트애널리스트로 꼽힌다. |
또 계량분석가는 남녀 불문하고 섬세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현역 유일 여성 센터장’이라는 타이틀로 얻은 지나친 관심과 편견에 대한 일침이다.
이 센터장은 “퀀트하는 사람은 남녀 구분 없이 다 꼼꼼하다. 워낙 미세한 숫자까지 다 들여다보기 때문”이라며 “특히 증시 예측에서는 매크로(거시적)와 마이크로(미시적) 상황을 모두 염두에 두고 여기에 계량분석을 더해 보다 논리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퀀트 애널리스트들의 역량이 돋보인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논리적인 투자의견을 제시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국내증시가 2008년 금융위기를 지나 최근 미국·유럽발 리스크에 발목을 잡히며 더욱 강해졌다.
기존 계량분석에 관리업무까지 더해져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이 센터장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 것은 17년 간 곁을 지켜준 남편이다. 이화여대 경영대학원 시절 만난 배우자도 주식운용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금융위기 전까지는 주말에 집에서까지 업무얘기를 하지 않았다”며 “그런데 경제 상황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이젠 부부끼리 ‘전략회의’를 하게 됐다. 덕분에 요즘은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12월까지 급격한 하락 없을 것”
이 센터장의 전략회의는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끊임없는 대화와 생각 나누기, 그가 ‘작지만 강한’ 토러스 리서치센터의 수장이 된 이후 세운 원칙은 바로 ‘공조’다. 결국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은 업종 추천인데 최근 증시상황은 고민해야할 변수가 지나치게 많아진 탓이다.
매크로 경제와 섹터분석, 퀀트 등 각종 분석분야가 하나로 맞물려야 제대로 된 투자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이 센터장은 강조했다.
그는 “일례로 최근 유럽 재정위기는 국가 간 공조가 제대로 안 돼서 불거졌다. 특히 우리증시가 급격한 변동성에 시달린 원인은 그리스라는 작은 나라였다”며 “우리보다 인구도, GDP도 적은 나라가 유럽 전체는 물론 아시아까지 뒤흔들 만큼 매크로 상황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그래서 리서치센터 안에서도 분야를 불문한 ‘공조’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센터장에게 앞으로의 유럽 상황과 국내증시에 대한 전망을 부탁하자 “12월까지는 완만한 상승세가 기대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행히 유럽 각국의 가시적인 정책 공조가 이뤄지고 있고 미국 등 선진국의 더블딥 가능성이 줄어든 까닭이다.
이 센터장은 “유럽 리스크는 11월을 기점으로 다소 완화될 것”이라며 “미국 등 선진국의 더블딥 우려가 다시 떠오를 수 있지만 실제 더블딥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고 판단된다”고 내다봤다.
또 “현재 실물경기에 비해 심리지수가 많이 위축된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 불안감이 줄어들면 실물경기에 맞게 주가도 회복할 것”이라며 “유럽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된 게 아니고 PIIGS 국채만기가 내년에 더 많이 도래하는 등 위험은 잠재돼 있지만 올해 12월까지 급격한 하락세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투자의견 ‘Buy-Hold’ 사이 더 구체화할 것”
각종 전망과 엇갈리는 투자의견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 센터장이 야심차게 구상한 계획은 따로 있다. 투자자들의 관심을 가장 크게 끌지만 최근에는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리서치 보고서의 ‘투자의견’ 방식이다.
기존 증권사 리서치보고서는 선정된 업종, 섹터들에 대해 90% 이상 ‘Buy’ 의견을 쏟아냈다. 무조건 사고 보라는 ‘묻지마’ 투자의견에 배신감을 느낀 일부 투자자들은 아예 리서치보고서를 거들떠 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센터장은 이 같은 병폐를 개선하기 위해 보고서 투자의견을 보다 구체적으로 세분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밝혀 실제 투자자들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대부분 증권사가 기업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해 ‘Buy’ 의견을 남발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토러스투자증권은 ‘Buy’와 ‘Hold’(투자보류) 사이를 더 촘촘하게 세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향후 국내증시가 완만하게 ‘우상향’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으면서도 이 센터장은 개인투자자가 직접 주식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것은 어렵다며 따끔하게 충고했다. 특히 ‘증권 부부’에게 쏟아지는 지인들의 자문 요청에 그는 ‘무조건 직접투자는 위험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투자 조언도 개인투자자가 아닌 기관투자자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센터장은 “리먼 사태 이후 2년 정도 장기랠리가 이어지긴 했지만 앞으로는 짧은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는 변동장이 이어질 것”이라며 “개인이 투자해 실적을 낼 수 있을 만큼 쉬운 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본적인 유동성이 있기 때문에 주가는 완만하게 우상향하겠지만 개인이 수많은 변수에 모두 대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주식보다는 장기투자로 펀드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