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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제일은행, 남편보다 나은 명품가방이라니…

임혜현 기자 기자  2011.10.07 17: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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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SC제일은행. 한때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 등 5개 은행을 가리키던 용어) 중 한 축이었던 제일은행은 한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영국계 금융기업인 스탠다드차터드에 인수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같은 외국계라는 점, 중산층을 타깃으로 한다는 평가 때문에 한국씨티은행과도 많이 비교되고 있는데, 과거의 영화와 달리 극히 위상이 축소된 지금도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초반에 쌓은 ‘토착화’ 노력이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2005년 공식 출범 당시 애초 제일은행의 부실 이미지를 털기 위해 새로운 이름을 고려했으나 한국인 직원들의 정서를 최대한 반영해 ‘SC제일은행’으로 최종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제일은행은 외국계로 넘어갔으면서도 조상제한서 업체 중 유일하게 이름을 잃지 않은 은행이 됐다. 이는 SC가 거느린 60여개 해외 현지법인 가운데서도 기존 사명을 유지하는 첫 사례가 됐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깊다. 이런 토착화 노력은 간판을 지킨 외형에만 그치지 않았는지,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이후 최근까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냄) “다른 외국자본들도 SC만큼만 하면 바랄 것이 없겠다”는 말을 들었다는 후문도 있었을 정도다.

그러나 SC제일은행이 변했다는 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제일’을 결국 떼어낼 것이라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6일에는 급기야 SC제일은행이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명예퇴직을 처음으로 실시한다는 뉴스도 흘러나왔다. 임원 명퇴 소식은 장기 파업을 불러온 인사평가제 추진 못지않게 한국 시장에서 발을 빼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위기감을 불러오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불길한 기분을 증폭시키는 것은 그러나 냉정한 성과평가 시스템 논란도 임원 명퇴 실시설도 아닌 이벤트다. 명퇴 관련 뉴스와 함께, 일각에서는 SC제일은행이 개인 입출금 예금 신규 가입자를 위한 이벤트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마케팅 관계자가 “이번 이벤트는 가정주부들을 위해 마련됐다”고 야심만만 소개한 이 이벤트는 한국에서도 선호도가 높은 샤넬 제품들을 상품 등을 내걸고 있다.

400만원대 명품을 내건다고 해서 딱히 건전한 사회 질서를 해치는 것도 아니고, 주부층에 해당하는 여성들의 명품 소비 심리를 제대로 겨냥, 타깃층을 공공연히 드러냈다고 해서 노골적인 상술이라고 욕을 먹을 것도 아니다. 

문제의 이벤트명은 다름아닌 ‘남편보다 나은 이벤트’. 비단, 남편과의 사별을 소재로 한 모 외국계 보험사 광고가 “10억을 받았습니다”는 적나라한 카피를 썼다가 논란의 중심에 선 적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남편이나 아내보다 ○○(돈 같은 물질)이 더 좋다는 정서는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뿐더러, 일종의 마지노선으로 여실히 건재하므로, 이런 자극적 방식으로 접근했다가는 한국 시장에서 강한 질타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400만원짜리 샤넬백을 내걸면서 한국 주부에게 남편보다 낫지 않느냐는 물음을 공공연히 내세우고 있는 SC제일은행의 행보는 상당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2005년, SC 카이 나고알라 당시 이사회 의장이 새 브랜드 선포식에 참석, “SC의 현지법인들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상품 및 서비스의 노하우만 공유할 뿐, 현지의 영업 방식과 문화는 최대한 존중되고 있다”고 한국 사회에 녹아드는 영업을 약속했는데, 그 약속이 10년을 못 채우고 부서져 나가고 있다는 방증으로 이번 일이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초기 몇 년간 SC제일은행이 보여준 토착화 노력은 이후에 영업 패턴이 완전히 바뀌어 편한 가계 대출에 치중한다거나, 그레이존 고객(신용이 일부 부족해 고금리 대출을 써야 하는 층)을 대상으로 ‘이자놀이’를 하는데 본격적으로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는 비판이 왕왕 불거졌음에도 금융시장에서 한 자락을 차지할 수 있는 든든한 자산이 돼 왔다. 하지만 이제 SC제일은행은 스스로 한국인의 정서 대신 현란하고 자극적인 광고 카피에 기대려는 모양이다.

이미 한국인의 정서에서 가정과 가족, 배우자가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해서는 크게 와닿지 않을 것이기에 SC의 모국인 영국에서 수상을 지낸 마거릿 대처 여사의 발언을 빌려 본다. 1999년말 대처 전 영국 수상은 한 대학에서 강연을 하면서 “도덕 없이는 미래도 없다”고 말했다. 적어도 한국 시장은 명품에 holic 현상은 보일 지언정, 명품이 대변하는 각종 자본주의적 병폐에 모두 눈을 감고, 도덕과 기존의 가치관을 저버리는 지경에 이르는 물신주의 사고관을 공식화해도 괜찮은 시장은 아니라는 점에서, 대처식으로 말하면 미래가 없는 시장은 아니다. 그런 시장에서 SC제일은행은 ‘남편보다 나은 명품’이라는 논리를 펼쳤으니 미
   
 
래에는 영업 시장으로 한국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소리로 들린다. 슬프다.

추신: 영국이나 SC가 과거 장사를 해온 인도, 아프리카 등 영연방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한국적 정서로 보면, 이런 식으로 문제를 빚으면 관계자는 물론 직속 상관, 결제 라인까지도 가차없이 문책하는 회사를 명품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