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근 지방의 한 대학에 재직 중인 A교수와 대화를 나누면서, 안타까운 사실 하나를 접했습니다.
외국에서 학사부터 박사까지 취득한 A교수는 B학생의 실례를 들며 국내대학이 ‘고등 교육을 베푸는 교육 기관으로 국가와 인류 발전에 필요한 이론과 응용 방법을 교수와 연구하며 인격을 도야하는 교육의 전당’ 역할을 할 수 없는 배경에 기업이 일조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전문대학에서 2년을 마치고 일반대학 3학년으로 편입한 B학생은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A교수는 면접 당시 깊은 면학열의를 보였던 B학생이 걱정됐습니다. 그런데 사정을 알고 보니 대한항공에 인턴사원으로 취업이 됐다는 것이었죠.
A교수는 학생에게 전화했습니다. 대학에서 원했던 공부를 하고자 했던 B학생의 열의와 졸업에 대해 상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B학생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모르니 본인의 미래를 위해 출석을 못하더라도 졸업을 시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항공사의 채용 조건이었습니다.
‘전문학사 이상 학위 보유자 또는 원서접수 시 4년제 대학 2년 이상 수료한 자’로 명시된 채용 조건 때문에 ‘하늘위의 천사’를 꿈꾸는 예비 승무원들은 상‧하반기로 나뉜 채용 시즌이 오면 3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원서를 냈고 합격이 되면 바로 수업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이죠.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채용에 합격한다 해도 국제선 객실 승무원의 경우 2년간 근무 후 심사를 거쳐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고, 국내선 역시 1년간 인턴 근무 후 심사를 거쳐 계약연장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1년 혹은 2년 후 심사에 합격하지 못하면 다시 구직에 나서야 합니다.
더구나 승무원의 경우 연령도 무시 못 한다고 합니다.
기자가 사설 승무원 양성 기관에 1988년생이라며 응시에 대해 문의하니 “사실상 응시가 어렵다”는 부정적인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지난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항공사여자승무원 채용시험에 응시연령 상한을 만23~만25세로 제한하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승무원 채용제도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고용의 평등권 침해로 판단해 채용관행을 개선토록 대한항공 및 아시아나항공 사장에게 권고한 바 있습니다.
당시 대한항공 국내(국제)선 여승무원 채용 응시연령은 2․3년제 대학졸업(예정)자 만23세, 4년제 대학졸업(예정)자 만25세로 제한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은 국내선의 경우 2․3년제 이상 대학졸업(예정)자 중 만24세로, 국제선은 4년제 대학졸업(예정)자 중 만24세만 응시가 가능했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래의 승무원을 꿈꾸는 학생들은 대학 2학년이 됐을 때부터 채용조건에 열중하고 3학년이 됐을 때 본격적인 응시에 돌입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인턴을 수료한 후 정규직 전환에 대한 미래의 불확실성과 이에 따른 불안감에 해당교수와 ‘취업’을 빌미로 출석일수를 채우지 않고 수강하는 비밀 계약이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A교수는 “취업이 중요한 이때 휴학을 요구할 수도, 중퇴를 요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대학은 본연의 목적인 ‘공부’보다는 ‘취업의 도구’로 전락되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최근 전남 순천의 명신대는 교육과학기술부 종합감사에서 수업일수가 부족한 학생 2만2794명에게 출석을 인정해 성적을 주는 등의 이유로 비리·부실 대학으로 부각됐습니다. 하지만 A교수는 이 사건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업이 재학생에게 상황을 종용했던 현실적 배경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씁쓸해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