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는 IT·전자 산업의 생태계는 라이벌과의 끊임없는 경쟁이 기업의 체질을 보다 강화하는데 특효약이 되기도 한다. 이는 삼성과 애플의 경쟁에서도 엿볼 수 있다. 대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하드웨어의 ‘삼성’과 소프트웨어의 ‘애플’. 굳이 정립하자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만, 경쟁을 통한 발전은 진행형이었다. 하지만, 애플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의 사망으로 피치 못할 변화가 예상된다. 참신함과 혁신을 대표하는 잡스의 부재가 삼성에게 어떠한 변수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삼성과 애플이 최근 특허침해를 이유로 국내외 시장에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는 등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애플은 삼성이 디자인을 표절했다는 이유로, 삼성은 애플이 특허 받은 핵심 기술을 침해했다는 게 이유다.
삼성-애플의 법정공방은 기업의 사활을 건 승부수로 보이지만, 양사는 겉으로 비춰지는 것과는 달리 오랜 기간 관계를 유지해왔다. ‘애증의 관계’가 현재로서는 가장 잘 들어맞는 수식어다.
◆보기 드문 애증관계
애플과 삼성의 관계는 삼성 선대 회장인 고 호암 이병철 회장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잡스가 28세였던 지난 1983년 선대 회장은 잡스를 태평로 삼성본관 호암 집무실에서 만난 바 있다.
당시 선대 회장은 잡스에게 “앞으로 IBM과 대적할 만한 인물이다”며 “인재를 중시하고, 공존공영 관계를 중시하며, 지금 사업이 인류에 도움이 되는지 화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잡스와 선대 회장과의 관계는 이후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사장으로 이어졌다. 이 회장은 잡스를 종종 만났으며, 이재용 사장도 미국 애플 본사를 찾아 잡스에게 아이폰 샘플과 특징에 대해 설명을 받는 등 만남은 종종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장의 경우, 잡스를 두고 “애플은 배울 게 참으로 많은 회사고, 잡스는 그야말로 천재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삼성이 지난해 소니를 제치고 애플을 최대 고객사로 맞았다. 그간 이 회장이 소니와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며 최대 협력사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아이폰’이라는 괴물의 성공은 이들의 관계를 재정립으로 이끌었다.
삼성전자에게 애플은 현재 핵심 칩을 공급하는 최대 납품처로 떠오르고 있다. 관련 업계는 애플이 올해 삼성전자로부터 78억달러 상당의 부품을 사들여 60억달러 안팎으로 구매할 소니를 제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때문일까. 지난 3월 잡스가 삼성전자를 모방자로 표현, 임직원마저 조롱하는 상황이 연출될 당시만 해도 삼성전자는 직접 대응을 삼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애플이 지난 4월 특허침해 혐의로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 삼성전자를 제소하며 상황은 급격히 변했다. 이를 두고 이건희 회장은 “못이 튀어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고 설명했고,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삼성은 지난 5일 애플의 신제품 ‘아이폰4S’를 대상으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게 됐다. 삼성전자는 애플이 3G WCDMA 통신 표준에 대한 프랑스 특허 2건과 이탈리아 특허 2건을 심각하게 침해했기 때문에 판매가 허용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라이벌 퇴장으로 새 국면
하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날 스티브 잡스가 사망하며, 삼성전자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라이벌의 퇴장에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관계마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셈이다.
그간 소프트웨어 부재를 지적받아온 삼성전자에게 스티브 잡스의 영향력은 없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모바일 플랫폼 바다(bada)의 경우, 등장까지 애플 앱스토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란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는 것만 봐도 잡스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구글이 지난 8월 미국 휴대폰 제조사 모토로라 모빌리티 인수를 발표하며,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 OS에 마냥 의지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결국, 한달여 후인 지난 9월 삼성전자는 MS와 상호 보유하고 있는 특허에 대해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 애플과의 특허소송을 대비하고, 동시에 구글-모토로라를 견제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가운데 주목할 것은 참신함과 혁신을 대표하는 애플 창업자 잡스의 부재는 곧 라이벌 삼성전자에 더 이상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삼성전자의 향후 행보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바다 플랫폼 투자를 집중하는 등 소프트웨어의 자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