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대내외적으로 불안한 경제여건 속에 잘나가던 해외건설시장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최근 그리스에서 촉발된 재정 불안의 불씨가 유럽으로 번지면서 자금 경색에 따른 글로벌 경기침체가 우려됨과 동시에 효자 노릇을 하던 수주 보물창고 리비아도 시장 회복의 불빛은 희미해져 가고 있다. ‘업친데 덥친격’이라 했던가. 이미 국내 대부분의 건설사는 국내 건설사업 비중을 축소한 상태다.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국내 주택·토목공사 몫을 세계 각국에 숨겨진 대형 프로젝트로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태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리비아에 진출한 건설사들은 현지 피해상황을 파악하고 빠른 시일 안에 기존 공사 수행에 대한 발판과 재건사업 등의 구상이 이미 시작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해외건설수주 716억달러. 세계 총 91개국에서 우리 건설업체 419개사가 588건의 공사를 수행해 벌어들인 금액이다. 이는 해외수주실적이 공식적으로 집계되기 시작한 지난 1965년 이후 역대 최대치로 전년 수주액 대비 46%가 증가한 수준으로 기록됐다.
리비아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고 새 정권이 들어서게 됨에 따라 리비아 내 기존 공사 재개, 재건사업 등을 위한 우리 건설업계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사진은 리비아 대수로 공사 현장. |
우리나라 건설업계에서 해외건설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내 건설시장 침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국내 건설사업 규모를 줄이는 대신 해외사업 다각화 등 새로운 시장 개척에 온힘을 쏟고 있다.
그 만큼 해외건설 말고는 기대를 걸 수 있는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건설협회가 작성한 ‘2010년도 결산 건설업경영분석’에 따르면 국내 건설시장은 총자산과 매출액 증가율이 둔화되고 매출액영업이익률이 하락 하는 등 종합건설업체의 경영상태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최근 대내외적으로 불안한 경제여건 등으로 인해 주택 수요자들 또한 보수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택시장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반면, 해외시장은 대내외 경제 불안감, 리비아 악재 등의 혼전 속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지난해 해외수주 최대 실적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물론 향후 건설사들의 해외시장 진출과 사업 다각화는 지속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해외건설, 중동 잡아야 살아난다
우리 건설업계가 해외시장에서 높은 성장률을 보일 수 있었던 것에서는 중동지역을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중동지역에서 수주한 금액은 지난해 472억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주고를 확보하고 있다. 실제 중동은 우리나라 해외건설발전에 일등공신으로 자리한 지 오래다. 국토해양부가 집계한 1965~2010년 누계 국가별 수주실적을 보면 △사우디아라비아(1614건, 864억달러) △아랍에미리트(213건, 577억달러) △리비아(294건, 364억달러)등 3개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주액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던 해외건설시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42년간의 철권통치가 흔들리면서 리비아에 진출한 우리나라 건설사들의 공사현장에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건설업계에게 리비아는 수주 ‘보물창고’나 다름없다. 지난해 기준 우리 건설사가 리비아에 수주한 공사는 전체 해외 누계 수주액의 8.6%를 차지한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수주액을 벌어들이는 곳이 리비아다.
리비아 사태는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촉발된 민주화 시위가 리비아 뱅가지를 시작으로 수도 트리폴리 중심까지 번지면서 카다피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에서 비롯됐다.
이 사태가 리비아 내 우리 건설업계에 피해를 주기 시작한 것은 올 2월 경. 그 동안 상대적으로 안전지대로 평가 받던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우리 기업 현장 1곳에까지 시위대가 진입, 아국 근로자 3명이 경상을 입는 인명피해 발생했을 때부터다. 당시 정부는 리비아 사태를 예의주시하면서 리비아 교민의 안전대책을 위해 수송대책을 마련해 리비아 내 우리 건설사 직원 등 건설 근로자들의 보호에 총력을 기울였다.
리비아와 중동지역은 우리 건설업체들이 해외에서 가장 활발한 건설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전략 지역’이다. 리비아에 진출한 국내 기업은 대부분 건설업체로 현대건설, 대우건설, 현대엠코 등 24개 업체가 사업을 진행중이다. 공사금액이 총 108억달러(약 12조700억원)로 이 가운데 시공 잔액만 82억달러(약 9조1700억원)에 달한다. 리비아 사태에 대해 우리 건설업계를 포함한 정부 등 모두 하나가 돼서 촉각을 곤두세웠던 이유다.
◆“우리 건설사 쌓아온 능력·신뢰 유지될 것”
한편, 카다피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장기화됨에 따라 리비아 내 공사를 수행중인 건설 근로자 등이 한국으로 속속 입국을 완료하기 시작했다.
리비아는 지난해 한국과 리비아 양국간의 정치 분쟁으로 외교마찰로까지 불거졌던 바 있다. 여기에 올 초 리비아 사태까지 더하게 되면 리비아 현지에 진출한 국내 건설사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 당초 업계는 리비아와 우리나라의 외교 마찰과 이번 중동지역 민주화 시위 등으로 인해 우리건설업계에 ‘치명타’가 될 것으로 예견했지만, 오히려 호재라는 분석에 입이 모아졌다. 올 초 중동 반정부 시위의 핵심은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취업 기회 등으로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고유가를 바탕으로 한 플랜트 발주는 지속될 전망이라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리비아는 우리나라와 관계가 친밀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1984년 리비아 국가 원수 카다피와 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의 친분관계를 통해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따낸 것은 건설업계에서도 유명한 일화로 통한다.
당시 동아건설이 수주한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단일 공사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세간에 이슈가 됐다. 특히 리비아 대수로 공사, 일명 GMR(Great Manmade River)사업을 통해 리비아의 수도권과 주요 소재지는 물 걱정 없이 살고 있으며 물이 부족한 이웃 아프리카 지역에 생활용수를 수출하는 경제적 이익도 볼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에게만 단순히 경제적 이익을 남긴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카다피와 최 전 회장 두 사람은 의형제 사이처럼 친했고 덕분에 동아건설은 리비아에 발을 들인 타 국내 건설사와는 다른 ‘칙사 대접’을 받기도 했다. 더욱이 리비아 대수로 공사 당시 대우자동차는 북아프리카 지역 중 리비아에 공장을 둘 수 있게 됐으며 리비아 차량의 절반 이상을 대우 자동차로 채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 동안 국내 건설사가 리비아에서 쌓은 신뢰와 수주능력 등을 통해 제2의 리비아 시장 개척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리비아에서 공사를 진행 중인 한 건설사 고위 관계자는 “카다피 정권이 지고 새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우리 건설사가 그 동안 쌓아놓은 공사능력과 신뢰 등이 리비아 주요시설에 남아 있다”며 “앞으로 리비아에 주택·항만 등 인프라 시설 구축 등 재건이 꼭 필요함에 따라 리비아와 친밀감이 있는 우리 건설업계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